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어미 고양이가 사라진 뒤

새끼를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도 아닌, 네 마리씩이나 낳아서 열심히 젖도 잘 먹이고 배설물도 잘 치워내며 씩씩하고 명랑하게 활보하던 어미가 집을 나갔다. 아니 사라져 버렸다. 어미가 사라졌는데도 우리는 차마 사라졌다는 생각은 못한 채로 열 시간이나 기다렸다. 물론 처음부터 열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해보지도 못했다.

어미 고양이가 안 보인다 싶었을 때 우리는 다만 “어라, 얘가 어디 갔지?”했을 뿐이었다. 새끼를 낳은 뒤에도 잠깐씩 어딘가를 다녀오는 예전의 습관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우리도 알고 있었다. 그 어디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알고 싶다 해서 알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리 달린 건강한 동물이 어디인들 못갈 것인가.

 

▲ 새끼들을 일단 바구니에 담아서...

 

아침에 해가 떠오를 무렵까지만 해도 녀석은 집안에서 새끼들과 함께 누워 있었다. 새끼들 중에 일부는 팔자 좋은 자세로 널부러진 채 잠들어 있었고, 일부는 젖을 빨고 있었다. 어미 또한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내가 들여다보는 순간 눈을 번쩍 떴다가는 ‘에이 또 난 누구라고’, 하는 투로 슬그머니 도로 감았다. 우리의 아침 일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검은 고양이 야옹이가 새끼를 낳은 뒤로 무척 심심해져 버린 골드 녀석은 마당에서 혼자 귀뚜라미를 쫓아다니고 있었고, 연못에서는 붕어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구경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태양 때문에 기류가 바뀌어서 불편하다는 것인지 하여튼 펄쩍펄쩍 뛰고 있었고, 백 년도 넘었다고 하는 감나무에서는 까치와 어치, 동박새, 참새 등등 온갖 새들이 노래자랑이라도 하듯이 저마다 소리를 질러대는 그런 아무 이상이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마당에서 이슬을 털어가며 풀을 몇 개 뽑았고, 그녀는 언제나처럼 집안에서 밥상을 차려놓고 밥 먹읍시다,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언제나처럼 컴퓨터를 켜고, 대통령 하나 잘못 뽑으면 나라가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내용의 팟케스트를 골라 틀어놓고 마주앉아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서 잠시 하늘을 보고, 마당의 풀도 몇 개 뽑아보는 척하다가 돌아섰을 때, 그때 문득 어미 고양이가 안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것은 생각이라기보다 예기치 않은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 일의 진행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느끼는 어렴풋한 어떤 예감이었다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뭐냐, 이 불길한 느낌은?”

“불길은 무슨, 곧 돌아올 거예요. 새끼를 두고 설마, 기다려 봐요.”

 

▲ 주사기에 우유를 담아서 먹여보는데...

 

그녀는 나를 안심시키고자 하고 있었지만, 그녀 자신도 이미 안심하고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날따라 하필 주말이었다. 주말이면 가끔 예약이 꽉 찬 식당에 불려가서 설거지도 하고 서빙도 하는 그녀가 출근하는 날이었다. 그녀를 태우고 버스 정거장까지 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각종 생각들이 춤을 추었다.

새끼 낳는 장면을 사람이 봐버려서인가? 그 순간에는 별 느낌이 없었지만, 새끼를 낳고 하루, 이틀, 날수가 더해질수록 인간들이 너무 무례하구나 싶어져서, 그래서 그만 집을 나가버리기로 한 것인가? 아니면, 새끼를 처음 낳고 보니 젖 먹이고 핥아주며 키운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그래서 그만 혼자 자유롭게 널널하게 살고 싶어져서 결단을 내려버린 것인가?

아니다. 이런 상상은 허접하다. 보다 구체적이고 본질적이며 직접적인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게 뭘까, 응? 뭐지? 그렇게 온갖 상상과 자문자답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지고 싶지 않은 물건을 눈앞에 두고 벌이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같은 성질의 것일 뿐이었고, 사실은 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는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나는 다만 그 답에 도달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고 싶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는 것일 뿐이었다.

