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거짓이 없는 세상이 존재한다.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오늘의 이 땅위다. 모두가 참으로만 된 세상. 거짓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참말만을 담고 산다. 항상 변하지 않는 광명의 세계, 상적광토(常寂光土). 순수의 빛으로만 뭉쳐진…. 준오는 참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기자생활을 한지 이제 갓 몇 해가 지났을 뿐이지만 그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염증이 더해졌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두가 참이었다. 참, 참, 참….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근데 세상은 왜 이다지도 탁한 것일까. 그건 참으로 가장된 철저한 거짓 때문이었다. 참말만을 하고 사는 모든 세상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였던 것이다. 거짓이란 독소를 똘똘 뭉쳐 만들어낸 그럴 듯한 참. 그건 참으로 참이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한은. 그걸 거짓이라고 손가락질 해대는 사람들도 없었다. 최소한 그러면 안되는 것이라고, 그러면 큰 실례인 것이라고, 그래서 정말 큰 일이라도 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온갖 세상의 오욕을 조합해 만든 구정물. 그 구정물을 응고시켜 만든 빨래비누처럼 단단하고 매끈매끈한 얼굴들을 지니고 있는 그들. 그들은 기름졌다. 푸석푸석한 피부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목욕탕의 한증막 바닥이 번득거리는 것도, 그런 사람들에게서 빠져 나온 기름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주장과 어울리는 외양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중 한가지가 땀, 아니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기름덩어리를 빼내는 것이었다. 아침이건 낮이건 저녁이건 사우나가 붐비는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준오는 생각했다. 하긴 그런 준오 자신도 그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닌 건 물론 아니었다. 그의 안에서 일어나는 회의 중 상당부분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온통 핏빛이었던 그곳은 최소한 거짓은 아니었다. 아직 사람들도 들끓고 있었다. 경찰과 기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마디라도 좀더 실감나는 술안주거리를 구하기 위해서인지 일부러 구경온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야트막한 언덕의 대로 바로 뒷길에 자리한 허름한 한옥주택의 정문 앞을 서성거렸다. 경찰들도 굳이 그들을 돌려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군중 앞에서 마치 신인 양 행세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준오가 처음 이곳에 온 것은 하루 전 밤이었다.

고속버스는 예정된 시간보다 다소 늦게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전국적으로 쏟아져 내린 눈 탓이었다. 그래도 등치 좋은 운전사의 능숙한 운전솜씨 덕분에 버스는 그럭저럭 속도를 냈고 해가 채 떨어지기 전 터미널에 들어올 수 있었다. 준오는 바로 신문사로 향했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었지만 연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차량들 때문에 도로의 눈은 많이 녹아있었다. 전화는 아까 휴게실에서 차가 잠깐 멈추어 섰을 때 이미 해두었던 터였다. 물론 신문사에 굳이 가야 하는가,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왠지 불안한 예감이 줄곧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결국 준오를 신문사로 향하게 하고 말았다.

"오랜만의 휴가인데 뭘 그리 급하게 올라와? 푹 좀 쉴 것이지."

사회부 캡은 그를 생각해서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도 준오가 소식을 듣고 올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신문사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출근해있는 선배와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끌끌끌 혀를 차는(휴가에서 일찍 돌아왔다는 이유로) 그들을 뒤로하며 캡과의 면담에 들어갔다. 끔찍한 일이었다. 채 신문기사를 읽지 못한 상황이어서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는데 부장은 그런 준오의 상태를 짐작했음인지 마치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처럼 상세하게도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몇 개의 자료가 그 앞에 던져졌다. 경찰발표와 사건 이튿날부터 보도된 기사들, 그리고 범행 피의자의 사진과 인적 사항이었다. 사건 개요는 그랬다. 범인은 올해 23살의 청년이었다. 김경훈.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이미 몇 개의 별(전과)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은 바로 그의 부모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붓아버지와 친어머니. 김경훈은 사건 당일 현장에서 붙잡혔고 이후 일체 입을 다문 채 단 한마디의 얘기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돼 있었다. 자료를 들다 툭 떨어지는 게 있어 집으려던 준오는 갑자기 올라오는 구토를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은 채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이번엔 헛구역질이 아니었다. 한번 터지자 계속해서 게워 올라왔다.

"이제 좀 나아?"

입 주변을 닦고 있는 그에게 들어봄직한 여성의 목소리가 굵직하게 들어왔다. 그제서야 준오는 아까부터 누군가가 등을 쳐주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했다.

