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최종화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것
- 김혜순, 여자짐승아시아하기, 문학과지성사, 2019


시작하는 것이 어려울까 끝내는 것이 어려울까? 혹은 시작하는 것이 더 쉬울까 끝내는 것이 더 어려울까? 온통 시작과 끝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에서 적어도 오늘의 나는 끝내는 쪽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어떻게 눈 딱 감고 해버리면 그만이지만, 끝은 도대체 언제 눈을 딱 감아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눈을 딱 감아 버리기에는 이미 해버린 것과 봐버린 것이 너무 많은걸…. 여행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 아주 계획적이고 꼼꼼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내가 지나온 길들은 여행이든 글이든 그랬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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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계기로 아시아 이곳저곳을 다녀온 이야기를 글로 오래 풀어냈다. 이렇게 길어질 줄도 모르고 때로는 사소한 이야기를 거창하게, 거창한 이야기를 사소하게 풀어냈던 것 같다. 이쯤에서 한 번 정리해보자면, 난느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의 해인 2019년에 주로 여행을 다녔다. 여름에는 몽골, 터키,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했고, 겨울에는 인도와 네팔을 여행했다. 그리고 사이사이 대만, 일본, 베트남을 다녀왔다. 이제는 거실에서 티비로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는 수많은 여행 유튜버의 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어쩌면 그리 특별하지도 않을 여행기를 나는 꼬박 3년 동안 썼다.

3년 전 군에서 막 제대한 휴학생이었던 나는, 3년 후 내가 어느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밤마다 다른 글을 쓰게 될 줄도 모르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우리가 속해 있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만 하는 아시아의 ‘울퉁불퉁한’ 면모를 한 번 스케치해보겠다는 거창한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잠시 마주했던 아시아의 얼굴을 부족하게나마 되살렸고, 때로는 징징거렸고 작은 장면을 과장하고 큰 장면을 축소했다. 성급하게 써내느라 부끄러운 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또 거창했던 처음의 말들이 부스러기처럼 떨어진 게 아쉬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기억 속에 아시아를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어 분명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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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우리는 늘 충격을 받는다. 아시아라는 이름에 관심도 없던 내가 처음 아시아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비슷한 충격 때문이었다. 아시아인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 왔으면서도, 몇몇 아시아 국가를 다녀보니 내가 아시아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엄청나게 넓은 땅을 뭉뚱그려 아시아, 라고 부를 때 우리는 그 넓은 땅에 속해 있는 수많은 문화의 얼굴들을 얼마나 손쉽게 잊고 마는지. 비행기 슥 타고 가면 있는 유럽과 미국 소식에는 귀가 밝으면서, 거기까지 나아가는 그 사이사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얼마나 많은지 왜 잘 몰랐는지.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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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단순했다. 흥미 삼아 세계지도를 보다가, 유럽까지 육로로 가는 길이 궁금했다. 북한이 없다면 한국에서 유럽까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지도를 보며 대충 3가지 큰 길을 그렸다.

1. 북한 위의 지역인 러시아 연해주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탄다.

2. 중국에서 카자흐스탄 방향으로 나아가, 흑해 위쪽의 우크라이나로 간다.

3. 중국에서 동남아시아, 인도를 지나 이란, 터키 방향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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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길은 2016년에 실제로 다녀왔으니, 2번과 3번 루트에 대해 알고 싶었다. 저 길들이 오래전 유목민들이 서쪽으로 나아갔던 길이었을 것이고, 육로로 무역이 이어지던 실크로드였을 것이다. 길을 따라 문화가 퍼져나가고 이어지고 부딪혔던, 지금은 내가 잘 모르는 그 길들을 내 발로 잇고 싶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거창한 이유와 사소한 이유가 있다.

거창한 이유: ‘아시아’라는 타자화된 공간의 목소리를 내 귀로 듣고 싶었다.

사소한 이유: 나는 단지 지도에 길이 있으면 일단 가보는 성격이다.

