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획] 여기, 주나 캐나다살기-2회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고 문구이다. 좋아하는 걸 실행하고자 무작정 캐나다로 왔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저 로키 산맥에서 살아 보고, 오로라 보러 다녀오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는 곳에서 일 해 보고, 캐나다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 내 꿈은 소박하다. 캐나다에 도착한 순간 다 이룰 수 있는 꿈이 되었으니까. 꿈을 쫓는 그 두 번째 이야기.

 

15분에 한번씩 증기를 내 뿜는 증기시계.사진을 찍은 시각은 오후 6시 40분.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밝고 긴 하루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15분에 한번씩 증기를 내 뿜는 증기시계. 사진을 찍은 시각은 오후 6시 40분.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밝고 긴 하루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입국해서 해야 할 일들

2019년 5월 11일 오후 11시. 중국 베이징에서 출발해 2019년 5월 11일 오후 8시에 밴쿠버에 도착했다.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탔는데 시간을 거슬러 출발 시간보다 3시간이나 빨라진 시간에 도착하게 되었다. 수없이 여행을 다녔고, 수없이 비행기를 탔지만 매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시간 여행자가 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먼 곳까지 갔으니 하루라는 시간을 더 줄게. 소중히 지내봐’ 하고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내 자고 밤에 도착한 나는 시차 적응에 실패해 그 소중한 하루를 꼬박 날리고 말았다. 아, 어쩌면 시차 적응을 위해 하루를 더 주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사실 시차도 시차였지만 캐나다에 도착했다는 사실 만으로 만감이 교차해 잠이 오질 않았다. 밤에 도착해서 바로 숙소에 들어와서 아직 캐나다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도 안 났고, 공항 입국 심사소에서 무사히 받은 1년짜리 비자 종이를 보며 ‘나 정말 이 곳에서 1년 동안 있어도 된다고?’ 생각도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아침에 겨우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내가 머문 한인 민박에 현지 경찰들이 와서 엄청 시끄럽고 어수선해졌다. 3000불 (한화 약 260만원) 도난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개인실을 사용하는 투숙객이었고, 용의자는 민박집 한국인 매니저였다. 나는 6인실 도미토리 방에서 지냈는데 돈을 잃어버린 피해자의 친구가 같은 방에 있었다. 그 분의 말을 듣고 매니저를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퇴실을 하고 매니저가 말하길, 돈을 잃어버린 척 하는 사기꾼들이 왔었다고 했다. 진실은 알 수 없다. 그리고 내가 그 진실을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깨달은 사실이 있다.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지 말자. 나도 같이 동조해서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자.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말이다. 도착하자마자 머문 곳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내 마음까지 어수선해졌다.

 

사람들의 마음과 시간과 시선을 모두 빼앗은 밴쿠버의자연.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 뿐이지 이곳은 무척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사람들의 마음과 시간과 시선을 모두 빼앗은 밴쿠버의자연.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 뿐이지 이곳은 무척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민박집도 문제가 많았다. 예약할 때 어떠한 공지도 받지 못 했는데 도착해 보니 예약한 방이 지하층이었고, 공용 욕실은 다음 사람을 위해 5분 안에 샤워를 끝내라고 쓰여 있었다. 11시 이후엔 주방사용 및 소음 금지라고 적혀 있었는데 오히려 시설을 관리하는 매니저와 장기 투숙객들이 주방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떠들었다. 이전 여행에서도 한인민박을 이용해 본 적이 있다. 한국인들끼리 있기에 서로 믿고, 안전 했으며, 그 어느 호스텔보다 조용 했다. 이런 문제들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임시로 머무는 곳이기는 했지만 의식주 중에 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밴쿠버에도 괜히 정이 가질 않았다.

만약 여행으로만 왔다면 밴쿠버는 무척 매력적인 여행지였을 것이다. 일단 공기가 너무 맑고 깨끗했으며 다양한 느낌을 가진 도시였다. 네팔의 포카라처럼 멀리 설산이 보였고, 미국의 뉴욕처럼 멋진 고층 빌딩들이 있었으며, 영국의 런던처럼 유명한 시계가 있었고, 호주의 시드니처럼 큰 항구와 바다가 있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다운타운 안에서 바다와 산,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서 해가 밤 9시 넘어서 진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건 캐나다 어느 도시든 마찬가지이다. 혼자 다니는 여행자에게 밝고 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사는 만큼 다양한 느낌을 가진 밴쿠버.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사는 만큼 다양한 느낌을 가진 밴쿠버.

