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책 읽는 일기]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이 키건 저, 홍한별 역, 다산책방,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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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누가 어느 나라를 제일 좋아하냐고 물으면 무심결에 아일랜드라고 대답하곤 한다. 여행을 많이 다녔으니 아일랜드를 가보았느냐고, 어디가 좋았냐고 물으면 머리를 긁으며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는 없다. 안 가봤어요···. 가본 적도 없는데 아일랜드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인가를 모를 때 환상과 낭만도 쉽게 커지기 마련이니까. 그런 말로 나의 ‘무심코 마음’을 변호해본다. 아일랜드에 관심이 생겼던 처음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원스>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일랜드(정확히는 북아일랜드)의 맥주 기네스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룰 생각이 크지 않아 상상하면 행복한 소박한 꿈이 있다면, 더블린의 아이리쉬 펍에 들어가 기네스 한 잔을 순식간에 들이키고 쿨하게 뒤돌아 나오는 것이다.

아일랜드가 친숙한 이유는 내가 학창시절에 무슨 새로운 가상세계나 메타버스마냥 살았던 온라인게임 <마비노기>의 배경이 아일랜드 문화와 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에 무자르듯이 모든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은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나는 사실상 나의 고향을 그 게임의 어느 마을이라고 생각한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지역의 ‘켈트 신화’를 배경으로 한 RPG 게임에서 나는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거의 처음 배웠다. 웃고 울고 노래하고 고민을 나누었다. 연고도 없는 켈트 악기를 게임에서 연주하며 민속 음악을 들었다. 대부분의 민속 음악에는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체념과 긍정의 정서가 배어나온다고 나는 느끼는데, 그 정서를 게임을 통해 학습한 내가 젊긴 젊거나 어리긴 어리구나 생각하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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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의 아일랜드는 내게 격투기 선수 코너 맥그리거의 나라, 위스키 제임슨의 나라, 대기근으로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던 나라, 북아일랜드와의 분리로 일상의 종교 분쟁을 겪었던 나라, 영국에 대한 저항 세력 IRA가 활동했던 나라 쯤이 되었다. 이곳에 서평을 쓰기도 했던 소설 <밀크맨>을 너무나 좋게 읽어 다시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기도 했다. 막상 가보기에는 다른 곳에도 관심이 많고 괜한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아 마음속에 남겨두었던 이 나라를 말하고 있는 까닭은, 이번에 베스트셀러의 오른 짧은 소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이 1980년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름도 잘 알려져 있지 않던 클레이 키건이라는 작가가 쓴 1980년 대 아일랜드 중년 아저씨의 어떤 마음과 용기를 다룬 이 소설이 어떻게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인지 궁금했다.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작에 오르고, 아일랜드 출신 배우 킬리언 머피가 영화를 찍는다고 하고, 한국 독자에게 큰 추천 보증인인 신형철과 은유의 추천 때문이라고 해도, 해외 소설이 도서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는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몰라도. 그런 단순한 궁금함으로 이 책을 직접 사 읽기로 했고, 곧 읽어야지 생각하며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사소한 것들’이 이토록 한국인의 마음을 끄는 것인가···.

기대를 너무 했던 탓인가. 나는 지금도 이 책이 이렇게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다. 별로였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지만 이렇게 잘 된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짧은 분량의 소설을 책상에 앉아 순식간에 다 읽은 후에 생각했다. 이 책이 잘 된 이유에는 영화화와 추천의 맥락도 매우 중요하겠으나, 적어도 1980년 대 아일랜드 아저씨의 용기가 오늘날의 한국인의 마음에 무언가 울림을 주긴 한 것 같다고 말이다. 책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힘겹세 살아와 다섯 명의 딸을 키우고 있는 소시민 아일랜드 아저씨가, 수녀원에서 학대당하는 아이를 고민 끝에 구출해 내는 이야기다.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 윤리에 어긋난 여성을 보호하고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다양한 여성/어린이 들을 감금하고 강제 노역시켰다고 한다. 이런 배경 속, 작은 마을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고 때로 삶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도 하는, 모든 게 그래도 어떻게 되어가고는 있는데 무언가 중요한 게 빠진 것 같다고 중얼거릴 것도 같은 아일랜드 아저씨는 그곳에서 마주한 소녀를 데리고 나오며 소설은 끝이 난다. 머리로 궁글린 도덕적 사명도 아니고, 내면의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도덕적 결단도 아니고, 갑자기 터져나온 목소리를 따르는 것처럼, 아저씨는 소녀를 찾아 데리고 나온다. 크리스마스로 분주한 세상에서.

다 읽고 처음에는 솔직히 심드렁했다. 서사에 무게를 부과하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어떤 따뜻한 휴머니즘을 안전하게 담아낸 짧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사람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필요한 걸까 생각하다가, 왜 내가 이 소설 말미에서 심드렁했는지를 다시 되감아 생각했다. 아마도 너무 빠르게 읽어낸 짧은 분량 때문인 것 같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번역된 한국어 문장 뒤로 간결하지만 섬세하게 담아낸 문장의 아름다움이 엿보였다. 누군가 ‘시적’이라고도 표현할 정도로, 짧은 만큼 치열하고 섬세하게 담아낸 모양이었다. 번역문으로 읽다보니 잘 정련된 문장으로 천천히 다가와야 했을 내용을 다 흘려보낸 독서를 하게 된 듯했다. 누군가는 이 소설의 시적인 문장의 힘을 제대로 느꼈으리라.

우리에게는 짧고도 깊은 책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일로 숨돌리기 힘든 일상에서, 좋은 책 한 권 읽어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도 이 책이 더 많이 팔릴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숏폼 등의 재빠른 미디어로 뇌가 지친 사람들이 조금씩 책을 더 찾기도 한다는 트렌드도 하나의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른 이유를 빼고 내용만 보자면, 이 책의 말미에 아일랜드 아저씨가 행동으로 보여준 어떤 용기에 많은 이들이 필요와 감동을 느꼈던 것 또한 중요하지 않나 싶다.

어렵게 가정을 이루어 일상을 적당히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있지만, 말끔하지는 않은 일상. 이게 맞나 싶은데, 뭔가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일단 살면 된다고 말하기만 하는 세상. 그때 마주한 외면할 수 없는 한 소녀를 결국 외면하지 않기로 한 아저씨의 행동에는 재수 없는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겉으로는 평온한듯 하지만 지긋지긋하게 답답한 일상의 무언가를 뚫고 나오는 힘이 있다. 지금까지의 평생을 뒤집는 의지와 용기가 있다. 어쩌면 2020년 대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정녕 그런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별로 연고도 없는 1980년 대의 아일랜드 아저씨의 용기를 읽는 2020년 대의 한국인의 마음은, 그렇게 연결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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