일부 건강원을 중심으로 다 자란 고양이 한 마리가 육만 원씩 거래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한 달여 전인가, 아마 그 즈음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고양이를 전문적으로 포획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그때 들었다. 고양이가 사람의 어떤 질병에 좋다는 속설은 예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실제로 거래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들을 때는 허허 참 내, 하는 식의 혀 차는 소리나 두어 번 내고 말았지만, 어미 고양이가 사라진 상황에서 떠올려보는 그 소리는 호러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내가 마치 쑥 들어가 있어 버린 것처럼 등골이 다 서늘할 지경이었다.

 

 

그녀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재빨리 둘러보았지만 어미는 아직도 안 보였다. 새끼들 네 마리는 서로의 몸을 의지해서 그나마 아직은 잘 자고 있었다.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어떤 녀석은 귀를 쫑긋거리기도 하고, 또 어떤 녀석은 꼬리를 들썩거리고 있기도 했다. 이런 평화의 시간이 지속된다는 보장도 이제는 없구나, 생각하니 내 몸이 통째로 눈물이라도 돼버린 것처럼 중심을 잡기조차 어렵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일단은 정신을 차려서 냉정한 마음으로 집 주변이라도 좀 수색해보기로 했다. 허물어져가는 옆집 헛간에도 들어가 보고, 대나무 숲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어미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막연히 그냥 기다려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그렇게도 못 나고 보잘것없이 작아 보일 수가 없는 것이어서, 나는 또 한 번 슬픔의 덩어리가 돼서는 그냥 우두커니 앉아나 있고 말았다.

어미가 사라졌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뒤로 세 시간쯤 지났을 때부터 새끼들이 꼬물거리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마리가 주둥이를 내밀고 여기저기 더듬거리는 정도였다. 뒤를 이어 또 한 마리가 주둥이를 내밀고 여기저기 더듬거리고, 마침내는 네 마리가 일제히 주둥이를 내밀고 서로의 몸을 더듬어대다가는 온 몸을 격렬하게 꿈틀거리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직 눈도 제대로 안 뜬 살덩어리 네 마리가 있는 힘껏 꼬무락거리며 소리를 질러대는데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검은 고양이 야옹이가 새끼를 두고 사라졌다는 것 정도는 골드 녀석도 아마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마당에서 혼자 쓸쓸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의자 위로 올라가서 잠을 자던 골드 녀석이 새끼들의 칭얼대는 소리에 눈을 뜨는가 싶더니 동작정지 상태로 한참을 있다가는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마자 쏜살걸음으로 달리더니 새끼들이 꼬물거리는 집안으로 쑥 들어갔다. 나는 아마 그 순간 새끼를 잡아 죽인다고 하는 사자 수컷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게 뭐냐, 너 왜 그래 인마.”

 

▲ 수컷이 새끼를 품었는데..

 

놀란 내가 달려가서 꽥 소리를 질러대며 안을 들여다본즉, 어안이 벙벙하게도 골드 녀석은 새끼들을 품고 있었다. 아쉽게도 수컷이라 젖이 없으니 누워서 젖을 먹일 수는 없고, 뒷다리 두 개를 바닥에 착 깔고 앉아서는 새끼들이 그 위로 올라와서 뭔가 체온 같은 것을 느끼게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어른이 옆에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투의 무슨 노래라도 불러주는 것인지, 하여튼 그렇게 비스듬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기가 막히게도 새끼들은 제 어미가 있을 때와 거의 동일한 자세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는 것이었다.

새끼들은 분명 배가 고플 터이었다. 배가 고프면 우는소리를 내서 보육 담당을 부르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얘들은 어미가 사라져서 젖을 먹은 지도 한참인데 아무 소리도 안 한다. 그저 콜콜 잠이나 자고 있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하나 수컷의 몸일 뿐인데도 말이다. 이 신기한 현상을 혼자서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그녀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녀는 어머, 어머, 정말? 정말? 하고 깜짝 놀란 소리를 열 번도 넘게 하다가는 끝내 불안한 목소리로 어미의 안부를 묻는다.

어미가 돌아왔으면 수컷이 저런 신기한 행동을 하겠는가?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는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생각하면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인터넷 세상에서 인터넷 검색을 한 번만 해보면 어미 없는 새끼 고양이를 어떻게 기르는지 다 나와 있을 텐데 희한하게도 나는 그런 쪽으로는 전혀 생각을 못해본 채 그저 어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컷 골드가 새끼들을 품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얼마나 갈 것인가. 이제 곧 난리가 날 텐데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해, 응? 그런 바보 같은 걱정이나 하면서 말이다.

