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태국에서 살아보기, 사랑하기-7회

방콕의 낮을 추억하다

태국 땅에서도, 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시골에 들어와 살다 보면 추억할 거리가 많기 마련이다. 특히 도시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추억의 대상이 된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오가는 자동차들, 무엇보다도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은 층수의 건물들이 신기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것들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에 대한 신기함과 향수가 인다는 것을 느끼며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 지 다시금 되새기곤 한다.

내가 머무는 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읍내가 있고, 태국 북부에서는 꽤 큰 도시도 있어서 가끔 그런 곳에서 갈증을 풀곤 하지만 그래도 방콕에서 보낸 짧은 기간이 이곳에 내리는 비처럼 추적추적 나를 적시는 때가 있다. 넓은 대도시의 곳곳에서 태국이기에 느낄 수 있는 한산함은 그곳의 사람, 그곳의 풍경, 그리고 그곳의 역사와 전통이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런 방콕으로의 추억 여행은 아직 시골에 한참 머물러 있어야 할 나의 처지를 다시 일깨워주기도 한다.

 

 

한 가지 추억거리를 풀어놓자면, 방콕에 머물고 있을 때 왓사켓이라는 이름의 사원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유명한 까오산 로드와 왕궁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시내 가까이에 있는 사원이었다. 아침 일찍 지도와 가는 경로를 확인하고 일단 전철을 탔다. 전철을 타고 가다가 다시 내려서 자기부상열차로 갈아타야 했는데, 한국에서는 탈 수 없는 열차의 묘미는 빼곡한 시내의 빌딩숲 한복판을 가로지르면서 지나가는 것에 있을 것이다. 차창에 달라붙어 시내 곳곳을 눈으로 얼핏 구경하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열차는 금방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열차에 내려서도 왓사켓을 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교통수단을 더 이용해야 했다. 배를 타고 운하를 통해 시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배는 현지인들이 많이 이용하지, 외국인들이 잘 이용하지는 않는 교통수단이었기에 탑승객은 역시나 거의 태국 사람들이었다. 배에 올라타려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자, 토큰을 끊어주는 사람이 돈을 걷으며 다가왔다. 배는 시동을 걸며 출발했다. 고동색 더러운 강물이 배 주변으로 튀기기 시작했고, 나는 승무원과 통하지도 않는 태국어로 대충 말하다가 끊어주는 토큰을 손에 쥐고 괜히 의기양양하게 현지인처럼 앉아있던 것이었다.

 

 

물을 가르며 달려가는 배의 양쪽으로 가난한 판잣집들이 늘어서서 보이기 시작했다. 운하 주변에는 시내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타고 있던 배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그제야 승무원과 탑승객들의 허름한 옷차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방인이어서 그들로부터 이상하고 낯선 존재가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으며 살아가야 하는 세계로부터 나라는 존재가 이방인과 같았던 것이었다.

배는 금방 어느 다리에 닿았고 그곳에 내려 잠깐 걷자 목표로 한 왓사켓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콕 시내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사원의 주변은 매우 조용하고 한적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사람 몇이서 나누는 대화와 목공소에서 들려오는 톱질 정도였고, 오히려 날아가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만큼 넓은 차도에는 차가 딱히 오가지 않았고 사람들도 많이 거닐고 있지 않았다. 사원 주위로 나무들이 드리우기 시작했고 그 그늘에서 조금이나마 더위를 피할 수 있을 때 즘, 사원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사원은 산이라고 하기는 조금 얕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자 개울물처럼 물이 길 옆으로 흐르고 조그만 석상들이 줄 서 있었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햇빛은 갈라져 길을 비추었고, 나는 도심 한 가운데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해질 수 있었다. 수많은 종들이 줄지어 있는 길목에서는 그 종들이 각자 다르게 각기의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흰색 층계와 그 뒤로 울려 퍼지는 종소리들은 뭔가 그 주변을 엄숙하게 만들곤 했다. 따갑던 햇빛의 세기가 부드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바람이 흘러가 흔드는 나뭇가지의 소리까지도 귀에 맴도는 것을 느꼈다.

꼭대기에 올라서자 커다란 사원이 있고 안에 불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원의 옥상에는 다시 커다란 금색 첨탑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첨탑의 위용과 주변에 펼쳐진 빼곡한 방콕 시내의 모습.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물어보며 이곳 사원과 주변에 대해 설명해주던, 이곳 아르바이트생 마이크의 수다까지.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이곳에 다시 언제쯤 올 수 있을까, 부질없는 감탄과 그리움으로 가득 들어찼던 것이다.

 

밤이 내려앉은 방콕은 더 아름답다

방콕이 가장 그리울 때는 사실 밤이 내려앉았을 때다. 방콕 어디서든 테라스에 걸터앉으면 시내의 화려한 야경을 바라볼 수 있곤 했다. 내가 지금 머무는 이곳 시골에서는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다. 태국은 비가 많고 하늘에 구름이 많은 나라이다 보니, 밤하늘에 별을 찾기도 어려워 방콕의 아름다운 야경이 더욱 그리워지곤 하는 것이다.

한국 대사관이 있는 대로 근처에는 ‘시암 니라밋’이라는 유명한 공연장이 하나 있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한데, 이곳에서는 태국의 전통 춤, 역사, 축제를 아우르는 공연을 선보인다. 무엇보다도 밤이 되면 건물 사이사이를 이어 놓은 전등 줄이 환하게 불을 밝히는데 그 화려한 불빛과 그곳에서 벌여지는 축제가 그곳의 흥을 돋우는 것이었다. 건물 안쪽 정원으로 들어서면 태국의 전통 가옥과 오두막이 전시되어 있는데 오묘한 색의 불빛이 그곳에 자리 잡은 전통과 신비로움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태국의 ‘어머니의 날’ 행사를 맞이해서, 시내로부터 쏘아 올리는 대규모 불꽃놀이는 방콕의 밤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곤 한다. 화려한 불빛과 서치라이트, 수많은 폭죽들이 수놓는 밤하늘은 무엇을 이처럼 축복하고 있을까. 방콕이라는 거대 도시에서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삶들이 그립고 그것을 추억하다가도, 내가 머물고 잠드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면 다 사라져 흩어지는 것이었다.

밤이 내려앉으면 아름답다. 도시의 밤은 시끄럽고 화려하지만, 그것은 정말 사람 사는 곳에서는 모두 흩어져서 없다. 아름답지만,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시골에 내려앉은 암흑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긴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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