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한옥들, 그 매력에 한껏 취하다
고즈넉한 한옥들, 그 매력에 한껏 취하다
  • 정다은 기자
  • 승인 2019.02.20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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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마실 가기] 성북동-2회

 

이번에 찾아간 동네는 성북동이다. 성북동은 풍광이 아름다운 서울시 자치구 중 하나로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 등재될 한양도성과 연이어 있는 지역이다. 특히 서울에 있는 한옥마을 중에서도 아름답고 뛰어난 가치가 있는 한옥들이 많이 모여 있다. 문화제, 한옥마을 뿐 아니라 맛집, 카페 등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성북동. 꽤 언덕진 산마을이라 할 수 있지만 찾는 사람이 많다. 다양한 매력이 넘치는 곳이라 나름대로 코스를 잡고 돌아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돌아볼 코스는 한옥마을이다. 성북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성북 한옥에 찾아가다’ 코너에 답사코스가 나온다. 성북동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추천해주는 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코스는 8군데를 들러야 된다. 1번부터 8번까지 쭉 올라가야 되지만 기자는 8번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가 반대로 1번까지 걸어 내려오기로 했다. 동묘에서 2112번 버스를 타면 성북동 산마을까지 올라간다. 2112번과 1111번, 또 다른 몇몇 마을버스도 다니니 참고하자.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운동 삼아 슬슬 걸어 올라가기도 좋다. 지난 호 8번부터 6번까지에 이어 이번엔 5번 섬잠단지부터 1번 혜화문까지 소개해본다.

 

먼저 5번은 섬잠단지다. 사적 제83호로 등록되어 있다. 성북동은 조선시대 역대왕비가 누에를 길러 명주를 생산하기 위해 잠신으로 알려진 서릉씨를 배향하는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 단은 조선시대 1471년 (성종 2)에 처음 쌓은 것으로 단을 쌓는 방법은 사직단과 같게 했으나 단의 남쪽에는 한 단 낮은 댓돌이 있고, 그 앞쪽 끝에 상징적인 뽕나무를 심고 궁중의 잠실에서 미우는 누에를 먹이게 했다. 이러한 의식은 매년 3월에 거행하다가 1908년 7월 선잠단은 선농단의 신위와 함께 사직단으로 옮겨져 그 유지만이 남아 있다. 그것도 모르고 정확하게 찾아가기 위해 핸드폰 지도를 켰다. 이 어디쯤에 터가 있어야 됐는데 그만한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엉뚱한 골목을 헤매다 나와 보니 섬잠단지는 공사중이란다. 임시벽으로 가려져 있다.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복원 예정중이니 다음에 다시 찾아오기로 한다.

 

4번을 향해 갔다. 가다보니 서울 자전거 ‘따릉이’가 보인다. 그래 걷기가 힘들다면 따릉이를 타고 돌아다녀도 좋을 것 같다. 섬잠단지 바로 건너편 골목에 있는 4번 최순우 옛집. 혜곡 최순우(1916~1984)선생이 197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옛집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글을 집필했다. 이 집의 평면 형태는 ‘ㄱ자형’ 본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마주 보고 있는 ‘튼ㅁ자형’ 구조이다. 기둥머리에는 소로와 부연 등으로 외관을 장식해 1930년대에 서울 지역에서 유행한 도시형 한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04년부터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관리‧운영하고 있다. 그냥 동네 골목길과 다름없지만 그 골목길 어귀에 위풍당당한 한옥집이 있다. 출입문엔 ‘최순우 옛집’이라 적혀있지만 굳게 닫혔다. 겨울엔 휴관인 것이다. 올 4월 2일에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이번에도 별 소득 없이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3번은 한옥마을이다. 성북동은 조선시대에는 일부 별장과 절을 제외하고는 복숭아와 앵두 밭으로 이루어진 자연상태의 지역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한용운, 이재준, 이태준 등 독립운동가 또는 문화계 인사들이 많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가지 계획령과 돈암지구 개발에 따라 도시한옥이 집중적으로 지어진 지역이다. 현재까지도 도시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 많으며, 전통적인 유형의 한옥이 동시에 존재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정된 장소가 아니라 동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한옥을 구경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발길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끝없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됐다. 걸어다니는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주민 대부분이 승용차를 끌고 다니는 듯하다. 이리저리 길을 헤맸다. 드문드문 보이는 한옥집은 그 풍채가 남다르다. 딱딱한 빌라 건물 사이에 고운 색의 기왓장, 지붕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그 집을 지키는 당당한 대문의 나무 기둥은 햇살을 담은 듯 노랗다.

 

발걸음을 옮긴다. 2번인 한양도성, 서울성곽을 따라 주욱 따라 내려간다. 한양도석은 사적 제10호로 지정돼있다. 1936년(태조5) 축성됐다. 성벽은 백악·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됐다. 성곽길의 끝엔 1번인 혜화문이 있다.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한양도성에는 4개의 대문(大門)과 4개의 소문(小門)이 설치됐는데, 이 문은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했다가 1483년(성종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해 1511년(중종6) 혜화로 고쳤다. 1684년(숙종10) 문루를 새로 지은 후 한말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1928년 문루가 퇴락해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만 남겨 뒀는데, 일제가 혜화동과 돈암동사이에 전차길을 내면서 이마저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북문(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됐기 때문에 이 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했다. 1975년부터 시작되어 1980년에 완공된 서울성곽의 일부로 1992년에 복원했다.

 

바로 큰 대로변이 이어진다. 성북동 한옥투어가 끝이 났다. 한옥의 멋과 다양한 역사를 알 수 있어서도 좋았고, 그 사이를 걸을 때마다 성북동의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다음엔 성북동의 어디를 가볼까. 성북동의 매력에 한껏 취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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