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하전갯벌의 스타일꾼’ 종백이

 

국내 최대 바지락 생산지로 꼽히는 하전마을에 모처럼 풍년이 들었다. 대풍은 아니라 해도 그만그만하다는 말 정도는 나올 만하다. 오랜만이다. 손을 대면 툭 하고 터지는 봉숭아 씨방처럼, 바지락이 그냥 잘못 다루면 아작 하고 깨져버릴 정도로 속이 꽉 찼다. 맛도 좋다. 죽지도 않았다. 해마다 유행병처럼 돌곤 하던 바지락 폐사 행렬이 금년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봄부터 수출 차량이 마을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덕분에 종백이는 날마다 신이 났다.

“요새는 남자가 금값이여, 남자가 있어야제.”

 

▲ 나 사진 한장 찍어주시오.

 

갯마을의 특성을 종백이처럼 명쾌하게 풀어내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남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남자가 없어서 외국인 남자를 쓰는데 그마저도 모두 추방을 당했다. 이 사실을 종백이만큼 잘 아는 사람이 누가 또 있을까. 종백이 자신은 순수 국산이다. 게다가 평생을 갯벌과 함께 살아 왔다. 갯벌에만 들어가면 새처럼 가벼워지는 그를 탐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몸을 두 개로 쪼개서 하나는 이쪽으로, 다른 하나는 저쪽으로 보내자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그는 갯벌의 달인이다.   

어떤 사람은 가끔 ‘쫑백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주머니들은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종백이 삼촌이라고 부른다. 자기를 삼촌이라고 부르는 아주머니의 남편을 종백이는 또 삼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삼촌의 아내인,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아주머니를 그는 형수님이라고 부른다.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게 대체 족보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사흘만 옆에서 지켜보며 아 이것이 그래서 이렇게 되는 것이로구나, 하고 고개를 절로 끄덕거리게 된다.  

아무튼 종백이는 종백이다. 갯마을 하전에서 종백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 간첩이거나 이제 막 이사를 온 사람일 것이다. 종백이가 유명인사로 사람들의 기억을 차지하게 된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단 하루도 놀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아마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 그는 일거리가 거의 없는 엄동설한 겨울에도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다.

종백이가 일을 하는 목적은 물론 돈이다. 돈을 목적으로 일을 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셈이다. 하지만 종백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돈을 벌자고 일을 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돈의 노예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사랑해서 일을 하다 보니 돈이 그냥 벌려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만하게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 높이 나는 새처럼 멀리 보는 종백이

 

“사람이 열심히 일할 생각부터 해야 쓰는디, 그러면 돈은 자동으로 벌어지는 것인디, 아 그런디 어떤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돈 벌 궁리만 한단 말이오. 돈이란 것이 벌겠다고 궁리만 해서 벌려지는 것이간디. 아이 진짜 답답허당게요. 나는 아무 궁리 안 하고 일만 했어도 통장에 돈이 얼만지 아요? 근디 내가 아까 말한 그 어떤 사람은 돈 벌겠다고 좇나게 서빠지게 궁리는 했지만 통장에 돈은 하나도 없단 말이오. 내가 그것을 알아요. 어찌게 아는지 아요? 아 그 사람이 툭하면 나한테 돈 좀 빌려돌라 한당게요. 그렇다고 내가 빌려주간디? 안 빌려줘요. 왜 안 빌려주냐. 돈밖에 모르는 사람한테 돈 빌려주면 안 되는 것이거든.”

종백이가 내게 직접 해준 말이다. 아니 뭐 굳이 그런 말이 아니라도, 종백이가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그의 출근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 갯벌에 아직 물이 찰랑거리는 시간에 미리 나와서 대기하는 사람이 종백이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아니다. 없다. 어떤 사람은 트랙터가 갯벌로 들어서야 할 시간에도 안 나와서 다른 사람들 애간장을 활활 태워놓지만, 종백이는 늦어도 삼십 분 전에는 나온다.

방구석에 발랑 드러누워 텔레비전이나 쳐다보며 출근 시간을 재는 것은 종백이의 취미가 아니다. 종백이의 취미는 호기심이요, 관심이다. 어떤 날은 세 시간 전에 집을 나와서 아무도 없는 고샅을 조용히 왔다 갔다 하며 마을 전체의 상황을 살피기도 하고, 다른 어떤 날은 땡볕이 맹렬하게 쏟아지는 콘크리트 바닥이나 혹은 잔디 위에 가만히 앉아서 철학을 하기도 한다.

