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 자리다툼에 휘말린다. 여기는 내 영역. 동물처럼 영역 표시를 할 수는 없지만 찜해두었던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면 화가 난다.

최근 나는 영역을 침범당한 두 번의 사건을 겪었다. 재미있는 건 ‘자리 뺏김’이란 결론은 같았지만, 두 사건에서 내가 처한 입장은 정 반대였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자리를 뺏긴 곳은 에어로빅장이다. “거기 아줌마들 텃세 심하지 않아?” 에어로빅 다닌다는 내 말에 동네 엄마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기존 회원들의 텃세가 보통이 아니라 들었다고. 웬만한 아줌마들은 그 텃세에 못 버티고 떠나고들 한다고.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내가 둔한건가? 두 달을 넘게 다니면서도 텃세의 ‘ㅌ’자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사교적이어서도 아니다. 에어로빅장에서의 난 조용하고 말 없는 성실한 회원이다.

하루는 집 방향이 같은 아줌마 한 명과 같이 에어로빅장을 나섰다. 누구와 함께 등록을 했느냐기에 혼자 다닌다 했더니 깜짝 놀란다. “혼자 등록한 분들은 며칠 못하고 그만두시던데…. 성격이 좋으신가 봐요”라고 말한다.

오히려 내가 의아스럽다. “왜 그만들 둬요?”라고 묻자 “대부분이 10년 이상 된 장기회원들이라 자리 텃새도 있고…”라며 말을 흐린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자리 텃새가 무엇인지 톡톡히 알게 된 바로 그 날.

한동안 오전 시간에 다니다 오랜 만에 밤 시간에 운동을 갔다. 정시에 음악이 시작되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던 아줌마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가장 잘하는 사람이 맨 앞줄에 서고 나머지가 자리를 잡는다.

나는 언제나 맨 뒤다. 평소엔 무대를 바라보고 오른쪽 뒤에 서곤 했다. 마룻바닥이 파인 그 곳은 누구나 꺼려하는 장소였다. 춤을 추다 발이 걸리기 일쑤였기 때문. 나는 신입회원의 예의로 그 곳을 지켰다.

하지만 그 날은 자리가 남아돌았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왼쪽 끝에 자리를 잡았다. 선생님도 잘 보이고 정수기도 가까워 좋다.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음악에 맞춰 열심히 몸을 흔든다.

십분 쯤이나 지났을까. 직장인으로 보이는 30대 중후반의 처녀 한 명이 급하게 들어온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더니 내 옆에 선다. 자리가 많이 남아도는데도 너무 딱 붙는 느낌이다. 어쨌든 음악은 계속되고 쇼도 계속된다.

그런데 중간에 신호가 온다. 정수기가 가깝다고 물을 자주 마셔댄 탓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니 내 자리를 아까 그 처녀가 차지하고 있다. 화장실에 다녀온 동안 자리 새치기를 당한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에어로빅장 안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동을 했다. 언제든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갔고, 물을 마시고 싶으면 마셨고, 땀을 닦기 위해 자리를 뜨기도 했다. 그래도 당사자가 빠져나간 자리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시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중간에 잠깐 자리를 비웠다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얌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당한 것이다. 내가 그 일을. 나보다 나이도 어린 계집에게. 음악은 계속되고 있었고 나는 자리 하나 때문에 물의를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마룻바닥이 파인 오른쪽 끝에 가서 섰다.

‘이런 게 바로 자리 텃세인가?’ 기분이 상했다. 내가 오전에 운동을 하던 시간 동안 그 자리는 그 여자의 지정석처럼 되어 있었나 보다. 본인 입장에서는 안 보이던 얼굴이 갑자기 나타나 자기 자리를 차지했으니 그런 것이었겠지만 그녀는 십 분 넘게 지각을 했다. 지각을 하면 맨 뒤 남는 자리에 가서 서는 게 이 곳의 암묵적인 룰이다.

게다가 이미 수업이 시작됐고 다들 대형을 만들어 각자의 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중간에 자리 가로채기를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무례한 짓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건 내가 신입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다닌 자의 텃세로 거리낌 없이 새로 온 자의 영역을 침범하고 나선 것이다.

