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만약에 인간 사회가 완전한 평화의 길을 발견해서 행복만을 노래하는 날이 온다면, 종교와 정치 그리고 언론계 종사자들은 화염병을 투척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의 평화반대 시위를 극렬하게 열어나갈 개연성이 매우 높다.

 

놀고 있는 염전
놀고 있는 염전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오래 전 문학평론 공부를 한다고 나다닐 때 사회학 전공 강사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그날의 강의 주제가 벌거벗은 야누스였던가, 악마와 천사는 한 몸이다였던가, 아무튼 두 개 이상의 인격체를 내장한 집단에 관한 것이었다. 그 강의를 들을 때만 해도 내가 제법 순진해서 종교와 정치 그리고 언론이 갈등과 분열을 먹고사는 문제적 집단이라니 이게 무슨 궤변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하나를 배우면 열을 이해하고 깨우치는 순발력이나 영특함이 내게는 없었던 것이다.

순진하고 우직했던 시절의 나는 중앙일간지에 실리는 칼럼과 사설을 이백 자 원고지에 또박또박 한 자씩 베껴 쓰는 방식의 공부를 했었다. 그 시절의 언론은 내게 스승이었고, 정언명령과도 같은 권위를 갖고 있었으며, 때로는 신과도 같은 위엄을 지니고 있어서 감히 함부로 대들어볼 엄두조차 내볼 수 없는 대상이었다. 이거 이상하다, 하면서도 내가 무식해서 이해를 못 하는 것으로만 여겼을 뿐, 적극적으로 따지고 분석할 용기까지는 차마 감히 내볼 수가 없었다.

이거 이상하다 하는 소극적인 의구심이 이거 나쁜 것들이네, 하는 적극적인 소견으로 바뀌기까지의 과정 어딘가에 ‘신자유주의’라는 다섯 글자가 있었다. 당시 대통령 김영삼이 천명하고 나선 신자유의는 글로벌이 어떻다는 둥 여러 가지 그럴싸한 수식어로 포장돼 있었지만 무시무시한 괴물의 이빨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강한 자는 살짝 누르고, 약한 자는 살짝 띄워서,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동등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약한 자가 사람 노릇을 하게까지는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른바 억강부약의 정치사상을 확 뒤집어엎어서 강한 자는 자유롭게 언제나 어디서나 사기와 횡령, 배임, 주가조작 등등 지능범죄를 들키지만 않게 하라는 메시지로 이해되기 십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민사회 인사들은 맹렬히 성토하고 나섰지만, 언론사들은 정 반대의 입장에서 칼럼과 사설과 해설 등등의 방식으로 신자유주의를 선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찌나 정신없이 쏟아내는지 친절하게 설득력 있는 논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너희들 나 믿지? 믿어라. 계속 믿어라. 안 믿으면 죽는다, 하고 마구 쑤셔 넣고자 한다는 느낌이어서 불쾌하기조차 했다.

마음에서 절로 일어나는 불쾌감은 그 어떤 물리적인 폭력보다도, 그 어떤 심리적인 배신감보다도 강력한 분노의 에너지를 내장하고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이것들이 나를 완전히 바보로 여기는구나 하는 뭐 그런 것.

 

20년 전의 고창염전
20년 전의 고창염전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이렇게 해서 내 마음에 훌륭한 공익의 대변자였던 언론은 간악한 사익집단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물론 모든 언론을 다 그렇게 본 것은 아니었다. 특히 간악하다고 여겨지는 몇몇 신문을 지목해서 경계하는 영특함까지도 어느새 내게 생겨 있었다.

그 중에 한 신문이 얼마 전 우리 동네 바로 앞에 있는 염전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는 기사 하나를 출고했다.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 정책이 소금 가격을 뛰게 만들었다는 요지의 제목부터가 사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이 명백해 보이는 그런 불온한 기사, 라기보다 개인의 일기장 같은 수준의 글을 내가 보자고 해서 본 것은 아니었다. 2년 전부터 시작된 나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출에 관한 관심이 아차 하는 순간 그쪽으로까지 잠시 이동해 간 것일 뿐이었다.

