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추석이 명절이기는 중국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여서, 중국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추석 명절을 즐기는 사이에 일을 해야만 하는 우리는 새벽 다섯 시 반에 갯벌 작업을 나갔다가 열 시에 돌아왔고, 저녁에는 여섯 시에 나갔다가 열 시 반에 돌아왔다.

도시에 살 때도 해보지 않았던 명절 당일의 노동이란 뭐냐, 무슨 일확천금을 희망하는 것도 아니고, 일당 칠만 원짜리 노동에 마치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으니 이게 대체 뭐냐 응?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맹랑하고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런데도 안 나갈 수가 없었다. 단순히 그냥 돈의 문제라면 안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오롯이 인간적인 어떤 부분이라고 말해야 하는 감정상의 문제가 그물처럼 깔려 있었기에 안 나갈 수가 없었다.

 

▲ 해가 지는 시간에 바다로 간다.

 

생각을 하고 또 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게, 바지락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맥을 못 추고 하나둘씩 입을 벌린 채 죽어간다. 아주 드물게 삼사 년씩 살아남아 있는 바지락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종패를 갯벌에 뿌려놓고 일 년쯤 지나면 성패가 되는데 다 자란 바지락은 제때 캐내지 않으면 할 일 다 했다는 듯 죽어버린다. 그래서 바지락 농사꾼들은 추석이건 뭐건 주문만 들어왔다 하면 열일을 뒤로 하고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사람 한 명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

나는 뭐 바지락 농사꾼도 아니지만, 4년 가까이 드나들다 보니 농사꾼 비슷하게 자격인증을 받았다고나 할까 어쩔까, 하여튼 금년에는 추석 당일에 새벽과 저녁 그렇게 이른바 두 탕을 뛰는 진귀한 경험을 몇 번이나 했다. 진귀한 경험의 대가는 혹독해서 몸은 당연히 파김치가 돼 버렸다. 이제 다시는 야간작업 안 나가겠다, 내심 그렇게 맹세까지 하고 있는데 또 전화가 왔다. 하늘에 달도 없이 깜깜한 오밤중에 갯벌 작업을 나가야만 할 일이 또 생겼다는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중국쪽 해안에는 어쩌면 돌풍이 불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고 으쩐다요. 오늘도 밤 작업을 해야만 쓰겄는디, 미안스러서 으쩔까?”

“아 뭐, 으쩌긴 으째요. 해야지.”

끝에 살짝 반말을 까는 식의 이런 문법이 나는 정겹다. 평소에는 깍듯이 서로를 존대하지만, 뭔가 좀 어색한 웃음을 섞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반말이 나온다. 너와 내가 이만큼 가깝다는, 그래서 한 사람은 미안하고, 다른 한 사람은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는 이런 말에서 정겨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은 대체 어디서 인간미라는 것을 느껴볼 것인가.

 

▲ 야간작업 준비

 

저 사람이 나를 때리면 내가 아파서 나도 모르게 반격을 가하려고 하지만, 저 사람이 나의 힘듦을 미리 알아서 먼저 사과를 하고 들어오면 나는 그가 어떤 부탁을 하든 들어줘야만 한다. 안 들어주면 미안할 이유도 없는 내가 미안해져 버리기 때문에 들어줘야만 한다. 그래서 힘든 남의 일도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어느 정도는 즐겁게 해낼 수 있어진다.

만약에 사람의 이런 심리를 정교하게 간파해서 이용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내가 금방 알아차리게 될 테니 나는 더 이상 그의 사업수단에 말려들지 않고자 할 것이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나를 일시적으로 고용하고자 하는 그가 설령 사업수단으로써 나를 꾀어내는 것이라 해도,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진정성을 내 가슴이 느껴버리고 있는 이상 나는 그를 거절할 수가 없다. 그 바람에 나는 추석날 당일 새벽 작업에도, 그날 밤의 야간작업에도 참석을 하고 말았다. 오직 이 한 마디, 본론을 꺼내기 전에 마음부터 어루만져주는 이 한 마디 때문에 말이다.

“아이고 아저씨, 미안해서 으쩐다요. 오늘도 해야 쓰겄는디.”