이미 기분이 상한 난 더 이상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러고도 며칠 동안 그녀로 인한 스트레스는 계속 됐다. 직장을 다니는 그녀는 꼭 5분에서 10분씩 늦곤 했는데 제 시간에 와서 자리를 맡은 난 그녀가 올 때까지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잔뜩 예민해지곤 했다.

어떤 날은 자리가 없어서 왼쪽 끝에 서기도 했는데 그런 날 그녀가 뒤늦게 모습을 나타내면 그 때부터 머릿속은 스트레스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참게 되었고, 물 한 모금을 먹고 싶어도 갈등을 했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살을 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땀을 흘리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 때문에 더 이상 에어로빅장에 나가는 게 즐겁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난 결정을 해야 했다. 나이 많은 특권을 이용해 기싸움을 벌이며 왼쪽 자리를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다니겠다 싶어지자 나는 결정을 내렸다. 행동에 옮길 시간이다.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오자 나는 재빠르게 이동해 마룻바닥이 꺼진 오른쪽 맨 뒤에 가서 섰다. 그랬다. 깨갱하고 물러난 것이다. 좋은 영역을 포기하고 안 좋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대신 정신적인 편안함을 추구하기로 한 것이다.

여전히 뛰다 말고 푹 꺼진 마룻바닥에 발이 걸리곤 하지만 스트레스는 없어졌다. 이젠 그녀가 일찍 오든 늦게 오든, 늦게 와서 어디에 서든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으니까. 비록 그 영역이 물 좋은 곳은 아니라도.

두 번째 영역다툼은 카페에서 벌어졌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나는 집 근처 카페로 출근을 한다. 프리랜서로 일을 늘리면서 글을 쓸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평소엔 이른 시간에 카페를 간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뒤 대강 집안을 치우고 곧바로 출근을 하기 때문이다. 카페에는 나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도장을 찍는 이들이 많았다.

전부 여자들이었는데 세 명은 노트북을 가지고 왔고, 두 명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같은 시간에 카페에 와서 시간을 보내다 갔다.

우리는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나는 에어컨 바로 앞의 자리에 앉았다. 가장 구석이라 집중하기 좋았던 데다 조명이 테이블 바로 위에서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노화로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한 나에겐 안성맞춤이었다.

4인석 테이블이란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노트북 외에도 각종 책과 노트 등을 펼쳐놓고 일을 해야 했기에 2인석에 앉으면 자리가 비좁았다.

어쩌다 내가 늦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이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에어컨 앞자리는 마치 내 지정석인 것처럼 언제나 비어 있었다.

그런데 두둥. 어느 날인가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일을 마치고 평소보다 늦게 도착했더니 내 지정석에 처음 보는 여자가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 있다.

그 여자의 얼굴을 보며 ‘어째야 하나~’라는 얼굴로 또각또각 걸어가니 이미 각자의 자리에 앉아있던 카페 내의 모두가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본다.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기는 내 자리라는 걸. 멋모르고 들어온 새내기가 하필이면 ‘포악돼지’라 불리는 기 센 아줌마의 자리를 차지했다.

난 다른 모든 자리를 놔두고 그녀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2인석이다. 테이블이 작다. 노트북을 켜고 나면 커다란 잡지 등은 둘 곳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 옆 자리에 앉는다. 마치 에어로빅장에서 나이 어린 계집이 넓은 자리를 놔두고 내 바로 옆에 찰싹 붙었던 것처럼.

이미 내 태도는 건방짐 그 자체다. 고개는 15도쯤 위로 올라가 있고, 모든 손짓과 몸짓에 거만함이 깃들어 있다.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내 자리를 넘본 새내기에게.

이건 대상과 장소만 바뀌었을 뿐 에어로빅장에서의 모습과 똑같다. 서는 위치에 따라 풍경이 다르게 보일 뿐이다. 인간도 동물이다. 인간도 영역싸움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다만 동물과 다른 게 있다면 인간은 전혀 다른 위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영역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재미있는 동물임에는 틀림없다.

<주부,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