"어? 정선배." 사회부의 유일한 꽃 정미희 기자였다. 그녀는 사실 준오와 동갑이었다. 그런데 신문사에 2년여 일찍 들어왔다는 이유 하나로 준오로부터 선배 호칭을 듣고 있었다. 한국 남자들의 영원한 대임인 군복무가 이유였다. 예쁘장한 얼굴에 걸맞는 매력적인 몸매를 소유하고 있는 그녀는, 하지만 목소리만은 남자들 못지 않게 걸걸했다. 편집국내에서는 '화끈녀'로 통할만큼 자유분방한 사생활도 그녀의 몫이었다. 준오가 이제 갓 신문사에 입사해 수습딱지를 달고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있을 때부터 그녀는 많은 말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보통 청바지나 정장바지를 즐겨 입는 다른 여기자들과도 그녀는 분명 많이 달랐다. 얼굴값이라도 하려는 듯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어댔고 그런 차림으로 경찰서를 활보하고 다녔다. 편집국내에서만 아니라 신문사, 아니 그 바닥 전체에서 그녀는 이슈 메이커였다. 자연 누구누구랑 잤다더라, 하는 소문도 끊이질 않았다. 그녀도 그런 소문들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그런 시선과 뒷말들을 즐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막돼먹은 그런 값싼 여자로는 대하지 못했다. 그녀의 일에 대한 열정과 능력 때문이었다. 그녀는 경찰서를 출입하는 여타 남자기자들보다 뛰어났다. 그녀가 맡고 있는 경찰서들은 그녀의 치마폭 아래서 사정없이 휘둘려졌다. 발가벗겨지는 꼴이었다. 한때 준오는 그녀를 둘러싼 루머들은 그런 그녀의 능력에 자존심 상한 '놈팽이' 기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최소한 술에 취한 그녀가 그와의 잠자리서 그러한 모든 루머들이 사실이었다고 고백을 하기 전까진.

"이기자, 그 사진 봤구나? 그렇다고 너답지 않게 이게 무슨 꼴이냐."

투박한 말투에 비해 의외로 여성스런 면이 그녀에게 있다는 것은 준오 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몇 차례의 잠자리 후에야 느낄 수 있었던 거였다.

"가자.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정선배도 끼였어?"

"참 나, 기자생활 원투년하냐? 빨리 주둥아리나 닦아. 현장부터 가보는 게 좋을걸. 가자, 이 선배님이 친히 안내를 해 드릴테니. 눈은 꼭 어젯밤 덕소네에서 삶아먹은 토끼 눈을 해가지고."

그녀가 자주 가는 곳이었다. 토끼탕, 꿩 등의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덕소네는 신문사 바로 뒤편에 있었는데 체력보강을 절실히 요하는 신문사 기자들에겐 인기 만점인 집이었다. 30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데 주인이 경기도 덕소가 고향이었고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어젯밤에도 거기서 질펀하게 '푼' 모양이라고 생각을 하며 준오는 미희의 뒤를 따랐다.

눈은 그쳐 있었다. 이미 자료에서 읽어 대충 위치를 짐작하고 있던 준오는, 하지만 배당돼 타고 나온 신문사 차량이 대로변에 멈추어서자 다소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고층 빌딩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그곳. 사건 현장이 거기서 멀지 않다는 것은 굳이 미희의 설명이 없더라도 짐작할 만 했다. 대로변에서부터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골목 안으로 몇 발자국 떼어놓기도 전 이미 사람들의 잦은 발걸음 탓에 시커멓게 탈색돼 본연의 기능을 잃어버린, 질퍽거리는 눈의 시체들 사이로 핏빛 냄새가 전해져왔다. 사건발생 후 2-3일이 지났는데도, 영하의 추운 날씨였는데도, 대살육의 냄새는 강하게 코끝을 자극하고 있었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준오의 어깨를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툭 치며, 미희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현장으로 앞장서 다가갔다. 유난히 빨갛게 느껴지는 그녀의 미니스커트 속, 두터운 스타킹에 가려진 매끈하면서도 적당히 살이 오른 허벅지가 그의 시선을 헤매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찬 공기와 부딪쳐 하얀 연기를 피워냈다. 그 연기의 색깔이 점점 진해질수록 핏빛 냄새가 강해졌다.

"어이, 뚱반장"

준오도 봄직한 뚱뚱한 몸매의 50대 남자를 미희가 불렀다. 가무잡잡한 그 사내는 일전 미희와 술자리를 할 때 한번 만나 본 적이 있는 그 지역 관할경찰서 형사반장이었다. 미희는 그 남자와 잘 어울렸다. 물론 누구나 하고 그랬지만 유독 그 사람과는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그 때 술자리에서 받은 준오였다. 무슨 이유여서 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이 남자하고도 몸을 섞은 것일까, 준오는 둘이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잠시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기실 따지고 보면 둘은 아버지와 딸의 입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미희는 그렇지 않았다. 말을 놓는 것은 행동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옆자리에 찰싹 달라붙어 그의 허벅지를 어루만지는 건 예사였고, 나중엔 엉덩이까지 주물러 댈 정도였으니. 물론 입에서는 그냥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노가리'들이 계속해 풀어헤쳐지고 있었다.

