[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자전거를 들어주던 남자와 쉑쉑버거모스크바엔 자전거를 들어주던 남자가 있었다. 나는 그를 세 번쯤 마주쳤는데, 전부 다른 사람이었다. 그들은 묵묵히 내게 다가와, 끙끙대며 올리는 자전거 뒷바퀴를 사뿐히 들어올려 계단 위에 올려 놓은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고맙습니다, 러시아어로 전한 인사에 첫번째 남자는 가벼운 손사래를 치며 금세 인파에 섞여 사라졌다. 유독 착한 사람을 만난걸까? 무심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두 번째, 세 번째 자전거 남자를 만났다. 그들은 낑낑대는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지금 나는, 강원도 원주 외곽에 있는 ‘토지문화원’이라는 곳에 들어와 있다.한적한 시골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흥업면 매지리 회춘마을에서 오봉산 쪽을 바라보며 조금 들어가다 보면 산 속에 은밀하게 감춰놓은 듯, 포옥 들어앉아 있는 건물 몇 채가 나온다. 이곳 토지문화원은 우리에게 ‘토지’로 잘 알려진 박경리 작가님이 글을 쓰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취지로 만들게 된 공간이다. 매년 2월에 신청을 받아 1달에 10명 정도의 작가들이 평균적으로 2~3달 정도 머물며 글을 쓰는 곳이다.오래전부터, 이곳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참말로 실감나게 가슴을 울리는 요즘이다. 점이니 굿이니 무속이니 풍수니 뭐니 하는 단어가 주요 키워드로 연일 언급되는가 하면, 각종 컨설팅 전문가들은 무속관련 사업에 투자를 하면 금방 돈을 벌 거라는 등의 조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적으로 막 하는 세상이 되어간다. 정황이 이렇다 보니 내 머릿속에서 꿈틀꿈틀 일어나는 생각도 많아졌고, 기억을 밀고 나오는 풍경도 엄청 많아졌다.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였으니 아마 이십여 년쯤 전일 것이다. 나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할머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시베리아에서무심코 뉴스를 틀자 포격이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 국기가 보인다. 검은색 헬리콥터들이 다가온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발포가 시작되고, 조금 늦게 굉음이 퍼져 오른다. 부서진 건물들이 보였다. 군데군데에서 불꽃이 터져 오른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고 미사일을 쏘는 헬리콥터와 부서지고 있는 건물의 풍경만이 건조했다. 발포 버튼을 누른 사람과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전쟁이 났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전쟁이 시작된 거야. 뉴스 화면으로 보는 생생한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는 지방의 작은 소도시였다.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한 체 세월의 두께만큼 눌려있던 앨범 속 희뿌연 흑백 사진 같은 그 동네는 단층의 한옥들과 허름한 가게들이 질서를 지키며 즐비해 있었다. 아스팔트가 덧 씌워진 신작로는 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를 향해 뻗어 있었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차량이나 정화조 차량, 그리고 엿을 파는 아저씨의 리어카만이 굴러다니는 바퀴의 전부였다. 우리 집은 신작로에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야만 다다를 수 있었는데 그 골목길에는 네 개의 집들이 서로 대문을 마주보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나는 책을 읽고 Facebook에다 가끔 리뷰를 남긴다.이곳에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쓴 다양한 서평들이 올라오곤 하는데 그걸 읽어보고 책을 살 때도 있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 같은 경우, 서점에 직접 가서 이런저런 책들을 들춰보고 맘에 든다 싶으면 집어오게 된다. 다른 누군가가 책에 대해 써 논 글을 참고하기도 하지만 막상 책 몇 장을 읽어보고 나면 나와 스타일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이 책 정말 좋아요!'라고 말한다 해도 그게 나에게 맞는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부드럽고 매끈하지만7층짜리 돈키호테가 있다고 차차가 내게 처음 말해주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내게 돈키호테는 사람들이 오사카 여행에서 동전파스라든지, 처음 보는 위장약 같은 것을 사오는 일본 만물상 같은 곳이었다. 잘 정비된 화려한 개울인 도톤보리에, 커다란 관람차가 건물 외벽에 붙어 있던 바로 그 건물. 내가 생각하는 돈키호테는 오직 그곳이었고, 다른 돈키호테가 있다고는 왜인지 생각도 못 해봤다. 해외여행을 꿈꿔오던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애들은 어떤 의례처럼 오사카에 갔고, 타코야키를 먹었고, 달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남편의 성격은 예민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인이 예민하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연애할 때는 잘 몰랐다. 