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책 읽는 일기] 언러키 스타트업, 정지음 저, 민음사, 2022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작년 언젠가, 민음사에서 펴내고 있는 격월간 문예지 <릿터>에서 이 소설의 한 꼭지를 처음 보았다. 한 꼭지를 보자마자 나는 이게 책이 되어 나온다면 사지 않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첫 번째로는 너무나 웃겼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는 그 웃김을 몇몇 지인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읽었던 부분은, 자기 좌우명을 ‘캘리그라피’로 써오라는 작은 스타트업 회사의 사장의 명령을 듣고, 문예창작과 직원 어이없어서 분개하는 부분이었다. 

 

ⓒ위클리서울/ 정다은

출간 소설에서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명랑하고 경쾌한 필체, 거침없이 자조하고 분노하는 에너지, 과장된 스케치 속에 희화화된 인물들‧‧‧. 제목은 심지어 ‘언러키 스타트업’. 이런 스타일의 소설이 책으로 등장하는구나 싶어, 단행본으로 묶일 날을 기다렸다. 문예지의 연재분에서 한 쪽씩 읽기에는 감질날 것 같은, 보고 싶은 드라마를 완결될 때까지 기다렸다 몰아보는 시청자의 마음으로 책을 기다렸다.

그렇게 책이 ‘시트콤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한 권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기쁜 마음에 곧바로 주문하고 책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에 치여 책상 위에 그대로 둔 채로 읽지를 못했다. 다만 가만히 책상 위에 누워 있는 이 책을 보며, 웃음과 재미가 보장된 책을 책상 위에 놓고 보는 것은, 밥을 먹으며 굴비를 쳐다보는 선비의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바쁜 일상, 어쩌면 그야말로 직장인의 ‘언러키’한 생활을 보내며, 그 생활을 과장되게 그려내고 마음껏 놀리고 희화화해줄 이 책의 존재는, 읽지 않았는데도 조금 소중했던 것 같다.

나의 ‘언러키’한 생활이 조금 정리된 이후, 지친 몸을 이끌고 주말에 이 책을 읽었다. 아끼고 아꼈던 이 책은 충분히 웃겼고, 통통 튀고, 많은 이들이 느낄 직장 생활의 어이없는 일들을 거침없이 그려내고 있었다. 몇몇 구석에서 계속 킬킬 웃으며, 이 부분은 친구들에게 공유해줘야지, 그러면 다들 웃기다고 답장이 오겠지, 생각하며 읽었다. 다만 다 읽고 나서는 좋아하는 간식을 한 끼에 몰아 먹어 체한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고,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에 대해서 조금 오래 생각해야 했다. 이 웃긴 소설은 어쩌면 너무 웃겨서 슬프고, 그 슬픔은 그다지 유쾌한 끝맛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좋은, 나누고 싶은 책이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스타트업’의 이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스타트업’의 이미지는 뭐랄까 늘 사장은 젊고, 수평적인 문화를 추구하고,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믿는 젊은이들이 가득하고, 사원증에는 유쾌한 사진이 걸려 있고, 영어 이름을 쓰고(물론 톰 부장님 같은 명칭이 혼재하지만, 직원들의 이직이 잦은, 이제 막 새로 시작하는 작은 회사에 가까웠다. 생각해 보면 언젠가부터 ‘벤처’라는 말을 ‘스타트업’이 대체한 것처럼 된 듯하지만, 경영이나 경제 쪽에는 무지한 내 입장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젊고 패기 있는 작은 회사구나 싶었고, 그 안에 분명한 고충이 있을 줄을 알았고, 그 운 없는 ‘언러키’함을 저자가 어떻게 담아낼지 나는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정지음의 '언러키 스타트업' ⓒ위클리서울/ 민음사

예상과는 다르게 이 책에서 다루는 ‘스타트업’은 내가 생각하는 스타트업과는 달랐다. 개발자가 있는 젊은 IT 회사도 아니었고, 이제 시작하는 성장하는 회사도 아니었고, 세련된 사원증 같은 것도 없었다. 사실 그냥 주로 중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무 강연 영상을 찍는, 스스로를 스타 강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영세한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강사가 만든 ‘알 수 없는’ 회사였다. 알 수 없는 것은 이 회사의 정체성 같은 것이어서, 회사의 이름은 ‘국제마인드뷰티콘텐츠그룹’이었으며, 회사명이 저런 것은 대표 이름이 박국제이기 때문이다.

