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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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살다 가끔, 그 남자들 생각이 난다.

대학생 때 가출해서 절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그 무렵 함께 살았던 남자들 이야기다.

대학을 휴학하고 집을 나와 무작정 찾아 간 곳은 설악산의 어느 유명한 절이었다. 세상 소음과 등지고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왔건만 유명 관광지여서 그런지 우리 동네보다 더 시끄럽고 복작거렸다. 어찌해야할까 고민하다 그 절의 사무장님에게 내 상황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집 전화번호부터 적으라고 했다.

“안 적으면 안 도와준다.”

사무장님은 그 자리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소상히 알렸다. 그리고 사무장님 전화번호를 불러주며 언제든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할 테니 아무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켰다. 그런 다음 나에게 물었다.

“얼마큼 조용한 곳이면 되겠냐.”

나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양 손을 가슴에 얹어 나의 절실함을 알렸다. 그런 나에게 사무장님은 배부르게 저녁밥을 먹이고 잠자리를 내어주며 내일 새벽 일찍 길 떠날 채비를 하라고 했다.

다음날 새벽. 사무장님은 나를 깨워 차에 태웠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꿀렁꿀렁 넘어 하염없이 산 속으로 차를 몰았다. 꿈결인지 생시인지 안개 자욱한 산속을 돌고돌아 어느 절 앞마당에 차가 섰다. 이런 깊은 산 속에 멀쩡하고 커다란 절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티끌 하나 없는 고요함.

내가 원하던 딱 그것이었다.

그곳에서 본격적인 가출생활이 시작됐다.

사무장님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엄마한테 알려주어 집에선 아무도 내 걱정을 하지 않았다. 좀 싱거운 가출이었다. 너무 조용하고 너무 심심하고 너무 할 게 없었다. 오죽하면 가톨릭신자인 내가 108배를 하며 놀았을까.. (하루 세 번 한 적도 있다)

낭떠러지 바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절 마당까지 스스럼없이 내려오는 고라니와 다람쥐. 절에 사는 개 고양이와 어울려 놀았다.

그 절에는 남자 스님이 세 분 계셨다. 두 분은 젊은 편이었고 주지스님은 늙은 편이었다. 세 분 중에 한 분은 수다스럽고 한 분은 말이 없었으며 주지스님은 술 드시기 전과 후가 달랐다. 그리고 밥 해주는 보살님 한 분과 불목하니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나는 조용한 곳이 좋다며 산 위 암자를 혼자 쓰고 있었다. 첩첩 산중이라 호랑이가 물어가도 모를 그런 곳이었다. 주지스님은 성룡영화 마니아여서 가끔 둘이서 한밤중까지 성룡 비디오도 같이 보곤 했다.

어느 겨울날에는(여름에 가출했는데 겨울이 되었다) 스키장 구경을 시켜 준다기에 좋다고 따라나섰더니만 진짜 스키장 입구만 딱 보여주고 짜장면을 먹으러 간 적도 있었다. 주지스님은 선문답 같은 유머를 즐겨 하셨는데 어디서 웃어야 할 지 몰라 나는 아무 때나 막 웃었다.

다른 스님 두 분 중 한 분은 뭔가 사연이 깊어보였다. 얼굴은 원빈 급이었는데 건강이 별로 안 좋아 보이셨다. 나에게 가출한 이유가 뭐냐 길래 소설 쓰러 나왔다고 뻥을 쳤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틈만 나면 좋은 책들을 골라 내 방에다 슬쩍 넣어주고 갔다. 내 인생에서 읽어야 할 영양가 높고 재미없는 책은 그곳에서 다 읽고 나온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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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스님 한 분은 말 하는 걸 좋아하셨다. 유시민 씨를 닮았는데 방에 놀러 가면 귤이나 간식을 잔뜩 챙겨주곤 했다(물론 그 대가로 재미없는 얘기를 한참씩 들어야 했지만..). 가끔 서점이나 읍내에 나갈 때면 날 꼭 태우고 나가 짜장면이나 탕수육을 사주고 책도 골라주셨다.

그리고 불목하니 아저씨. 이 분이 하이라이트였다.

어디서 고물티비 한대를 가지고 와서 심심하면 보라고 슬쩍 넣어주기도 하고 무좀연고를 얼굴에 발라준 보살아줌마 흉도 같이 보고 내가 살고 있는 암자에 귀신 나왔던 얘기도 재밌게 들려줬다.(그 이후로 진짜 귀신을 본 적도 있다) 하루 종일 아무 할 일도 없이 방에 널브러져 있는 나에게 커다란 대나무를 잘라다 방에 지압봉을 만들어주고 새끼 고양이를 데려와 껴안고 자라며 안겨주기도 했다. 자기는 고아로 자라 외로움이 많다며 나를 진짜 친동생처럼 여기고 예뻐해주었다.

나는 겁 없는 철부지였고 운 좋은 젊은 여자였다.

사무장님. 스님 세 분. 불목하니 아저씨. 그분들 모두 남자였다. 산 속에 지발로 걸어 들어와 단정함도 야무짐도 없는 젊은 아가씨가 여기저기 빈 틈 투성이로 그곳에 일 년 가까이 머무는 동안 그들은 오히려 내 옷깃을 여며줬던 남자들이었다.

그곳을 떠나온 뒤에도 가끔 지치고 힘들고 외로울 땐 그분들 생각이 나곤했다. 만약 거기서 내가 누군가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두고두고 분노와 상처로 괴로워했을지도(몇 년 뒤에 찾아가 불을 확 싸질러 지금의 화암사가 절터만 남아있을지도)모른다. 그 이후로 만난 사람들 중에 나쁜 남자들도 간혹 있었지만 내 마음에 신뢰라는 전기장판을 깔아준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간을 될 수 있으면 믿고 살아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살면서 뭐 대단한 선행 못하고 산다 해도 내가 절에서 만난 그분들처럼 인연에 스크래치 내지 않고 산다면 훌륭한 삶이라 생각한다. 천국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학부모가 교사를 믿지 못 하고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세상, 그런 곳이 바로 지옥이 아닐까 싶어지는 요즘이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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