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을 희롱한 그녀가 어느 순간 야릇한 땀 냄새를 풍기면서 다가왔다. 그리고 준오의 어깨를 툭, 하고 치더니 언더락 술잔을 내밀었다. 갈증도 났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준오가 가득 술을 부어주었다. 새로 개봉한 것이어서 그런지 스님들이 목탁을 치는 듯한 청명한 소리가 독한 알코올로 잔뜩 흐려진 준오의 머리에 명쾌하게 와닿았다. 그녀는 단숨에 비워버렸다. 방금 들이킨 양주 색깔과 똑같은 실핏줄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하얀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그리고는 준오의 술잔을 채우더니 자신의 잔에 다시 술을 따랐다.

"오늘, 술이 받는데…후후. 많이 마셨어?"

전작을 얘기하는 것이리라 생각하며 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N에 오기 전 준오는 사건현장 인근의 포장마차에서 오뎅 국물을 안주 삼아 소주를 한 병이나 비웠던 참이었다. 그녀가 포장마차에 따라 들어와 뭔가를 얘기하려다 그냥 N에 가 있을게, 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떠났을때 그냥 집으로 가려고 했던 준오가 생각을 고쳐먹고 N으로 발걸음을 돌린 것은 순전히 술 탓이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술에 취한 날이면 쓸어 안을 수 없을 정도의 허무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 해결방법을 여자에게서 찾았다. 상대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굳이 신경 쓸 바 아니었다. 그냥 자신과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는 동물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른 구조 위에서 그는 술기운을 핑계삼아 장엄한 능력의 수캐가 되면 되는 것이었다. 미희는 아주 좋은 상대였다. 아까 길거리에서 본 암컷들보다 나은 신체구조는 아니었지만, 어제부터 연속으로 일어난 준오 안의 결코 작지 않은 사건들을 그나마 덜어줄 파트너로는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목소리가 말짱했다. 금방 마신 술이 처음인 모양이고 그건 분명 다행이었다. 최소한 오늘만은 그녀가 모성본능을 발휘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늘어나는 술잔과 함께 더해졌다.

"속은 괜찮아?"

모 방송에서 9시 뉴스를 맡고 있는 여성 아나운서와 같은 중성적 목소리로 그녀가 물어왔지만 준오에게는 무척 부드럽게 들렸다.

"너…오늘 많이 상해 보인다. 너 같지 않게. 아까부터 그랬어. 사건말고 다른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냐?"

준오는 풋,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영악함 때문이었다. 누가 사건기자 아니랄까봐. 말 대신 준오는 술을 한잔 더 털어 넣었다.

바로 옆자리에서 일본인들로 보이는 사람들 둘 셋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쪽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걸로 봐 우리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가 아니고 조금 전까지 무대 위에서 오르가즘을 발현시키던 미희였다.

이태원을 한 번 특집취재한 일이 있었다. '바뀌고 있는 이태원 거리' 라는 타이틀이었던 것 같은데 젊은이들의 환락의 거리였던 이태원에 호스트 바와 게이 바 등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외국 관광객들이, 특히 일본 관광객들이 늘어난다는 내용이었다. 취재 중 발견한 사실은 게이 바를 이용하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수효가 엄청나다는 사실이었다.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게이 바는 대부분 이쪽 소방서 뒤쪽을 위시로 해 주로 이태원 뒷골목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수효만도 20여 개에 이르렀다. 그곳에 가면 날씬한 몸매의 아가씨들이 고객들이 좋아하는 온갖 프로그램으로 무장한 채 한국의 다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화끈한 서비스를 해주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한가지. 바로 그 아가씨들은 대부분이 남자들이라는 거였다. 걔 중에는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완벽한 여자의 그것을 지닌 트랜스젠더들도 있었으나 상체만 여자인 중성, 그리고 차림새와 말투만 여자인, 아직은 남성인 여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물론 여성으로 살기를 원하는 남성들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두 완벽한 여성이 되기를 희망하는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번 돈을 어지간한 보통 여성들보다 더 차곡차곡 모으면서 성실한 생활들을 하고 있었다. 수술비 때문이었다. 이미 여성이 된 이들은 다소 부족하다 싶은 부분을 완벽히 하기 위해, 재수술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받았고, 때론 일본에까지 가서 수술을 받는 사례도 많았다. 다른 이들은 물론이었다. 때론 일본의 현지처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태원 근처 일본인들이 마련해준 집에 기거하면서 꽤 부유한 삶을 영위했다. 술집은 일종의 부업이면서 사교장인 셈이었다.