위에 말한 2번의 길은 중국 북서쪽 위구르족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게 힘들기 때문에, 티베트를 경유할 수도 있을 3번의 길은 중국이 외국인의 티베트 자유 여행을 명목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갈 수 없었다. 비용과 시간도 많이 소요될 것이 뻔했다. 가려고 하면 중국 때문에 계속 막히게 되어서, 중국 지도를 보며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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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뭉뚱그려 ‘중국’라고 똑같이 생각했던 그 넓은 영토 안에는 수많은 민족이 엉켜 있었고, 그 엉킨 민족의 실타래를 따라 다른 민족과 국가로 이어졌다. 근대 이후 그어진 국경선으로는 바로 이해할 수 없는 문화와 생활의 연결이 그곳에 있었다. 그저 역사의 낡은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옛 시절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지난 역사와 오늘날의 국가의 혼란과 드잡이 속에서 자신들만의 흔들리는 고유함을 붙든 사람들이 말이다. 글 속에서 그 고유함이 부족하게나마 같이 섞여들었기를 바란다.

처음 몽골을 여행한 이후, 나는 2번과 3번 길에 있는 국가들을 묶어, 2~3개월 정도 시간을 잡고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여행하고 돌아온다. 돌아와서 돈을 번다. 여행하고 돌아온다. 그렇게 여행을 지속하던 중 코로나가 터졌고, 그 이후로 파키스탄과 이란과 이스라엘을 여행하려던 마음 속 계획은 지킬 수 없었다. 때로 끝내는 것은 너무 쉽다. 시작해야만 하는 때보다 끝내야만 하는 때가 더 자주 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끝난 여행을, 나는 3년 동안 쓰며 내가 잠시나마 들렸던 길들을 조금이나마 스케치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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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 지나고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것은 낯선 사람들의 얼굴과 낯선 도시의 공기다. 처음 연재를 시작했을 때 내게 연락해서 돈을 빌렸던 네팔의 씨커르는 잘 살고 있을까. 인도의 푸쉬카르에서 만났던 레비와 번티와 마누는, 우즈베키스탄의 세이와 유아나는? 연말 시상식도 아니고 한 명 한 명 호명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꿈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들의 이름을 나는 혼자 가끔씩만 떠올릴 것이다. 그들의 얼굴만큼이나 도시의 공기와 냄새도 잊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선명한 것은 이쪽이다. 나는 때로 새벽과 밤에 혹은 한낮에, 불숙 낯선 도시로 소환된다. 이건 분명 네팔의 새벽인데…. 이건 우즈베키스탄의 낮인데… 이건 인도의 냄새인데…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마들렌 냄새를 맡고 갑자기 과거로 돌아가는 어느 소설의 이야기처럼, 나는 갑작스럽게 어딘가로 빨려들어간다.

내가 마주한 사람들과 낯선 도시의 이야기가 단지 추억거리로 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시아인이면서도 아시아를 너무나 몰랐던, 그야말로 스스로 낯설어하는 무지에서 나는 계속 조금씩 더 아시아를 알아가고 싶다. 알 수 없는 것으로 이미 넘치는 세계, 조금이나마 더 알아야 하는 것들 알려고 하는 데 덜 게을러지려고 한다. 힘 센 곳의 목소리가 너무 커, 분명히 거기에 있지만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애써 말하고 있지만 주변의 소음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에 귀기울이려고 한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목소리이기도 할 것이다. 내 안의 낯선 목소리를 발견하고 나의 바깥과 매미처럼 공명할 때, 세상은 좀 덜 지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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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만큼 아시아가 들썩거리는 때가 또 있을까. 연재 중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전쟁은 중동 곳곳으로 확전될 양상이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위태롭다. 덜 지루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다. 내가 짧게나마 마주한 수많은 얼굴이 부디 조금이나마 더 안온하게 남은 삶을 살아가기를, 앞으로 우리가 그릴 아시아에 그들의 얼굴이 제대로 살아 숨쉬기를 조용히 바란다.

여담으로, 나는 3년 동안 글을 써오며 누가 이 연재를 읽을지 궁금했다. 과연 한 명이라도 읽기는 하는 것인지, 읽었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했다. 마지막 글을 쓰는 순간이라도 그런 건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어떤 이유로든 우왕좌왕하는 글을 읽어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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