인터넷이란 매우 영악하게 발달한 상업공간이어서, 하나를 보자고 하면 열, 백, 천을 보여주고, 전혀 관심이 없는 것까지도 마구 들이대며 이것도 봐, 이것도 보라니까, 하고 외치는 호객행위의 선수라고 생각하는 나는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고 늘 다짐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다짐은 언제나 그 순간뿐이다. 그야말로 아차 하는 순간 샛길로 빠져들고, 시간을 한없이 소비한 뒤에서야 아이고 또 당했구나 하는 식이다 그날도 그랬다.

도쿄전력의 주문에 따라 미스비시와 히타치 등 일본 유수의 3개 회사가 공동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이른바 첨단액체처리시스템(alps)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무엇인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무슨 굉장한 기술과 신소재를 사용한 것이라고 그렇게도 일편단심 영업비밀을 내세우며 악착같이 감추려고 하는지 또한 너무너무 궁금했다.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검색을 하고 또 하는 동안 나는 바야흐로 핵관련 검색 마니아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날은 뭔 실수로 뭔 글자 하나를 잘못 쳤던 것인지, 느닷없는 소금 관련 이야기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소금 사재기 소문이야 뭐 나도 알고는 있었다. 알지만 더 이상 깊이 있게 알고 싶지는 않아서 무시해 버렸다. 그냥 무시만 한 게 아니라 한심하다는 투의 실소도 아마 조금은 흘렸을 것이다.

 

골프장이 된 염전
골프장이 된 염전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런 내가 소금 값 폭등과 관련된 뉴스에 관심을 가져할 이유는 없었다. 그날 내 관심을 끌어당긴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 정책이 소금 값을 뛰게 했다는 요지의 제목이었다. 대충 훑어만 봐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 많은 글 중에 현장 사정이 제대로 녹아들어 있는 글은 단 한 건도 발견할 수 없었다.

국내의 염전 현황은 내가 누구 못지않게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도시 탈출에 성공해서 시골 생활을 시작했을 때 염전을 드나들며 노동을 했었고, 생전 처음 접해보는 염전이 신기해서 전국의 염전을 취재 명목으로 돌아다니는 한량 노릇도 해 보았고, 무엇보다 막내 동생이 국내 최대의 천일염 생산지로 유명한 신안군에 처가를 두고 있는 까닭에 염전 사정을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게 돼 있었다.

사람이 소금밭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일언이 폐지하고 죽음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사계절 중에 가장 무더운 여름 한철만 운영되는 소금밭은 그 특성상 그늘 한 점 찾아볼 수 없고, 바람도 조금 부는가 싶으면 금방 비켜가 버린다. 소금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복사열과 태양이 덮어 누르는 강렬한 열기 속에서 사람의 몸은 샌드위치가 되고, 숨을 쉬면 콧속이 뜨거워서 숨쉬기조차 가능한 줄이려고 노력하는데 땀은 줄줄이 마구 흘러서 팬티 한 장 걸친 것조차도 귀찮고 짜증스러워져 버린다. 그렇지만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들면, 사람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도 보람차고 흐뭇할 수가 없다.

그건 그렇고, 우선 고창의 염전 현황을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염전 노동자로 참여했던 이십여 년 전에 이미 회복 불능의 사양산업이 돼서 골프장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중추원 참의를 하는 등으로 친일파 딱지가 제대로 붙은 김연수가 소금 사업을 벌였고, 지금도 그 후손들이 일부 소유권을 갖고 있는 고창의 염전은 해리면에서 심원면에 걸쳐 있는 그야말로 대단위 사업장이었다. 여기에 참여한 인원이 얼마나 많았는가는, 지금도 일부 폐허의 상태로 남아 있는 기숙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전성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어른들 말씀에 따르면 기숙사 건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각 건물마다 열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득시글’거려서 술집도 즐비했다’고 한다. 그렇게도 호황이었던 천일염 산업이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정제염이 등장하면서였다. 생긴 것이 투박하고 우직하고 색깔마저 칙칙한 천일염에 비하면 정제염은 확실히 깔끔하고 산뜻해 보였다. 정제염은 천일염보다 오히려 불순물도 많고 인체에 안 좋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긴 했지만 일단 잡힌 흐름을 꺾지는 못했다.