하지만 이렇게 장점이 많아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먼저 캐나다는 주마다 법과 세금이 다른데 밴쿠버의 세금은 무려 12%로 매우 비쌌다. 물건을 구입할 때 적혀 있는 금액은 세금을 포함시키지 않은 금액이라 계산할 때 마다 자꾸 돈을 더 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대마초가 합법인 나라이기에 길거리에 떼로 몰려 대마초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상한 냄새를 맡으며 지나가면 괜히 간접 마약을 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도시여서 유독 많은 것 같았다. 작은 마을로 지역 이동을 하고 난 뒤, 한 번도 대마초 피우는 사람을 본 적 없다. 또 밴쿠버에는 정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그 중에 특히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았다. 종종 명동에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중국인, 한국인과 살아가기 싫은 건 아니지만 외국에서 사는 만큼 현지인들이 더 많은 곳을 원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유는 캐나다로 출발하기 전 이미 마음속에 생각해 놓은 다른 도시가 있었다. 그 도시로 바로 가지 않았던 건 직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밴쿠버에 들려야 했다. 다양한 기회가 있다는 살기 좋은 도시로 유명했기에 일단 가보고 결정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 다른 곳이 있으니 자꾸 단점들만 보였다. 떠나야만 하는 핑계를 스스로 만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 사람 마음은 억지로 되지 않는 거 같다. 결국 본인의 마음속에 답이 있다. 여행도 사랑도 인생도.

 

여행으로 왔다면 분명 이 예쁜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여행자의 본분을 잃은 거 같아 슬프기도,현지인 된 거 같아 기쁘기도 했다.
여행으로 왔다면 분명 이 예쁜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여행자의 본분을 잃은 거 같아 슬프기도,현지인 된 거 같아 기쁘기도 했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리 밴쿠버에 머물러도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은 그 곳을 지울 수 없었다. 서둘러 다른 도시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동안 워홀러가 캐나다에 도착하면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1년을 살아야하기에 핸드폰을 개통했다. 스마트폰 시대다 보니 어느 나라를 가도 내가 사용하던 핸드폰에 유심칩만 사서 바꿔 끼우면 된다. 얼마나 편안한 세상인지. 마침 프로모션 중이라 매달 10불씩 할인 받아서 통화 500분, 데이터 6GB 요금제를 45불에 구입할 수 있었다. 물론 유심카드 요금은 따로 냈다. 12불이었는데 5불까지 깎아 주었다. 캐나다에서 핸드폰을 쓰며 신기한 점은 통화 500분에 발신뿐만 아니라 수신도 포함 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의해야할 점은 데이터를 초과하면 100MB에 10불씩 추가 요금이 붙는 다는 것이다. 예로 한국인 중에 동영상 몇 개 봤다가 한 달 요금이 한화로 65만원 정도 나온 적이 있다고 했다.

 

밴쿠버에 살았다면 매일 갔을 거 같은 정말 마음에 들었던 도서관.이 곳을 떠나는 게 조금 슬펐던 이유이자 떠나지 말까 잠시 망설였던 이유.
밴쿠버에 살았다면 매일 갔을 거 같은 정말 마음에 들었던 도서관.이 곳을 떠나는 게 조금 슬펐던 이유이자 떠나지 말까 잠시 망설였던 이유.

캐나다 번호가 생긴 뒤 ‘캐나다 서비스’ 라는 공공기관에 가서 내 비자를 보여주고 신넘버(SIN NUMBER)를 발급받았다. 신넘버는 내가 일할 때 고용주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나의 고유 번호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금을 내는 등에 사용하는 목적이다. 신넘버를 발급받을 때 부모님 성함을 영문으로 적어서 내야 했다. 외국인들이 잘 발음하지 못하는 한국이름을 직원이 너무 쉽게 읽는 것이 아닌가. 너무 신기해서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Are you Korean? (한국 분 이세요?)”, “Yes, I’m Korean.” 일할 때는 무조건 영어만 사용한다고 들었다. 왠지 워홀러들이 일을 할 때 필요한 신넘버를 발급받는 것이니 이 정도 영어는 사용해야하지 않겠냐 해서 일부러 사용하는 느낌이었다.

 

사람 마음은 억지로 되지 않는 거 같다.결국 본인의 마음 속에 답이 있다. 여행도 사랑도 인생도. 사진은 잉글리쉬 베이 비치.
사람 마음은 억지로 되지 않는 거 같다.결국 본인의 마음 속에 답이 있다. 여행도 사랑도 인생도. 사진은 잉글리쉬 베이 비치.

워홀러들이 꼭 해야 하는 마지막 일은 은행계좌 발급 받기이다. 대부분의 워홀러들처럼CIBC 라는 은행을 이용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계좌 유지비가 1년 동안 무료이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은행에 돈을 넣어두려면 오히려 돈을 내야한다.)

밴쿠버에 정이 들지 않게 만든 가장 큰 이유인 민박집을 서둘러 떠나 또 다시 비행기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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