여전히 그들은 미희를 흘끔흘끔 바라보고 있었다. 준오의 시선을 의식했음인지 미희가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바라보았다. 일본인 사내들 중 하나가 마시던 잔을 들더니 미희에게 사인을 보냈다. 미희의 어깨가 으쓱하더니 이내 손이 올라갔다. 정확히 말하면 손가락, 그것도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올린 것이었다. 상징이란…. 나약한 일본인들은 아예 기가 꺾인 모양이었다. 한마디 어필할 어떤 동작이나 말도 보이지 못하고 술잔만을 연신 입에 갖다 댈 뿐이었다. 술기운이 왕성하게 작용하고 있었음에도 순간적으로 반응하던 준오의 연민은 하지만, "병신들 지네 마누라거나 빨 것이지 이 먼 곳까지 와서 개지랄들이야"하는 미희의 뒤이은 공격에 금방 사그라지고 말았다.

찬바람이 준오의 말초신경을 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한강으로부터 불어오는 그것은 알코올에 푹 절은 준오와 미희의 육신을 휘감으며 한남동 언덕길을 따라 몰아쳐 올라왔다. 준오의 팔을 꼈다기보다 끌어안았다고 하는 게 옳을 미희의 상체 사이로 독한 술기운이 느껴졌다. 미희는, 아까 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이더니, 그래서 그만하고 들어가자는 채근까지 하더니, 지금은 준오 보다 더 취해 있었다. 탐스러우면서 탄력 넘치는 두 개의 몸이 아까부터 팔꿈치를 계속 자극하고 있었다. 미희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벌어질 일들을 그려보았다. 매번 그렇듯이.

항상 미희의 오피스텔에 올 때마다 약간의 수줍음을 느껴야했다. 세상은 그런 게 아니었지만 준오는 자신이 스스로 낙오자라도 된 양 행동했다. 오피스텔 입구에는 항상 노란 테이프가 두 줄 둘러진 감청색 모자에 역시 같은 색의 제복을 입은 경비가 앉아 있었는데, 그는 이젠 준오의 얼굴을 알고도 남는 모양이었다. 처음 술기운으로 오피스텔에 들어섰던 준오는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그리고 마지막도 똑같은 상태였지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행인 것은 준오의 얼굴이 그렇게 달아오르는 걸 미희가 보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준오는 미희와의 그 다음 행동에서 좀 더 과감해질 수 있었다. 딩동, 하고 엘리베이터 도착신호가 울리면 그들은 칡넝쿨처럼 얽혀진 팔에 더욱 더 힘을 주면서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거기서부터 미희의 용틀임은 시작됐다. 혹 엘리베이터 안에 카메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처음의 우려는 그런 준오의 어설픔을 눈치 챈 미희의 더욱 격렬한 몸짓으로 고개를 채 들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항상 그렇듯이 암컷은 교태 어린 몸짓으로 수컷의 몸을 감싸 안았고 수컷은 못이기는 척, 그 다음엔 오히려 암컷보다 적극적이 되곤 했다. 11층. 그다지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한 층 한 층 올라갈수록 격렬해지는 준오의 몸짓에 맞춰 미희도 신음소리의 볼륨을 올려갔다. 그 다음의 딩동, 하는 소리는 그들에겐 휴식이었다. 물론 건너뛰어도 될 것이었지만 잠깐의 아쉬움은 오히려 더욱 애절한 뒤를 예고했다. 거기서부턴 미희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기도 전에 서둘러 가방의 자크를 열었고, 손을 집어넣어 열쇠를 찾느라 바빴다. 그리고 역시 결코 여유롭지 못한 자세로 현관문의 열쇠구멍을 찾았다.