새는 어떻게 해서 하늘을 나는가. 사람은 왜 날개가 없는가. 바다는 왜 나갔다가 들어왔다를 반복하는가, 등등 종백이의 철학은 우주의 운행원리에 닿아 있다. 물론 날마다 그렇게 거창하고 추상적인 것만을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개를 흔히 ‘개새끼’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쁜 사람을 ‘개새끼’라고 욕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하는 탐구에 몰두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고민으로 고개를 잇달아 갸웃거리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어떤 결론이 얻어지면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며 빙그레 웃는다. 웃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상대로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 달리는 트랙터 위에서도 생각을...

 

“내가 생각해봉게 부부라는 것이 이게 정말로 희한하더란 말이오. 아 좋아서 결혼까지 했으면 계속 좋아야지, 왜 나중에 싫어지는 것이냐 이 말이오. 왜 싫어져서 이혼을 하고, 또 다른 결혼을 해서는 또 이혼을 하고, 응? 그렇다고 그 사람을 나쁜놈, 나쁜년, 이렇게 말하면 또 안 된다, 못 쓴다, 이런 이치인 것이란 말이거든요. 사람이라는 것이, 안 그렇소?”

종백이의 강연은 대체로 예고 없이 불쑥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짧다. 덜컹거리는 트랙터 위에서 문득, 갑자기, 이것 정말 큰일이라는 투로 열변을 토하는데 시작했는가 하면 벌써 끝나 있어 버린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저 듣고만 있다가 어느새 입을 꾹 다물어버린 종백이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가끔 ‘지랄한다’ 하는 표정으로 실실 웃어대며 외면해 버리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종백이의 말을 완전 무시해 버리지는 못한다. 그렇다. 철학으로 무장한 종백이의 언변은 듣는 사람을 난감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는 인간사의 그것을 도대체 누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문제를 아예 생각조차 안 해버리고 싶어 하지만, 우리의 종백이는 어렵다 해서 피하지 않고 열심히 연구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나름 애를 쓰고 있는 셈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종백이를 지켜봐 온 지도 햇수로 벌써 삼 년이 넘었다.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무슨 일로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리어카를 발로 걷어차며 누군가를 향해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면전에는 아무도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호되게 나무라는 그 모습이 나는 아마 독특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 묵념이 아니라 철학하는 중

 

그리하여 두 번째 만났을 때 나는 그를 안다는 투로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그는 이게 웬 잡놈인가 하는 표정으로 흘끗 일별하고는 싹 외면해 버렸다. 다음 날 또 만났을 때 나는 역시 웃는 얼굴로 목례를 보냈지만 그는 이번에도 별 ‘개 좇 같은 놈’을 다 보겠네, 하는 투로 싹 외면해 버리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아마 그를 은근히 무서워하며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만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어느 하루 갑자기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형님도 학생 애기 있지라우 잉?”
“학생 애기요?”
“우리 큰놈이 이제 곧 중학교를 가는디 말이오. 교복이 그것이 비싸다는디 얼마나 헌다요?”
“교복?”
“이십 만원 가까이 간다는디 정말이라요?”
“아, 그게 글쎄. 나는 중학생 애기가 없어서.”

말꼬리를 흐려야만 하는 그날의 나는 참 많이도 비참했었다고 기억된다. 그와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눠볼 수도 있었는데 기회를 놓치는구나 하는 아쉬움도 물론 있었지만,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종백이를 실망시켰구나 하는 낭패감이 너무나 컸다.

아니나 다를까, 종백이는 두 번 다시 나를 볼 일이 없을 거라는 투로 입을 꾹 다문 엄격한 표정으로 굴러가는 트랙터의 바퀴나 골똘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제 그와의 인연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는 나를 형님은커녕 아는 사람으로도 대해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며칠 뒤에 다시 마주쳤을 때 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불렀다. 

 

▲ 상황 파악 중인 종백이

 

“아이 형님, 나 사진 한 장 찍어주시오.”
“사진?”
“아 내 얼굴도 한 장 멋지게 찍어주란 말이오.”

