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

대혼돈…카오스였다. 무슨 전쟁이라도 일어난 양했다. 비단 처음 있는 일만은 절대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유난히 더 떠들어댔다. 희대의 살육극….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신문도, 방송도 한꺼번에 짜고 뉴스를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똑같았다. 단어 하나하나 취재방향 하나하나가 전부 일관됐다. 사람들의 입은 밤새 열린 월드컵 경기를 얘기하듯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전부 그 사건들을 씹고 있었다. 수년만에 돌아온 일주일간의 연휴로 가뜩이나 무료함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호사거리는 없을 터였다.

설사 연휴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아무런 공통된 관심거리가 없는 사회. 아니 그건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심거리는 항상 있었다. 어찌 보면 스스로들 그걸 받아들이길 거부한 것일 뿐. 그랬다. 이 세상에 사는 사회인들 모두는 철저한 방관자이길 자처했다. 마치 깊은 산중에 들어가 도를 닦는 사람들처럼. 모두가 도인이고 해탈자였다. 남자들은 입에 돼지기름을 발라가며 여자를 얘기했고 여자들은 시뻘건 루즈가 잔뜩 묻어있는 투명한 유리잔을 마치 남자의 성기라도 되는 양 어루만지며 빙빙 돌리기에 바빴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공통된 관심은 단 하나 그것뿐인 듯했다. 그들은 밤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아침해를 뻑적지근하게 느끼며 낮을 살았다. 지난밤의 모든 추태는 그걸로 끝이었다. 중천의 해조차도 교묘히 공조를 해주었다. 그들의 입술에서 돼지기름을 없애주었고 밤새 남성을 어루던 빨간색 립스틱은 활기에 찬 커리어 우먼의 상징이 됐다. 그들은 밤, 다시 어제와 똑같은 세계로 동화돼 들어갔다.

완전하게 일치된 세상. 단 하나를 위해 철저하게 단결된, 그러면서도 더욱 철저할 정도로 찢어 발라진 세상이었다. 보이는 것만이 존재할 뿐, 보이지 않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사회였다.

그런 사회에 있어, 그런 사람들에 있어, 이번 일과 같은 호재는 없었다. 그들의 입술에는 똑같이 돼지기름이 발라져 있었고, 똑같은 붉은 색의 끈적끈적한 루즈를 연신 묻혀댔지만, 눈동자만큼은 이전과 달랐다. 생기가 돌았다. 다소 그들 그룹에서 동떨어져 방관자나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던 이들도 이때만큼은 아니었다. 하나같이 사건을, 끔찍한 한 살인 사건에 입술을 물들이고 있었다.

준오가 처음 그 살육을 들은 건 모처럼 만에 장기 휴가를 얻어 고향집에 갔다가 올라오던 그 날이었다. 워낙 깡촌이라서 제대로 된 신문 한 부 구해 볼 수 없었던 그곳서 빠져 나와 버스로 약 1시간 걸리는 읍내에 도착했고, 간신히 서울행 버스표를 구해놓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가뜩이나 혼미했던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사건.

그도 역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 한 명이어서 일까? 아니면 사회부 기자 특유의 직업 정신이 발동한 것이어서 일까? 아님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준오 자신조차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는 어쨌든 한 여인(그것도 자신과 아주 질긴 끈으로 이어져 있던)의 유산과 죽음을 막 경험했던 직후였고, 그로 인한 충격으로부터도 전혀 빠져 나오지 못한 상태였으니. 전날 아침 그 일을 노모로부터 전해들은 그는 내내 시름시름 앓아야 했다.

속이 메스꺼웠다. 원인 모를 두통이 계속되었다. 방에 처박혀 꼼짝 않고 있다가 헛구역질이 나면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쏘여보기도, 소나무 숲을 거닐기도, 바닷가에 가보기도 했으나 구역질을 동반한 두통은 계속되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원래 예정을 삼일씩이나 앞당겨 짐을 꾸렸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은 거였다. 노모는 극구 말렸다. 가뜩이나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내려오지도 않던 아들.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 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서울 유학길에 오른 아들이 못내 안 잊혀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셨던 노모. 아들도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의 머릿속은 항상 노모와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차 있었다. 때론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풋풋한 흙내 가득한 고향과 그 속에서 항상 푸근함으로 사시는 노모의 넉넉함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 것일까.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세월은 약이었다. 특효약. 망각이었다. 그립던 고향은 귀찮은 곳이 되었고 현실의 부침이 어찌되었건 그저 추억으로 남을 뿐이란 걸 얼마가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건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노모와 노부에 대한 감정도 사그라졌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어쩌다 한번 내려갈라치면 피곤이 앞섰다. 그리고 아마 그건 준오에게만 해당되는 경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방문도 그런 것이었다. 어쩌다 한번씩 보는 노모의 얼굴. 갈수록 하얀 서리 같은 백발이 눈에 띄게 느는 그녀를 보며, 십 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꼭두새벽에 일어나 부산하게 옥자둥이 먹일 음식을 한가지라도 더 준비하느라 애쓰는 그녀를 보며, 안쓰러움도 물론 느꼈다. 하지만 그런 감정보다는 오랜 객지생활에서 단련된 냉랭함이 앞섰다. 훌쩍 별스런 말도 없이 가야겠다, 고 나서는 그가 원망스럽기도 했으리라. 이미 몇 달 전부터 예고된 귀향이었고, 때문에 그 기간동안 만큼이나 노모는 많은 준비를 하셨을 터인데. 하지만 노모의 채근질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역시 세월 덕이었다. 그리고 어떤 카리스마 강한 독재자에 의해 철저하게 훈련된 병사들 같이 쉽게 순응하고 마는 것이었다. 가슴이 아팠다면 바로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모의 무력함. 자신에게 철저할 정도로 길들여진 순응뿐인 한 늙은 병사.