"마누라 왜 친정 갔다메? 어떻게 해결한데…내가 좀 도와줄까?"

준오가 분명 앞에 있는데도 미희는 그랬다. 하지만 더 웃기는 건 그 뚱반장의 태도였다.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미희가 엉덩이를 만지면 "어이 색녀, 나 쏠리면 책임질거야? "라는 말이 고작이었다. "요즘 남자가 궁한가 보네…오늘 또 힘 좀 빼겠구만" 식의 말도 내뱉었다. 하지만 자리가 파하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관계란 참 신기한 것이었다. 준오가 끝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뚱에게 물었을 때 그는 그때 분명히 대답했었다. 딸만 셋인데 큰놈은 벌써 시집가서 아이까지 둘 낳았고, 둘째는 결혼은 생각도 안하고 대학 졸업 후 유학 갈 준비를 한다고. 굳이 막내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렇다면 미희보다 오히려 더 큰딸을 두었다는 얘기인데 뚱과 미희는 그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관계를 오묘하게도 깨트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뚱이었다. 미희는 여전히 사람들이 왁자지껄한데도 뚱의 엉덩이를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쳐대며 요란하게 후렴구를 붙였다.

"흐흐흐… 색기자 왔구만."

특유의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화답했다.

"어? 신사 후배님도 오셨네."

한층 강도가 더 해진 피 냄새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자기에게도 사람 좋게 인사를 건네는 그를 보며 준오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집이 있나, 싶게 한옥은 초라했다. 그럭저럭 집 형식은 갖추고 있었지만 군데군데가 깨어져 금방이라도 길가는 사람들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릴 듯한 기와 지붕 위에는 여름에는 꽤 무성했음직한 풀 포기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조그마한 철제대문 앞에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쳐놓은 노란 선은, 준오가 군복무 때 보았던 강원도 철원 민통선의 삭막한 민간인 출입 금지선을 떠오르게 했다.

언제부터 이 사람들은 여기 모여 있었을까. 그들은 상당히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두런두런 알 수 없는 소리들을 내뱉고 있었다. 근처에 살며 상당한 애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하던 준오는 혼자서 픽하고 실소를 토해냈다. 미희가 들었는지 흘낏 준오 쪽을 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빨간 색 가죽미니스커트가 다시 클로즈업돼 들어왔다. 갑자기 엉덩이가 씰룩씰룩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싶더니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준오도 뒤를 따랐다. 사실 준오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이었다. 평소 비위 강하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오늘은 왠지 캥기는 것이었다. 그대로 들어 갔다간 괜히 경찰들이나 그 잘난 미희한테 창피나 당할 게 뻔한 일이었다. 망설이고 있던 차에 자기도 모르게 미희의 움직임에 끌려간 것이었다. 들어가면서 그는 사건 일어난 지가 며칠 지나 그래도 다행이라고 자위를 했다.

뚱은 움직이지 않고 남아 있었다. 어떻게 하는지 두고보자는 심산인 것 같았다. 대신 보초를 서던 다소 어려 보이는 경찰관 한 명이 후레시를 든 채 따라 들어왔다. 미희는 안이 꽤 어두웠는데도 마치 자기 집 안방이라도 들어가는 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비릿한 냄새를 코끝으로 한껏 느끼며, 준오는 움직이지 못하고 한참 동안을 그렇게 서 있어야 했다. 느릿느릿한 눈이 갑작스런 어둠에 적응을 못하고 있었던 탓이다. 단지 후각만 예리해질 대로 예리해져 집안의 모든 사물을 너무나 또렷이 감지하고 있었다. 갑자기 뻘건 핏물이 눈에 확 틔어 들어왔다. 경찰관의 후레시 불빛을 받은 지점에 채 응고가 덜 된 검붉은 색의 죽은피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다시 올라오는 구역질을 간신히 참으며 시선을 돌리던 그는 갑자기 시야가 확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잽싸게 밖으로 뛰쳐나와야 했다. 미희였는지 경찰관이었는지 모르나, 누군가가 집안의 전기스위치를 찾아 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살육의 광경. 뚱이 웃고 있었다.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온몸의 세포가 전부 일어나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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