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책 읽는 일기]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김혜나 외 4인 저, 앤드, 2023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아는 지인이 어느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술 먹는 북토크가 있다고 하길래, 엉겁결에 따라 가게 되었다. 술을 먹는 북토크라니, 도대체 어떤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말인가? 하루에도 새로운 책이 무더기로 쏟아지는데 책을 읽는 독자들은 조금씩 더 줄어드는 오늘날, 조금이라도 책을 알리기 위해 작은 행사라도 내어 보이려는 출판사는 많지만, 술을 먹는 북토크는 내가 듣기로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서울시 마포구에서 전통 술을 빚는 양조장에서 하는 북토크는 더더욱 처음이었다. 무슨 책인가 싶어 찾아 보니 다섯 명의 소설가가 술을 주제로 쓴 다섯 개의 단편을 모은 소설 ‘앤솔러지’였다. 어느 재기발랄한 출판사 마케터가 아예 양조장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북토크를 기획한 모양이었다.

 

ⓒ위클리서울/ 픽사베이

아는 지인은 어디서 이 소식을 확인했는지 그곳에 가면 전통주 양조장 사장님이 술을 계속 계속 내어줄 거라고 반드시 갈 거라고 했고, 그날 별다른 약속이 없던 나도 한 번 가볼까 싶어 무심코 북토크 행사에 참여를 신청했다. 마포구에 전통주를 빚는 양조장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것도 이름마저 직관적인 애견샵 ‘개밥하우스’ 건물 지하에 있을 줄은 몰랐다. 몇 번 지나녔던 대로변 건물 계단을 한 칸만 내려가면 서울의 전통주 ‘삼해소주’를 만드는 양조장이 있었다. 양조장은 술만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전통주 빚기 클래스도 진행하고, 달에 한 번씩은 목요일 저녁에 진행하는 ‘불목파티’를 열어 전통주를 같이 먹는 파티를 열고 있었다. 그 불목파티에 이번 북토크를 얹어서 북토크 식으로 진행하는 듯했다.

여기가 맞나 싶어 찾아간 지하의 양조장, 문을 열면 술을 빚고 처리하는 주방 같은 곳이 나오고 더 안쪽에는 큼직한 방이 있었다. 주황색 등 때문에 주황색으로 빛나는 방 안에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각자 알아서 사온 밥을 먹고 있었고, 누가 작가인지 누가 독자인지 그런 것도 알 수 없었고, 그날따라 늦은 버스 덕에 늦은 나는 황망히 지인을 찾아 옆에 앉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돼? 접시 가져다가 음식 떠와서 술이랑 마셔. 테이블에는 누가 보아도 고급스러운 막걸리가 있었다. 이게 북토크인가 싶던 차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시켰고, 이건 약간 공적인 행사가 아니라 사적인 행사 느낌이다, 어느 교수님이 상을 받아서 대학원생들이 마련한 공과 사가 뒤섞인 술자리 같다, 혼자 생각했다.

ⓒ위클리서울/ 앤드

이미 작가들의 소개는 끝났는지 더 이상의 다른 진행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속초에서 술집을 한다는 레게 머리 여자 사장님, 직접 김밥 수십 줄을 싸온 분, 작가 지망생들이 입을 법한 코트를 입은 젊은 남자, 점점 붉어지고 있는 작가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무표정하고 약간 뚱해보이지만 귀여워 보이는 양조장 사장님이 지인의 말대로 정말 귀한 전통주를 계속 계속 내어주었다. 사과와 귤로 만든 청주, 물 대신 청포도즙을 써서 만든 술, 귀한 막걸리···. 조선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천국을 한 번쯤은 그려 보았을까. 40도가 넘는 증류주들은 그래도 테이블이 아니라 선반에 있어서 다행히 내가 천국에 있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지하에서 갑작스레 마주한 이 모든 풍경들은 뭐랄까,