다들 그렇겠지만 연애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의 콩깍지 하나씩 덮어 쓰는 시기인지라, 그의 밑도 끝도 없는 예민함 따위는 본인도 주장하지 않았을 테고 나도 느끼지 못하였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느 순간 뒤덮이기 시작한 콩깍지는 어수룩한 성격을 매력으로 둔갑시켰고 행여 단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들 지리산, 태백산, 한라산 등지에서 수 십 년간 도를 닦은 도인마냥 장점으로 승화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개들의 섬처음 공항에 내린 이후 타이베이 시내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도착하자마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볍게 다툰 직후였다. 다툼은 날씨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따뜻한 곳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반팔만 챙겨온 어머니는 공항에서 패딩을 껴입은 대만 사람들을 목격한 것이다. 마침 가벼운 비가 내려 사위가 어두웠다. 공항 유리 바깥의 풍경은 가을에도 여름 같다는 우리 상상속의 대만보다 훨씬 어둡고 서늘해보였다. 정 추우면 현지에서 옷을 사 입으면 된다는 생각은 우리 모두 해보지 않았고, 어머니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우리 동네 아파트 초입엔 작은 붕어빵 포차가 하나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먹는 걸 보면 맛은 증명된 셈이었다. 나 역시 가끔 이곳에 들러 붕어빵을 사먹는데 오늘 아침엔 너무 일찍 간 모양인지 이제 막 붕어빵 기계에 예열을 하는 중이었다. 붕어빵 포차 주인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부부였는데 깔끔한 인상에 순해 보이는 남편과 수더분하지만 말이 별로 없고 곁을 잘 내주지 않게 생긴 아내가 장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제가 너무 일찍 왔나 봐요.”“아..아니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실래요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닌빈의 보트그날은 거의 바람이 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람이 불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강의 표면은 무척이나 매끄러웠고, 그 위를 유유히 나아가던 보트가 떠오른다. 삼각형 모양의 황색 갓을 쓴 사람들이 보트 위에서 강 아래를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가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수풀들을 헤치며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노를 저어 나아가는 보트들이 관광객을 태우고 조용히 나아갔다. 매끄러운 물의 표면이 부드러웠다. 언덕들 사이로 이따금씩 붉은 햇볕이 내리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늦은 시간에 고속도로를 운전한 경우가 몇 번 있다. 아마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연휴를 맞이해 여행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때였을 것이다. 길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아이들은 여독에 지쳐 뒷좌석에서 뻗은 지 오래 되었다. 해발고도가 높은 고속도로일수록 주변은 더욱 어둡다. 게다가 주행하는 차량이 극히 드문 한밤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전조등과 상향등에 의지한 채 뚫어져라 전방을 주시하며 주행을 하다보면 아무리 달려도 계속 따라 붙는 칠흑 같은 어둠은 귀경길의 유일한 동반자이다. 짧았던 여행의 일정을 다시금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박항서의 밤소란스러운 하노이의 밤거리에서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다시 숙소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환기구를 통해 맨 아래층 식당과 이어져있는 발코니로부터 향신료 섞인 음식 냄새가 풍겼다. 그 아래를 내려다보면 층마다 세워진 거대한 화분의 잎들이 무성했다. 창밖으로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먹먹한 메아리처럼 들려왔고 나는 내게서 조금씩 열이 난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건물의 안과 밖이 뚜렷하게 갈라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그때는 다행히 열이 나도 코로나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코로나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인도를 맺는 첸나이첸나이의 밤은 생각보다 서늘했고 사람들은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실은 옥상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애매한 점이 있었는데, 올라가는 길이 허술한 철제 사다리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숙소의 구조는 마치 비둘기집처럼 위로 갈수록 하나씩 옥탑이 생기는 구조였다. 2층과 3층에 사람들이 묶는 방들이 있고, 그 위층에는 방들과 작은 옥상이, 그 위에는 또 하나의 옥상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하는 그 마지막 옥상이 있었다. 