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연휴였는데 이태원 거리는 휘황찬란한 술집의 네온사인들로 물결치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는 사람들. 매달아 놓은 간판에 머리가 거의 닿을 듯한 장신의 노랑머리와 곱슬머리 외국 남자 둘이 히히덕 거리며 준오의 바로 앞에서 걷고 있었다. 짧게 자른 머리를 보아선 불쌍한 코리아를, 어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완벽하게 지켜내고 있는 미군들인 것 같았다. 그 옆에는 역시 그들과 같이 노랑 빨강 머리를 한 여성들이 팔짱을 낀 채 알아듣지 못할 영어를 씨부렁거리며 한껏 빼입은 듯한 가죽 바지 속의 엉덩이를 놀려대고 있었다. 서양인들이라서 일까. 체형미가 아주 빼어난 그녀들은 풍만한 상체와 찌르면 터져 버릴 듯 살이 오른 엉덩이에 비해 아주 가냘픈 허리를 지니고 있었다. 준오의 말초신경이 요동치고 있었다. 저런 하얀 살결의 암컷들과 한 번 자봤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아니 엉뚱한 것만은 절대 아니었다. 준오는 언제부터인가, 그러니까 여자에 대해 잘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안다고 친구들 앞에서 떠벌릴 때부터 그런 호기심을 강하게 느꼈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일부러 포르노 비디오를 틀어주는 여관에 친구들과 찾아가 밤을 새운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거기엔 준오가 원하는 것들이 있었다. 준오는 그때마다 죄없는 다섯 손가락을 오므락질 해댔다. 그리고 그때마다 언젠가는… 하고 기대에 부푸는 것이었다.

수컷 둘과 암컷 둘은 준오의 코앞에서, 온통 인도를 점령한 채,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을 밀치고 지나갈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준오는 이내 포기했다. 계속해 요동치는 색다른 암내를 즐기는 것도, 그럭저럭 할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서두를 일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두 암컷이 몸을 훽 돌렸고, 준오는 중학교 3학년 짜리 남학생이 옆집 처녀의 목욕장면을 훔쳐보다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다행히도 그들은 바로 옆 가게 앞에 전시돼 있는 가방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준오는 조금전 보다 더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을 발견했다. 주범은 바로 그들, 그러니까 8등신에 터질 듯한 가슴과 찌르면 금방이라도 희노란 액체를 쏟아낼 듯한 엉덩이, 그 두 개를 완벽하게 이어주는 환상적인 허리를 지니고 있는 두 암컷의 얼굴 색깔이었다. 그들은 동양인, 그것도 준오와 똑같은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씨발…."

준오는 그 미국인 수컷들이 그 한국인 암컷들을 수호하느라 열어준 틈 사이로 몸을 빼냈다. 소방서 옆길로 향하는 길에 다다랐을 때까지도 그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쌍스런 욕이 뇌까려지고 있었다. 아마 암컷들이 한국인이었다는 것보다도 기대에 차 있던, 그리고 그걸 한껏 음미하던 준오의 부풀려진 말초신경을 일거에 꺾어 버린 데서 온 실망감 때문일 것이었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아 클럽 N은 금방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은 원래 미군들을 위한 술집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람들도 하나 둘씩 찾아들었고, 지금은 미군들보다는 오히려 한국인들의 술집이 되다시피 했다. 그것도 예술 꽤나 한다는 문인 나부랭이들이나 화가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들과 소통하는 기자들도 상당수 드나든다고 준오는 익히 들었던 처지였다. 이제 단 세 번 밖에 그곳에 가보지 못한 그에게 그런 '엄청난' 역사를 알려준 이는 물론 미희였다. 그녀는 그곳에 아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이면 대부분의 밤을 그곳에서 보낸다고도 했다. 집이 가까워서 일거라고 첫 방문 때 준오는 생각했었다. 처음 그를 안내한 그녀는 그 날 만신창이가 되도록 술을 퍼마셨다. 준오도 그렇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준오는 희뿌연 새벽안개가 깔린 한남동의 언덕거리를 내려왔다. 그곳에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대학에 다닐 때부터 혼자 살았다고 했었다. 고향은 서울이었고 그녀의 부모 역시 눈을 시퍼렇게 뜬 채 거기서 불과 다리 하나 사이인 강남에 살고 있다고 했다. 왜? 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녀는 술을 한 잔 들이키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던 것 같다. 굳이 더 알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좀 더 쉽게 둘 사이에 뛰어넘으면 안되는, 그렇게 하면 정말 큰 일이라도 나는, 철조망을 단단히도 쳐놓았다. 그리고 그 걸 사이로 해서 단순히 즐기는 일에만 몰두하면 됐다.

준오는 바에 앉아서 독한 양주를 거푸 입에 던져 넣었다. 칙칙한 빨간 색의 조명등이 안간힘을 써댔다. 불이라도 난 양 구석 곳곳에서 계속해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끈적끈적한 재즈선율이 그 사이를 헤집고 흐느적거렸다. 거기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였다. 7-8명은 되는 사람들이 저마다 술과 선율에, 삶에 찌든 몸뚱아리들을 내던지고 있었다. 한쪽에 조그맣게 마련된 스테이지에는 두 남녀가 있었는데 하나는 색소폰을 연주하는, 전에도 본 적이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중년 남자였고, 하나는 가슴이 거의 드러날 듯한 검은 색 탱크 탑 상의에 빨간색 가죽 미니스커트를 걸친, 꽤 고혹적 몸매의 여자였다. 그녀는 차림새에 뒤질 새라 어깨 바로 위까지 오는 다소 짧아 보이는 퍼머 머리를 양손으로 쓸어 올리면서 영화에서나 본 듯한 이상야릇한 춤을 추어대고 있었다. 아까부터 줄곧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준오는 어쩜 춤이라고 하기보다는 몸부림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무당들이 귀신들을 불러오기 위해 굿을 하듯, 한에 젖은 듯, 온 몸을 도리질해대는 것이었다. 언젠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외국영화에서 본 어떤 글래머 여배우가 떠오른 건, 그리고 그녀가 무척 관능적이라는 생각이 든 건, 단순히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준오가 기억하건데 그 알지 못할 이름의 여배우는 섹스를 하고 있었다. 준오가 춤이라고 느낀 그것은 쾌락에, 극도의 쾌락에 젖은 오르가즘의 발현이었다. 스테이지의 그녀가 그랬다. 무당이 귀신을 부르듯 그녀는 남자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와 오르가즘을 즐기는 것이었다.

풀어 헤쳐진 머리가 다시 올려지는가 싶더니 그녀의 눈동자가 관음자의 시선과 맞닿았다. 술집에 들어온 지 벌써 한시간 여는 된 것 같았는데 미희는 내내 그렇게 춤추고 있었다. 한번인가 간신히 눈을 마주쳤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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