소형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하늘을 나는 갈매기라든가 도요새 같은 것들을 열심히 찍어대는 나를 아마 유심히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나는 다시 종백이의 형님이 되었다. 명목상의 형님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거의 형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바지락을 캐낼 때 이따금 나타나는 꼬막이라든가 소라 같은 것을 보면 “형님 가져가시오”하기도 하고, 그날 캐낸 바지락 자루를 트랙터에서 수출 차량으로 옮길 때는 또 남은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형님은 집이 머니까 먼저 들어가시오”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종백이가 금년에는 청년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청년회 부회장이란 종백이의 해석을 따르자면 회장의 오른팔이고, 회장이 유고시에는 회장의 권한을 행사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그런데 일반 회원들 중 몇몇이 부회장의 권위를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개무시’하는 모양이었다.

“아 거 참, 암만 생각해도 모르겠네. 왜 부회장 말을 안 따라주지?”

 

▲ 언제나 뛰어다니는 종백이

 

덜컹덜컹,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굴러가는 트랙터 안에서 종백이는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얘기인즉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청년회 차원에서 뭔가 대단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는 거였다. 청년회가 주최하는 행사에 청년회 부회장인 종백이 자신이 빠질 수는 없었다.

문제는 그날의 물때가 하필 대낮이라는 점이었다. 물때가 조금이거나 한밤중이라면 그걸 핑계로 하루 일을 빠지고 행사에 참여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고 보니 이게 정말로 큰일이었다.

부회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행사를 빠질 수는 없고, 단 하루도 일을 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종백이의 성격에 일을 빠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몸을 두 개로 쪼개서 두 가지 일을 모두 해결할 수도 없으니 정말로 큰일을 만난 셈이었다.

그래서 종백이는 아마 혼자서 몇날며칠 동안 궁리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기막힌 방법을 생각해 냈다. 행사 당일 비가 올 것이다. 일기예보에서 그렇게 말했으니 틀림없이 비가 온다. 그러니까 금년 행사는 취소하고 내년에 다시 하기로 하자. 종백이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청년회 부회장 자격으로 총회에 올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반 회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어떤 이유로도 계획한 행사를 취소할 수 없다는 일반 회원들의 주장에 종백이는 다만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청년회 부회장의 권위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이 문제에 대한 종백이의 충격은 컸지만, 그러나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철학적이면서도 낙천적인 성격의 종백이는 어느새 그 일은 묻어버리고 새로운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버이날이라고 아들들이 편지를 써서 주는디 말이오. 아 큰놈은 자기가 이 다음에 돈 벌어서 아버지 여행 보내준다고, 응? 그렇게 나를 울려 놓는디 말이오. 짝은놈은 한다는 소리가 ‘아빠 돈 많이 벌어서 장난감 신나게 많이 사주세요’ 이랬더랑게요. 아이 참, 거 참.”

 

▲ 종백이의 전문분야

 

종백이의 큰아들은 학교에서 농악을 하는데 꽹과리 주자였다. 종백이 본인의 표현을 따르자면 ‘꽹과리 대장’이었다. 농악대의 맨 선두에 서서 나비처럼 새처럼 날렵하게 움직이는 큰아들을 종백이는 너무너무 자랑스러워한다. 그런 큰아들이 참가하는 행사가 학교에서 열린다. 그래서 그 날은 부득이 일을 빠져야 한다. 

“오매 어찐다여. 삼촌이 빠지면 안 되는디?”

하루 일을 빠진다는 종백이의 통보에 아주머니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종백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명색이 애비란 말이오. 아들놈이 꽹과리 대장인디 어찌 그냥 말 수가 있겠는가 말이오. 가서 닭꼬치도 사 주고 해야 하니께, 그래서 일을 못 나간다 이 말이오. 이해 못 하겠소?”
“아 닭꼬치는 그놈의 것 애들 엄마한테 사 주라고 하면 되지.”
“아따 형수님도 참 답답하네 거. 아 지 엄마가 사 주는 닭꼬치 하고, 애비인 내가 사 주는 닭꼬치가 맛이 같다요?”
“오매 참말로, 환장하겠네 잉?”

이렇게 해서 종백이는 그날 하루 또 일을 빠졌다. 단 하루도 일을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종백이가 일을 빠지는 날이 잦아지는 요즘이었다. 일밖에 모르던 그가 바야흐로 새로운 재미에 빠져들고 있다고나 할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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