 

염전 관리회사 정문
염전 관리회사 정문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이렇게 해서 날이 가고 해가 더해질수록 염전을 드나드는 사람은 줄어들어 갔다. 사람이 줄어들수록 염전은 풀밭이 되어갔고, 풀밭이 되어갈수록 염전은 어디서 뭐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혐오 플러스 기피의 공간이 되어갔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염전 자리에 골프장을 지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누가 최초로 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야산 하나를 통으로 깎아다가 염전을 덮고 그 위에 정원수를 심는 엄청난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우공이산이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렸고, 사람이 산을 정말로 옮겨놓을 수도 있구나 하고 저마다 고개를 회회 내둘렀다. 이렇게 해서 염전 자리에 18홀 규모의 골프장과 연습장 그리고 호텔이 들어섰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염전 부지가 남아서 잡초 우거진 폐허의 공간이 되었고, 고창의 바닷가 이미지를 흐려놓는 이 공간의 활용방안을 궁리하느라 고창군은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국내 최대의 천일염 생산지 신안의 사정은 고창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고창의 염전은 소유주가 재벌급이어서 생존 문제와 직결돼 있지는 않지만, 신안은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고, 때문에 염전의 소유 또는 관리 주체도 제각각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소금 생산을 못하면 다른 무엇이든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염전의 소유 또는 관리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차로 새우 양식을 시작했다. 처음 몇 사람은 수익이 제법 좋았다. 하지만 새우 양식에 뛰어드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새우 가격이 폭락하고, 새우 양식장은 다시 폐허의 풀밭이 되어갔다.

그 시기에 탄소중립이 국제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인류가 대체에너지를 개발해내지 못하면 멸망을 각오해야 한다는 1967년 ‘로마클럽 보고서’ 이후 꾸준히 제기돼 온 대체에너지 문제에 관한 답을 신안군이 독자적인 노력으로 찾아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신안군은 방치된 염전 부지에 태양광 패널을 깐다는 내부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군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받는 작업에 나섰다.

 

염전 노동자 숙소 일부
염전 노동자 숙소 일부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간단히 말해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신안군은 태양광 발전 사업을 추진해 왔었다. 거기서 나온 수익을 군민에게 돌려주기 시작한 게 문제인 정부였을 뿐이다. 태양광 때문에 소금 가격이 뛰었다고 호들갑을 떤 기자들도 아마 그 정도의 기초 사실은 확인했을 것이다. 아닐까? 그런저런 기초 사실 확인 같은 절차는 아예 그냥 생략해 버리고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이었던 것일까?

가만히 곰곰 생각해보면 그렇다. 오늘날의 대다수 기자들은 어떤 조금증과 초조감에서 파생되는 불안의 포로가 돼버린 것 같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기자라면 으레 갖기 마련인 정의라든가 공정, 진실 같은 것은 이미 그들의 관심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살아남기’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렇게도 열심히 권력자가 원하는 바를 살펴서 거기에 자기를 맞춰나가는 것일 게다.

하긴 그래서 나처럼 기성언론을 외면하고 개인방송 등 대안언론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기성언론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망할까? 아니면 보다 정교한 속임수를 개발해서 신장개업 선언 같은 것을 하게 될까? 아니 어쩌면 문자 그대로의 개과천선을 해서 언론 본연의 자세를 갖추게 될지도 모르긴 하지만, 어쨌든 현재의 언론 판도는 지나치게 비굴하고 생존 지향적이어서 보기에 불쾌한 것만은 사실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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