갯벌의 야간작업은 말만 들어도 암담해진다. 갯벌은 하루에 두 번 문을 연다. 한 번은 밤에, 또 한 번은 낮에 문을 열어놓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곰소만 갯벌에서 사람들은 가끔 목숨을 잃었다. 낮에는 동서남북 분별이 육안으로 가능해서 목숨을 내놓을 일이 없지만, 밤에는 사정이 완전 달라진다. 갯벌에 놀러가는 게 아니고 보면, 물이 들어오기 전에 그날 할당된 량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그야말로 정신없이 일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내 몸은 내 몸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변해 버리고 되고, 정신도 가끔은 어질어질해서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 아 빨리빨리 좀 움직이랑게

 

게다가 심한 비바람 때문에 달빛마저 없는 깊은 밤의 갯벌 작업은 목숨을 아예 내놓았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초연한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옆에 사람의 작업을 방해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야간작업은 안 하려고 하지만, 안 하고 싶다 해서 안 할 수 있는 상황은 또 아니다.

그렇다. 금년 가을에는 유난스럽게도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하면 곰소만의 갯벌이 바빠졌다. 중국 해안에서 배가 뜨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선이나 원양어선 같은 거대한 배들은 바람에 별 영향을 안 받는다지만, 바지락 같은 생물은 큰 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간과의 싸움이랄 수밖에 없는 생물 운송에서 큰 배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금년에는 곰소만 갯벌에 모처럼 활기가 이는 듯했다. 매년 여름이면 폐사하던 바지락이 금년에는 전례가 거의 없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잘 커주었다. 그런데 판로가 막혔다. 중국산 바지락이 밀물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예년에도 중국산 바지락이 들어오긴 했지만 금년처럼 날마다 왕창 공격적으로 밀려오지는 않았다. 무역 마찰을 우려한 중국 공안에서 통제를 하기 때문이었다.

금년은 사정이 다르다. 중국 당국은 통제를 중지하고 방관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사드 배치 문제로 감정이 상한 중국 당국이 보복 차원에서 통제를 중지하고 수수방관 정책으로 돌아섰다고도 하지만, 거기까진 내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바지락 소비가 예년보다 줄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줄기는커녕 불황으로 고급 식자재 소비가 줄어든 까닭에 바지락 소비는 오히려 늘었다. 그런데도 국내산 바지락은 주문이 별로 없다.

 

▲ 워매 물이 안 나가네.

 

작년까지만 해도 여름이 막바지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하루 평균 오백여 명 이상이 작업에 참여했지만 금년에는 그 절반, 어떤 날에는 삼분의 일 이하로까지 줄었다. 일시적인 현상이려니 했지만 아니다.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다 돼도 그 모양 그 꼴이었다. 귓불을 시리게 할 정도의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바지락은 하나씩 둘씩 죽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이걸 어쩐단 말이냐. 밤에 잠을 못 자고 한숨이나 쉬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뜻밖의 길이 열렸다.

태풍이었다. 금년에는 태풍이 신기하게도 중국으로 많이 날아갔다. 그 바람에 중국 사람들이 바지락 채취 작업을 못하거나 하더라도 배를 띄우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좋은 일은 또 늘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바람 때문에 중국의 배가 뜨지 못하는 만큼 바닷물도 잘 나가주지를 않는다. 태풍이 없는 평소 같으면 작업 시간이 두 시간 남짓이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거센 날에는 작업 가능한 시간이 한 시간도 채 안 된다. 어떤 때는 작업을 시작한 지 이십 분도 채 안 돼서 밀려드는 물에 쫓겨 허둥지둥 나와야만 한다.

거의 빈손이다시피 갯벌을 도망치듯이 밖으로 나오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와 있는 화물트럭이 우리를 마치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다. 주문 총량이 구백 개인데 이백 개도 못 캐왔다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주문량을 채우지 못 했다는 것은 곧 신뢰의 하락을 의미한다. 믿음이 떨어지면 상인들은 더 이상 곰소만의 바지락을 찾지 않을 것이다.

 

▲ 돌겠네 진짜

 

오, 이게 뭐란 말인가. 어쩌다가 상황이 이런 지경으로까지 꼬여버렸는가 말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업자들은 다시 물이 빠지는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전화를 건다.

“미안허네. 오늘도 밤 작업을 해야 쓰겄는디 말이여 잉.”