지나치게 소설적이었다. 일상과 부드럽게 어긋난듯한 공간, 낯설어서 다정한 사람들, 다들 할 이야기가 있어 보이는 얼굴들, 무언가 인연을 시작할 수 있을 것도 같은 공간. 한 잔 한 잔 마시다 보니 어쩌면 나는 지금 소설 속에 있는 건지도 몰라. ‘불편한 양조장’이라는 소설의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건지도 몰라. 생각하며 점점 취해 갔다. 소설을 쓴 다섯 명 중 세 명의 작가가 자리에 참석했다. 그들은 점점 더 취해갔고, 다른 공적인 자리에서라면 하지 않을 개인적인 말들을 감상에 젖어 늘어 놓았고, 붉은 얼굴이 벅차 보였다. 그중 한 명이 이 앤솔러지 소설집을 기획한 모양이었다. 자기 기획이 책이 되어 나오면 얼마나 뿌듯할까, 그의 취기가 이해되었지만 그는 내일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이 모든 장면들조차도 소설 같았다.

일상에서 보기 드문 장소와 사람을 마주할 때 우리는 ‘소설 같다’고 종종 말하게 된다. 요즘은 ‘영화 같다’라는 말을 더 자주 쓰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날 이건 소설 같은데, 라고 중얼거리게 된 것은 직전에 이 자리의 목적이었던 소설집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생각보다 더 기획의 틀이 선명했는데, 다섯 명의 작가가 각각 다른 주종을 골라서 그 주종을 테마로 한 단편 소설을 쓴 것이었다. 북토크 간다는 마당에 책을 읽지 않고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북토크 바로 직전까지 책을 재빠르게 읽었다. 북토크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곳저곳 기웃대며 주종을 가리지 않고 술을 먹어온 사람으로서, 술 이야기가 궁금했다.

전통주, 맥주, 위스키, 소주, 와인을 테마로 한 소설들은 각각의 매력이 있었으나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읽는 내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소설들이 스스로 불편해 보였다. 자신이 주제로 택한 주종에 대한 정보를 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그랬을까, 자연스럽게 이어지다가도 갑자기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전통주는 어떻게 만들어지나면… 수제 맥주를 만들려면 홉이 필요한데… 하면서 설명을 붙이는 식이었다. 무언가 열심히 조사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내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엿보이는 대신 자연스러움이 떨어졌다. 술에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소설들은 아직 충분히 발효되지 않은 정보를 너무 일찍 까버린 술통 같았다.

제대로 알고 소화한 것 이상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 소설은 그야말로 허구일 뿐인 이야기인 ‘소설’이 된다. 너무나 ‘소설’임이 드러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느껴질 때면, 이건 결국 작가 혼자 머릿속에서 구부려 만든 가짜네,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허구의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는가? 그것은 어쩌면 소설의 허구 속에는 이미 누군가가 허구라는 형식을 통해 소화한 삶의 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고, 자연스럽게 함께 그 현실을 소화하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잘 발효된 소설을 읽을 때면 작가 개인은 흐릿해지고, 우리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한 겹의 새로운 현실이 남는다.

그렇다면 내가 북토크 술자리에 앉아 중얼거렸던, 이건 소설 같은데는 어떤 느낌이었나? 누가 억지로 불러 모은 허구 같기도 했고, 내가 새롭게 경험하고 있는 현실 같기도 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자신에도 취해 이야기할 때는 허구 같았고, 양조장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앉아 있던 양조장 사장님이 술을 따라줄 때는 새로운 현실 같았다. 차이는 자연스러움이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소설이 흥미롭게도 ‘소주’를 주제로 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주가 설명할 게 있나.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소주잔을 앞에 두고 앉으면 된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된다. 그곳에서 만난 양조장 사장님도 내게는 그랬다. 그는 그 공간에서 가장 특이하고도 자연스러워 보였고, 이야기는 거기에서 시작해도 좋다.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잘 발효된 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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