새와 고양이가 높은 곳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어제 나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싼 커피를 파는, 그러니까 아메리카노 한 잔을 1500에 팔고 있는 카페에서 어떤 분을 만났다. 출판사 대표인 그 분은 내가 메일로 보낸 글을 읽어본 뒤 잠시 만나자는 연락을 주셨다. 무슨 기대를 하고 보낸 건 아니었다. 내 글의 방향이 맞는 건지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사실,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책 한 권 읽지 않고 글도 쓰지 못했다. 재능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일자리나 알아볼까 싶기도 했다. 써 논 글들도 내 눈엔 허접하고 못 마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고아 이미지내가 본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넓고 긴 모래 사장에 거대한 한 그루의 야자수. 흔히 보는 휴양지 풍경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늘은 적당히 저물어가고 있었고 흐린 날씨의 긴 해변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허름한 슬리퍼를 신은 머리가 희고 짧은 노인이 뜨개질을 하고 있는 모습 뿐. 이상한 사진이었다. 밝고 아름다운 열대 해변인 동시에 어딘가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그 위를 두터운 평화가 덮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이 사진으로 본‘고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다. 이름도 하필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지난 가을부터 일주일에 한 번 난타 출강을 하는 곳이 있다. 인근의 한 아파트 경로당이다.지역의 노인 복지관 소속으로 어르신 대부분이 7,80대 할머니들이시다. 물론 경로당 내부에는 할아버지 방도 있지만 할머니들이 많이 이용하시는 듯 했다. 노인 복지관에서 관리를 하는 시설이어서 출강 섭외를 해 온 사람은 복지관의 사회복지사였다. 어느 날 자신을 사회복지사라고 소개를 하며 내게 난타 출강을 의뢰해 온 것이 벌써 2년 전이었다. 수업시간이며 여러 가지 세부적인 사항을 합의하고 수업을 나가기로 하였는데 마침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밀가루의 맛을 좋아해여행을 하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들 중 하나는 내가 음식을 거의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이와 굴을 먹지 못한다는, 영양적인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한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국이 꼭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든지,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든지 하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음식을 구별 없이 느끼는 것도 아니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한다. 절대적 기준에서는 맛없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 알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나는 남들보다 혀가 덜 민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오늘 문득, 무릎에 있는 오래 된 흉터 자국을 보다 그때 일이 생각났다.‘나무늘보 경미….’중학교 2학년 때였다. 우리 반에 시골 깡촌에서 부산으로 전학 온 경미라는 아이가 있었다. 경미는 말과 행동이 느리고 덩치가 커서 마치 나무늘보처럼 순한 친구였다. 그 무렵, 우리 반에는 희주와 상희라는 양대 산맥이 있었는데 상희는 공부를 잘하고 똑 부러지는 카리스마로 인기가 많았던 반면 희주는 공부는 못했으나 예쁘고 집안이 빵빵해서 인기가 많았다. 아이들은 이쪽 아니면 저쪽이었지 이도저도 속하지 않은 아이는 별로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얼마 전 난타 동아리 수업으로 출강하는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축제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작품 마무리가 한창이었다. 예전에는 전 학년이 강당에 모여 동아리별로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맘껏 뽐내는 축제였지만 작년부터 영상으로 대체하는 온라인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영상으로 대체한다고는 하나 발표회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은 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느끼긴 마찬가지. 그 날도 무대 매너와 작품마무리에 열을 올리며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조금 까다로운 동작이 있었는데 몇 번이고 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