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나는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카페에 가면 커피보다는 허브티 같은 음료를 마시고, 그저 나 마시려고 커피를 사러 홀로 카페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우유나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 아메리카노의 맛을 도통 모르겠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게다가 내 몸은 카페인의 효과를 본 적이 없어서 각성제로서 커피를 이용할 이유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 커피전문점 붐이 불어 스타벅스를 비롯한 다양한 프랜차이즈 커피집들이 흔해지는 동안에도 커피에 별 관심이 없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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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내가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케이크나 쿠키 같은 디저트 때문이다. 디저트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단 맛에 예민한 입맛이다 보니 커피나 차 없이는 단것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한국에서 홍차 전문점이 아닌 이상 홍차를 맛있게 타는 카페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디저트 맛집에서 디저트를 맛볼 때는 주로 커피를 곁들이곤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커피를 마실 때 다 마시는 일이 거의 없다. 디저트를 먹고 나면 더 이상 커피를 마실 이유가 없어지고 심지어 식은 커피는 정말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디저트를 먹기 위해 내게 필요한 커피는 고전적인 커피잔 한 잔 분량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커피 전문점에서 이용하는 머그잔이나 종이컵에 들어가는 커피의 양은 내게는 늘 너무 많았다. 어떤 카페에서 주는 커피의 양이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이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항상 커피를 절반 이상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런 나도 가끔 집에서 케이크나 쿠키를 먹으면서 커피를 약간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카페 커피를 살 수는 없었다. 끝까지 다 마시지도 못하는데 4천 원 넘게 쓰는 것이 아깝고 약간 죄스럽게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간단히 인스턴트커피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인스턴트커피는 쓴맛이 너무 강해서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데이트 중 조선 고종시대 가배 체험을 할 기회가 생겼다. 한국에 처음 들어온 커피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작은 손절구로 원두를 갈고, 커피 가루를 천에 올려 뜨거운 물로 추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린 커피 맛은 나쁘지 않았다. 나는 조용한 한옥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커피라는 음료의 본질은 단순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체험은 커피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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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커피 만들기에 대한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으로 금속 드리퍼를 하나 구입했다. 드립은 커피를 만드는 방법 중에 가장 단순한 형태라 커피 애호가가 아닌 내게는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필터 기능이 있는 금속 드리퍼를 구입한 이유는 쓰레기 배출이 가장 적은 방식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드립용으로 분쇄된 원두 분말을 한 팩 구입했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어설프게 드립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가 커피를 자주 마시지 않기에 커피가루를 빨리 소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으로 갔다. 거기에 있는 많은 커피 책들에서 나는 원두가루를 냉동실에 보관하라는 조언을 얻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의심했지만 막상 해보니 냉동실에 보관한 커피가루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게다가 직접 내리는 드립 커피는 인스턴트커피와는 비교도 안되게 향이 풍부했다. 그렇게 나는 가끔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리 집에 작은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이 하나 들어오게 되었다. 주말에 인스턴트커피를 한 잔 드시는 부모님을 위해 동생과 올케 부부가 선물한 것이다. 커피 캡슐을 넣으면 바로 커피를 뽑을 수 있는 이 신기한 물건은 아쉽게도 부모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우리 부모님은 커피 농도를 연하게 드시는 분들이라 인스턴트커피 가루면 충분하셨던 것이다. 커피 맛에 까다롭지 않으신 부모님 입장에서는 커피 캡슐이 아무리 간편해도 뒤처리가 필요하니 뜨거운 물에 타기만 하면 되는 인스턴트커피의 편리성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집에 잔뜩 남게 된 커피 캡슐을 보면서 나는 선물한 사람들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이 모든 것을 먹어서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어쩌다보니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우연은 나에게 커피를 더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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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머신의 가장 큰 장점은 아주 농도를 진하게 빨리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커피음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드리퍼로 카페오레를 만들어 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커피가루도 많이 넣어야 하고 왕초보자인 나로서는 기술도 없으니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 머신 덕분에 나는 드디어 집에서 커피 음료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데운 우유에 에스프레소 샷을 넣으면 금세 카페라테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거기에 꿀을 조금 넣고 계핏가루나 코코아 가루를 뿌려 마셨다. 내친김에 나는 작은 전동 거품기도 구입했다. 그렇게 커피에 우유 거품을 올릴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우유 말고 다른 음료에 커피를 섞는 시도도 해보았다. 두유 라테는 무겁고 씁쓸한 맛이 나름의 매력이었다. 최근에는 귀리 우유에 에스프레소 샷을 섞어 보았는데 아주 구수하고 맛이 좋았다. 이런 음료는 재료에 비율에 따라 그 자체로 디저트 역할도 해주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면서 커피라는 식재료의 가장 독특한 매력은 이런 다양한 커피음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이 기계로 거의 만들지 않는 것은 아메리카노다. 대부분의 카페에서 팔고 있는 가장 흔한 메뉴이기에 의외였지만 나는 어떤 캡슐을 써도 아메리카노는 드립 커피만큼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물을 많이 섞는 커피는 드립으로만 만들어 마시게 되었다. 대신 물을 섞지 않은 에스프레소 샷은 아주 달고 진한 맛의 과자에 참 잘 어울렸다.

그렇게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나는 데이트 중에 커피 맛집도 가보기 시작했다. 진짜 커피 맛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던 남자친구도 감탄한 에스프레소 맛집도 있었고 크림 커피의 맛에 있어 온도가 얼마나 충격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알려준 곳도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 “와, 맛있다!”라는 말이 나오는 커피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단순히 원두의 종류뿐만 아니라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섬세한 솜씨가 커피맛을 얼마나 좌우하는지를 경험했다. 또 나는 요즘 유행하는 이곳저곳의 에스프레소 바를 방문해서 크림을 올린 다양한 디저트용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남자친구는 이제 디저트로 맛있는 아인슈페너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프랜차이즈 커피집에 가지 않지만 이렇게 가끔 맛집 커피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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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훨씬 더 오랫동안 차를 마셨던 사람이다. 지금도 집에서 커피보다는 홍차를 더 많이 마신다. 하지만 커피를 알게 되면서 나의 식생활이 더 풍부해졌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카페 문화나 사람들의 커피 사랑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스스로 커피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카페 메뉴에서 볼 수 있는 마키아토, 코르타도, 카푸치노, 카페오레, 카페라테 같은 온갖 커피들은 단지 커피와 우유의 비율이 다를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커피를 마실지 선택하는 것도 쉬워졌다. 그래서 이제는 커피집에서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콘 판나도 마시고 플랫 화이트도 마시곤 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나는 내가 커피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매일 커피를 마시는 친구들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거리를 걷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커피 중독자도 특별한 애호가도 아닌 지금의 나의 커피 생활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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