갯벌에 발을 담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밀가루 반죽을 묽게 해놓은 것처럼 찐득찐득하게 달라붙는 갯벌의 그 강인한 접착성을, 한 발을 앞으로 내밀어놓고 다른 한쪽 발을 들어 올리려 하면 마치 이 세상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듯이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갯벌의 그 압도적인 생명력을, 갯벌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본 사람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가끔은 바지가 쫙 찢어지기도 한다. 한 발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 있는데 다른 쪽 발은 뒤에서 잡힌 채로 움직일 수가 없으니, 몸뚱이가 좌로 우로 흔들리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달팍 주저앉게 되는데 이때 쫙 찢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장화가 벗겨진다. 그러면 나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지만, 자유의 대가는 혹독해서 눈도 코도 귀도 입도 온통 갯벌을 뒤집어쓴 그야말로 한 마리 미꾸라지 꼴이 되고 만다.

사람이 불시에 미꾸라지 꼴이 되고 말았다 해서 울고나 있을 시간은 없다.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숨어 있을 시간도 없다. 냉큼 일어서서 얼굴을 씻어내고 작업에 참여할 정도의 결단력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이미 갯벌 작업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때그때 딱 들어맞는 농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가랑이가 찢어진 줄 알았는데 옷만 찢어지고 말았다는 둥의 그런 헤픈 농담 말이다.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정신없이 하룻밤 일을 끝내고 나면 발가락부터 손가락 끝까지 도대체가 어느 한 군데 안 아픈 데가 없다.

 

▲ 경운기는 물에 빠지고

 

그렇다고 이런 일이나마 매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람이 잠자고 날씨가 화창하게 맑아지면 중국 쪽에서 작업을 할 테니 우리는 놀아야 한다. 마침내 물이 들어와서 작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고 있노라면 정신이 살짝 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러다가 우리는 혹시 중국에서 방귀만 크게 한 번 뀌어도 다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슬쩍 들기도 한다.

아, 슬프다. 문득 고개를 뒤로 발딱 젖히고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비애감이 목구멍을 울컥울컥 건드려댄다. 해산물, 그 중에서도 달랑 하나 바지락의 경우가 이 정도인 것이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산물을 하나씩 헤아리기로 하자면 아마 끝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이 너무 가깝고, 그리고 중국이 어마무지하게 커다란 나라이기 때문일까? 그렇게 단순히 그냥 크기의 문제 때문만일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처 의식도 못 하는 사이에 우리의 경제는 중국에 완전히 의존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는 점이다. 중국 당국이 만약에 대한 수출을 전면 중단한다면 우리의 물가는 엄청나게 치솟을 것이다. 반대로 대한 수출을 무제한 허용한다면, 달랑 바지락 한 가지에서 이미 겪어왔고 지금도 당하고 있듯이 우리의 농민과 어민들은 물이 없을 때 하늘을 보듯이 중국의 눈치나 살피는 비굴한 삶을 간신히 꾸려가야만 할 것이다.

나라가 나라답게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이럴까 싶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파김치가 돼버린 몸뚱이를 간신히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 우두커니 앉아 있노라면 눈물이 절로 주룩 흘러내리면서 뿌득, 하고 이가 갈린다. 우리의 삶을 좀 더 안정적이고 지속성 있게 해 달라고 내는 우리의 세금을 대체 어디에 처박아대고 있는 것이냐.

 

▲ 주문은 많은데 생산은 적다.

 

입만 열면 민생, 민생, 노래를 불러대는 박근혜 정부 관료들은 오직 한 사람 대통령만 우러르고 있는 것 같다. 박정희 탄생 백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하는데 그게 민생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있을 당시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는 말로 유명세를 탔던 조윤선이 장관으로 있는 문체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열 가지 훌륭한 일 가운데 하나로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을 꼽았다. 이게 민생인가? 그런가 하면 구미시에서 요청한 박정희 탄생 백주년 기념 예산이 너무 적다고 청와대가 왕창 증액시켰다는 뉴스가 떴다. 도대체 이게 뭐냐? 이 꼴이 대체 뭘 의미하는 거냐고.

아이들의 소꿉놀이도 이런 지경으로까지 유치하지는 않다. 아니, 아니다. 이 말은 잘못 되었다. 아이들의 소꿉놀이는 사실 대단히 미래지향적이고 창조적이다.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아이들의 소꿉놀이에는 그 아이의 꿈과 라이프스타일이 담겨 있는 것이겠으니 말이다.

대통령이란 직위를 개인의 고급한 취미생활 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드는 우리의 대통령에게서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저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만약에 대통령의 임기는 없다, 하는 선언이라도 어느 하루 불쑥 해버리면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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