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그치고, 로스 쿠에르노스에도 다시 붉은 해가 솟았다
소나기가 그치고, 로스 쿠에르노스에도 다시 붉은 해가 솟았다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9.06.21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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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미여행기-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 강진수

 

55.

브리타니코를 내려오는 길에 빗줄기는 여리게 흩날리고 있었다. 바위길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내려오다 보니 이탈리아노 산장에 다시 도착해 짐을 챙길 때에는 벌써 오후 네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세 시간 뒤에는 해가 질 것이기 때문에 로스 쿠에르노스에 닿으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우리는 조급해지기 시작했지만 금방 도착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솔길을 따라 나섰다. 점점 길은 깊은 숲속으로 이어졌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해 숲 안쪽은 금세 어두워졌다. 배낭을 다시 메고 걸으니 한참 걸어온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야할 길은 막막했다. 길은 많이 험하지는 않았으나 울창한 숲을 헤치며 가야했기에 그 길이 모호해 몇 번이나 멈춰서 지도를 펼쳐보곤 했다. 여행을 쉽게 이끌어주었던 휴대전화나 전자기기가 전부 작동하지 않는 이 깊은 숲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길을 전혀 모르겠으면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을 찾아야만 했다. 등산 막대로 땅에 홈을 낸 흔적이 가장 찾기 쉬웠고 우리는 그 흔적에 의지하여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

문제는 어느 순간 그 흔적이 사라지고 우리는 숲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어버리고만 것이다. 해가 완전히 지기까지 한 시간 가량이 남았고, 우리는 로스 쿠에르노스 근처에 있다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으나 대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체력은 바닥이 나고 날은 점점 어둑해졌으며 배낭은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몇 번이고 높은 바위 위에 올라 길을 찾아보기도 하고 사람들의 흔적을 주변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전혀 다니지 않는 곳임을 느꼈기에 마냥 이곳에서 지나갈 누군가를 기다릴 수도 없는 법이었다. 형과 나는 티격태격 다투기 시작했고, 지쳐버린 나는 괜한 나무와 수풀에게 신경질을 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형 역시 화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고, 더군다나 형이라는 책임감과 반드시 산장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괴로웠을 것이다. 브리타니코를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게 서로를 챙기며 여유를 즐기던 우리 사이는 순식간에 냉각되어 아무런 말이 오가지 않게 되었다. 이 와중에 나는 형마저 잃지는 않을까 안절부절 걱정하며 길을 찾느라 정신이 없는 형을 애타게 부르곤 했다. 어디 구조를 요청하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계속 방황하던 와중 우리는 호수를 찾을 수 있었고 다행히 로스 쿠에르노스가 호수 변에 있음을 떠올렸다. 동쪽을 향해 가고 있었으므로 호수를 끼고 계속 동쪽으로 가다보면 산장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다시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노을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해가 지면 길을 더 이상 찾기도 어렵게 되어 정말 조난을 당할지도 모른다. 말없이 나무를 헤치며 이십분 가량을 걸었을까, 해가 산봉우리 뒤로 숨어 주변이 어둠에 휩싸였을 때 멀리 불빛이 보였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산장의 불빛이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너무 지쳐버려 기쁨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거의 달리다시피 걸어 겨우겨우 산장에 닿았다. 산장 일층에는 식당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유료 산장이어서 식당 역시 말끔하게 잘 꾸며져 있었고, 종업원들이 음식을 가져다주면 사람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맛있게 음식을 즐겼다.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상반되던지. 온몸이 흙으로 얼룩진 우리는 심지어 저 산장 안으로 들어설 수도 없다. 우리의 잘 곳은 무료 텐트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텐트를 지으려고 준비를 하려는데 그동안 울먹거리던 하늘이 거센 빗줄기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 비가 점점 거세져 도저히 텐트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텐트를 지을 힘 또한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이미 지어져 있는 유료 텐트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낡고 별로 안락하지 않은 텐트였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이미 지어져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지. 산장에 물어 텐트를 빌리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 얼른 저녁밥을 짓기로 했다.