박국제 대표가 운영하는 그야말로 이상한 회사에 입사한 김다정의 이야기가 소설의 주요 이야기다. 성인지감수성은 최저이며, 오로지 자신만을 알고, 사업적으로는 아무 수완도 콘텐츠도 없고, 직원을 대하는 태도는 처참하며, 폭언을 일삼고, 업무 외적인 일을 요청하고, 자기 자신은 호위호식하는 박국제라는 대표. 여러 사람의 결점을 한 사람 안에 때려 넣으면 어떤 인물이 되는지 실험하기 위해 탄생한 것과 같은 이 인물을 ‘씹는’ 동력으로 소설의 에너지는 가득하다. 그 과장된 희화화를 해내는 작가의 ‘글빨’이 너무 웃기기 때문에, 또 한 번이라도 직장 생활을 해보았다면 살짝이나마 경험해 보았을 화나는 지점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사실 누가 읽어도 잠깐은 웃으며 읽을 수 있다.

계속 웃고 웃다가, 나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이 소설을 굴리고 있는 것은 이 회사의 ‘이상함’에 대한 과장이 섞인 서술이다. 인물들은 사실상 한 특성이 극단적으로 극화된 ‘캐릭터’에 가까우며, 서사는 그야말로 선이 굵다. 그게 ‘시트콤’ 소설이라는 특이한 명칭을 달고 나온 이 소설이 가지는 즐거운 미덕일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기존 한국 소설에서 기대하지 못하고 웹툰이나 웹소설, 드라마에서 찾아 헤매던 재미가 이 소설에는 있다. 다만 나는 이 소설이 가지는 과장된 ‘리얼리티’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웃기는 리얼함을 기대하고 이 소설을 읽었지만, 이 소설은 내게 일면 리얼하지는 않았다. 진지하고 담담하게 세상 그대로를 그려내는 것만이 리얼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 극화된 인물들과 사건들은, 계속 읽는 사람을 궁금하게 한다. 이래서 과연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이 사람들은 여기서 왜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이직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의 요는 이렇다. 이건 좀 너무 과장된 이야기가 아닌가. 웃기긴 한데 현실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물론 표현이나 형식의 측면에서 풍자와 해학을 택한 이 소설이 ‘과장’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을까? 이 소설이 웃긴 이유와 웃기면서도 슬픈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이 소설이 결국 현실의 어떤 아픈 측면과 뼈아프게 맞닿아서, 우리가 술자리에서나 이야기하는 고통을 다 모아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이 인간은 어떻게 사장 노릇을 하는 거지?’ 독자가 느끼는 ‘이상함’은 이미 그 안에 캐릭터들 모두가 느끼고 있다. 그들도 이게 이상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왜 여기서 이런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는지를. 어쩌면 그 ‘이상함’ 뒤에 있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가야 한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다른 곳은 다른가? 다른 선택지가 있는가? 당장 일을 그만두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 실업급여는 제대로 받을 수 있는가? 다른 대안이나 선택지를 상상하기 어렵고 두렵고 무섭다. 그런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직장인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저런 두려움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다른 현재와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대안 없이 눈앞에 펼쳐진 ‘이상한 상황’을 당황스럽게 감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힘든 시간을 웃음으로라도 버티기 위해서 두려움 속에서 과장된 해학 놀이를 하는 것은 아닌가. 웃기면 좀 버텨지지 않나? 그런데 버티기 위한 웃음이 조금 슬프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언리얼’함과 ‘언러키’함이 한국에서 이상하게 ‘리얼함’을 획득한 방식이다. 단지 운이 나빠 ‘언러키’라고 우리는 말하며 웃지만, 결코 이 현실을 두고 ‘운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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