사실로 나는 골드 녀석이 잘하면 한 시간 정도나 그렇게 새끼들을 품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두 시간도 후딱 가버리고 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째가 됐는데도 녀석은 의연하게 처음의 자세 그대로 앉아 있다. 골드의 그런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품에 안긴 채로 잠든 아이가 깰까 염려되어 꼼짝을 못하고 앉아 있던 먼 옛날의 내 누님을 닮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 모든 어른들의 새끼를 대하는 마음은 다 같은가 보다.

 

▲ 으아 혼났다~ 냥

 

좋다. 골드 녀석은 그렇다고 치자. 수컷의 품에 안긴 채로 거의 꼼짝을 안 하고 있는 새끼들은 대체 무슨 최면에 걸려 있는 것인가. 아니면 무슨 깊은 착각의 늪에 라도 빠져 있는 것인가? 젖을 먹은 지 열 시간이 다 돼가니까 지금쯤 배가 고프다 못해 쓰리고 아플 지경일 것이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을 치기는커녕 잠이나 열심히 자고 있는 저것들은 대체 수컷으로부터 무슨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는 것인가.

혹시 그것이 최고 등급의 사랑인 것은 아닐까? 사랑이 매우 지극한 진정성을 띠고 있는 까닭에 수컷 골드의 몸에 있는 지방질이며 단백질이며 탄수화물 등등 생존에 필요한 물질들이 체온을 통해서 새끼들에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자, 나는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열 살 미만의 순정한 아이들처럼, 감상에 푹 빠진 채로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와 그것들을 품고 있는 수컷 고양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수컷은 젖꼭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젖이 안 나오는 것일까. 새끼를 암컷이 낳았으니 젖은 수컷이 먹이는 게 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옳지 않은가? 등등 그런 철부지한 불만과 투정을 혼자 되풀이하며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나는 그러니까 이를테면 온 몸이 차근차근 슬픔의 덩어리 같은 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셈이다. 때가 되면 그냥 다 팽개치고 퍼질러 앉아서 왁왁, 소리 내어 울어버리고 싶어서 말이다.

나의 그녀는 식당에 손님이 다소 뜸할 때마다 전화를 해서 어미의 귀환 여부를 확인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불안을 달래줄 만한 말은 내 입에서 한 마디도 나와주지 않았다. 야 이거 혹시 우리의 대통령이 정치를 워낙 창조적으로 하시니까, 그래서 고양이도 뭔가 창조적인 것을 보여주겠다는 강박관념을 못 이겨서 일단 집이라도 나가보자, 하고 나가버린 거 아닐까? 하는 그런 어처구니가 없어도 한참 없는 소리를 농담이랍시고 내놓는 게 고작이었다.

 

▲ 내 몸이 마비됐어

 

어쨌든 이제 때가 된 것 같았다. 마당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더니 금방 가득 차버렸다. 그 어두운 색감이 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새끼들을 품고 있던 골드 녀석이 밖으로 나왔다. 다섯 시간도 넘게 꼼짝 않고 앉아만 있었던 녀석은 아마 온 몸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잘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나무 밑을 찾아가더니 한참을 있다가 돌아왔다. 똥이나 오줌이나 뭐 그런 것을 쏟아내고 왔을 터이었다. 나는 녀석이 다시 새끼들을 찾아가려니, 했지만 아니었다.

골드 녀석은 이제 새끼들이 있는 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있었다. 거기 어디에 자기가 품었던 새끼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다 잊어버렸다는 듯이, 녀석은 펄쩍펄쩍 뛰다가 뒹굴다가 쏜살같이 달리다가 다시 데굴데굴 뒹구는 등 거의 미쳐버린 것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큰일났다. 배가 고파서 아우성인 저놈의 새끼들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일단 새끼들을 모조리 바구니에 담아서 방으로 데려왔다. 집에 있는 우유를 끓여서 먹이자는 생각이었다. 우유를 끓이는 동안 주사기가 생각났다. 궁하면 통한다고, 쪽쪽 빠는 것밖에 모르는 새끼들에게 우유를 스푼으로 떠서 먹일 수는 없겠고, 버블젯 프린터 잉크 리필에 쓰던 주사기를 끓여서 거기에 우유를 담아 먹이면 될 것 같다는 발칙한 아이디어가 막 떠올라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새끼들이 우유를 안 먹으면 어떻게 하지? 눈도 안 뜬 살덩어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젖동냥을 해야 하나? 어디서?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