산장 바로 옆 작은 부엌이 있는데 그곳에서 가져온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는 처량했고 우린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길을 잃고 서로를 은연중에 탓하면서 깊어진 마음의 골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언중의 식사는 그런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겨우 마련된 음식을 모두 먹고 나서도 우리는 기력을 되찾을 수 없었다. 부엌을 나서자 매섭던 소나기는 그쳐 있었다. 암흑이 산장에 가라앉아 있었고 우리는 등불을 켜 캄캄한 오늘의 텐트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잔뜩 서로에게 난 화를 삭이기 위해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 같은 텐트에서 몸을 뉘이면서 서로를 미워하여 돌아누운 꼴이라니. 나는 도저히 잠들 수 없어 배낭에 숨겨놓은 팩 와인을 조용히 꺼내 뜯어 마셨다. 형은 그런 나의 모습을 더욱 한심하게 생각하며 잠에 들었을 것이다. 한참 와인을 마시며 지난 우리의 길을 곱씹는데, 갑자기 발끝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검은 어떤 물체가 몇 번 빠르게 왔다 갔다 하다 내 발 바로 밑에 멈췄다. 그것은 커다랗고 새카만 쥐였다.

 

56. 

빌린 텐트가 아주 낡아 어느 구석에 작은 구멍이 있었나보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고 잘 자고 있는 형의 옆구리를 무릎으로 걷어차며 헐레벌떡 깨웠다. 형이 더 놀라 일어나자 나는 텐트 안에 쥐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텐트를 뒤지다보니 우리 머리맡 쪽에서 다시 쥐가 발견되었다.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쥐 위로 담요를 집어 던졌다. 그리고 한참 우리는 그 담요를 들춰 쥐를 잡아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를 고민했다. 한참의 고민 뒤에 결국 담요를 들춰보았지만 또 다른 곳에 구멍이 있었는지 쥐는 달아나버리고 없었다. 우리는 배낭과 옷가지들을 이용해 텐트 곳곳의 구멍을 막아놓았다. 그리고 그 충격에 잠들지 못하는 우리 사이에 침묵이 다시 흘렀다. 

 

형에게 내가 먼저 사과했다. 지난 나의 신경질과 괜한 마음씨를. 사과하려고 입을 열자 형은 손 사레를 쳤다. 사과할 필요가 없단다. 어차피 우리는 함께 여행하며 숱하게 미안할 짓을 저지른다. 특히 내가 형에게 미안할 것이 많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일일이 따지자면 우리는 내일 다시 그 힘든 길을 걷지 못할 수도 있다. 사과는 충분한 시간과 체력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의 사과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휴식이다. 형은 다시 돌아누워 잠들었고, 나도 곁에 조용히 누웠다. 그리고 텐트 바깥의 별을 떠올렸다. 우리의 여행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 걸까. 우리는 왜 이 여행을 필요로 하는 걸까. 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어른이었다. 더 필요한 것을 잘 알았고, 더 아껴두어야 하는 것을 잘 알았다. 그 순간에 내가 아껴야 할 것은 지나친 감정 소모와 말이었다. 어느 순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알 때가 있다. 그럴 때 굳이 말을 하려 하면 알고 있는 것을 오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텐트 천장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미안해하고 사과하려고 여행을 함께 온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입에 달고 다녀야 할 필요가 없고, 그것들에 강박을 가질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미 지나온 여행에서 결국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서로 알고 믿는 것을 오해할 필요도 없다. 도리어 그것들을 따라가면 된다. 함께 하는 여행이란 이렇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그건 노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켜켜이 쌓아놓은 시간들에 의해 생겨난다. 뒤척이는 잠이 끄트머리를 보일 때 즘, 로스 쿠에르노스에도 다시 붉은 해가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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