준오는 처음 관계를 가질 때 이렇게 차가우면서 또 이렇듯 뜨거운 여자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완벽한 암컷. 아니 완벽하게 단련된 암컷이라고 보는 게 옳을 듯 했다. 수컷은 그런 암컷에 의해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보일러 온도를 올리지 않아 차갑기만 한 바닥이나, 딱딱한 감색 나무 위에 5cm 두께의 유리판을 깔아놓은 다소 불안해 보이는 식탁, 채 시트를 씌우지 않은 차가운 침대 위에서도, 수컷은 뜨거움을 느꼈다. 미희는 일 외에도 얼마든지 용감하다는 걸 단 한번도 빠트리지 않고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그 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달라진 것이라곤 수컷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한층 적극적이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암컷을 주눅들게 하는 것이었다. 암컷은 그 날 만큼은 수컷의 광폭과 거칠음에 자신의 숙련된 재능을 채 다 펼쳐 보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둘이 한바탕 일을 마치고 들어간 욕실에서도, 창문 틈새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한강의 찬 냄새에 눈을 깬 다음날 새벽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암컷은 소슬바람에 떠는 단수수대 사이의 초승달 마냥, 등을 한껏 휘더니 마지막 수컷의 공격에 그대로 온 몸을 축 늘어뜨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르르 부르르, 마치 단 칼에 급소를 찔려 울컥울컥, 피를 토하는 돼지의 마지막처럼 그렇게 진저리를 치는 것이었다. 한 겨울이었지만 흐트러진 암컷의 앞 머리카락 사이로 땀 한 방울이 진하게 배어 나오더니 이내 콧등을 타고 굴러 떨어졌다. 피식 웃는가 싶었더니 이내 잠이 들었나보다. 거칠던 숨소리가 고르게 퍼졌다.

준오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연기가 방안을 한바퀴 빙 돌며 간밤의 뜨거웠던 열기를 어루더니 창문 틈새에 이르러선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했다는 듯 걸음을 재촉했다. 준오의 시선이 창문 틈새로 빠져나가 찬바람에 위축되는 그 연기를 좇았다. 그 언저리에 한강이 있었다. 얼어붙지 않는 강…. 한때는 스케이트를 타기도 했다는데. 그 강은 마치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커다란 스크린처럼 준오의 눈에 잦아들었다. 가로등 불빛이 새벽 한강의 한산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거기서 보는 한강은 아름다웠다. 그 시간에 보는 한강은 더욱 그랬다. 그 속엔 항상 겉으로 보이는 '온유'나 '평온함' 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부유' 를 안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데도 아름다웠다. 비록 썩어 문드러진 시체들의 신음소리가 그 속에 가득하고, 그걸 뜯어먹는, 그래서 목숨을 연명해 가는 시커먼 물고기가 그 속에 있다고 해도 아름다웠다. 거기서, 그 시간에 보는 한강은.

미희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남아있었다. 아직 조금 전의 격렬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바로 달라진, 그리고 분명 미희가 당황했을 정도로 광폭해지고 거칠어진 자신의 행동이었다. 항상 그는 수동적이었는데 어제부터 조금 전까지 이어진 세 번의 정사에선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무언가 둔탁한 물건으로 뇌리를 한 대 제대로 얻어맞은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원인을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살인 사건은 자신의 의식에 어떤 변화를 줄만한 그런 충격은 되지 못했다. 사회부기자 생활을 하면서 피 흘리는 시체를 겪는 건 이미 단련이 될 대로 된 상황이었다. 때론 직접 영안실에 들어가 시체를 들춰보는 일도 부검의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태연히 해 낸 그였다. 그 스스로도 놀랐을 정도로. 치정에 의한 살인 사건이었는데 갈라진 여자의 배 사이로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내장이 출렁이고 있었다. 방부제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그는 간신히 코끝만을 마스크로 가린 채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냈다. 그가 수습기자일 때였다. 데스크로부터 명령이 떨어졌고, 그는 뚜렷한 목적의식도 없이 단순히 시체의 상태를 살피라, 는 주문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 시체를 살핀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이유는 없었다. 하나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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