터미널은 한산했다. 음력으로 한해를 시작하는 정초임에 틀림없었지만 사람들 몇몇이 보였을 뿐 찬바람만 대기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다소 투박해 보이는 매표원 아가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행 표를 끊어주었다. 11시 40분 발. 강남고속터미널 오후 3시 40분 도착. 잉크가 다 떨어졌는지 찍히다 만 듯한 시간표가 간신히 눈에 들어왔다. 하품을 하는 걸 보니 안에는 난로라도 피워놓은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며 준오는 대기실 안에 있는 신문판매대가 닫혀있는 것을 확인하고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신문판매대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몇 발자국을 더 옮기던 준오는 붙박은 듯이 그 자리에 섰다. 몇 개의 신문이 진열돼 있는데 모두 한 신문인 것 같았다. 속이 메스꺼운 탓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아픈 탓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신문들은 마치 쌍둥이처럼 제호 밑에 똑같은 타이틀을 달고 나란히 사이좋게 열을 지어 있었다. 이게 무슨 별일이냐는 듯. 붉은 피가 뚝뚝 흐르는 잘린 사람의 머리를 들고 서서 태연하게 웃고 있는 전쟁터 어느 병사의 모습처럼. 타이틀 뿐 아니라 사진도 그랬다. 지면의 거의 반을 차지할 듯 대문짝만하게 자리잡은 고딕체의 글자 밑에 고개를 뻣뻣이 쳐든 채 아무런 표정 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청년. '정초 희대의 살육…' 이란 타이틀과 맞아 떨어져 청년의 눈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준오는 순간 각 신문들이 고딕체의 글씨를 왜 톱기사 타이틀에 많이 쓰는 지 이유를 알 것 같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다. 고속버스의 클락션 소리가 조용한 시골 버스터미널을 울렸다. 준오는 재빨리 버스에 올랐다. 손에는 신문 한 부가 들려 있었다. 신문 값으로 낸 지폐를 채 거스르지도 못한 채였다.

버스 안은 한가했다. 터미널 분위기를 봤을 때 다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준오는 마치 낯선 곳에 와 있는 듯한 이질감에 어리둥절해야 했다. 눈이 와 길이 미끄러우니 안전벨트를 꼭 매달라는 덩치 좋은 운전기사의 안내 멘트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그것도 사람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얀 지붕이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전봇대가 울었다. 거리에는 차들도 거의 없었다. 틀어둔 버스의 난방기가 주범이었을 것이다. 불쾌한 냄새가 대살육으로 인해 잠시 숨죽이고 있던 저 깊은 곳의 복병을 다시금 살아나게 했다. 이미 준오의 엉덩이로, 삼분의 이쯤은 몸뚱아리를 점령당해 다소 불편한 소리를 내고 있던 옆자리에 대살육을 던져버렸다. 선명하던 청년의 얼굴이 흐릿해진다고 느끼는 순간, 그리고 그가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생각을 할 찰라 그는 잠이 들고 말았다. 어젯밤 뒤척인 데다 속이 좋지 않아 스스로 최면을 건 덕분이었다. 하이얀 고향이 그의 지친 숨결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죽음의 검은 그림자는, 그리고 항상 그렇게 잦아들었다.

 

엄마,

아기울음소리가 들려

한길 가에서

엄마,

아기가 보여

바닷가 한길 가에서

엄마,

아기가 계속 울어

묘지 옆에서

근데 엄마,

왜 울지 아기는?

아기 옆엔 엄마도 있는데

근데 엄마,

아기 엄마는 왜 달래지 않지?

아기가 우는데

그냥 안고만 있어

아무런 말도 없이

엄마,

아기 엄마도 우나봐

눈물이 보여

달빛에

엄마,

엄마도 우는 거야?

난 아닌데

내 눈이 빛나는 건

그저

달빛 때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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