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와인이야기-7]

ⓒ위클리서울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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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박재현] 첫 만남에서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를 완화하고자 서로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사는 곳이 어디세요?’하고 묻고, 때로는 좀 더 깊숙이 서로의 고향에 대해서 묻기도 한다. 
사는 곳 또는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은 단순히 물리적인 위치를 묻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상대방의 정체성, 사회/문화적 배경, 나와의 동질성 등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

와인도 고향이 있다.
와인 파는 곳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그 많은 와인들을 분류하고 진열할까?
우선 제일 단순하게 레드 와인 그리고 화이트 와인으로 구분한다. 여기에 거품이 나는 스파클
링 와인을 별도로 구분하기도 한다.
조금 더 세분화ᄒᆞ면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별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령 프랑스, 이탈
리아, 스페인, 독일, 칠레, 아르헨티나, 미국, 뉴질랜드, 호주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당신이 이보다 더 전문화된 와인 샵에 간다면 머릿속이 약간 혼란스러워지게 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보르도(Bordeaux), 부르고뉴(Bourgogne), 루아르(Loire), 론(Rhone) 등의세부 지역으로 구분되며, 독일은 모젤(Mosel)을 비롯한 다른 세부 지역, 미국은 나파(Napa)를 위시한 다른 세부 지역으로 구분하는 식이다.
복잡하고 헷갈린다. 이 지역들을 가본 적도 없고, 심지어 아직 여기 와인들을 마셔보지도 않았으니 헷갈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에서 ‘뭔데 이렇게 복잡해!’하며 벽에 부딪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포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무엇인들 그렇지 않을까? 알게 되면 친숙해지고 쉬워진다.
우리가 처음 만남에서 상대방의 고향을 묻는 것처럼, 새롭게 만나는 와인의 고향을 물어보자.
와인의 가짓수가 많은 만큼 고향도 제각각이다. 나라도 지역도 다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중 한 가지를 얘기해 보려 한다.

칼럼 연재를 시작하면서 초반에 언급했던 내용인데, 우선 와인은 농산물 가공 식품이다. 무엇
보다 포도 농사를 지어야 와인이 된다는 말이다.
지도를 펼쳐 주요 와인 산지의 입지를 살펴보자.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벌써 이해했을 것이다. 상당히 많은 와인들의 고향은 강(river) 주변이다.
학창 시절 지리 수업 시간에 한반도를 대표하는 강으로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 한강, 대동강, 금강, 섬진강을 외우고 익혔던 것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들을 생산하는 포도원 주변의 강 이름을 몇 개만 익혀보자. 와인 이름이 훨씬 더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프랑스를 예로 들면, 와인 샵에서 편의를 위해서 구분해둔 여러 와인 섹션들 – 보르도(Bordeaux), 론(Rhone), 루아르(Loire) – 이 모두가 강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혹은 강과 관련이 있다. 이곳 사람들이 강 주변에 정착하여 긴 세월 자연에 적응하면서 만들어 간 경관의 일부가 바로 포도원이다.
여기 사람들은 론강을 따라서 언덕과 평지에 조성된 포도원들의 와인을 론 와인이라 부르며,  루아르 강변의 아름다운 고성들(old castles)을 배경으로 심어진 포도원들의 와인을 루아르 와
인이라고 통칭한다. 만약 우리가 한강을 따라서, 섬진강 주변에서 포도를 심고 와인을 빚는다면 ‘한강 와인’, ‘섬진강 와인’이라고 부르는 격이다. 보르도는 직접적으로 강이름을 가져다 쓰기보다는 비유적으로 이름을 지었다. 보르도 Bordeaux의 어원은 Bord(주변)+Eaux(물의 복수형태)이며, 강(물)들에 접해 있다는 뜻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한 것 들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
의 관심사인 와인으로 한정 짓자면, 와인 이름에는 사람과 자연 환경 (강) 사이의 관계가 담겨
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다음에 와인 샵에 방문한다면, 복잡하고 헷갈리기만 했던 것들이 ‘좀
더 입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박재현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 전략기획팀 팀장
박재현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 전략기획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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