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책 읽는 일기] 언제나 틴틴팅클!, 난 저, 아르테팝, 2023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요새는 영 귀여운 캐릭터들이 다시 유행을 하는가보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 백팩에 매달린 인형을 보면서 종종 생각했다. 몇 년 전에는 카카오 캐릭터가 인기를 끌며 백화점 코너마다 라이언 인형이 보이곤 했는데, 이번에 유행하는 캐릭터들은 뭔가 종류가 조금씩 다 달라 보였고 결국 대충 둥글고 귀엽게 생겼다는 점에서는 그게 그걸로 보였다. 도무지 구별이 안 된다는 나의 말을 듣고, 한참 귀여운 캐릭터에 빠져 있던 직장 동료는 진지한 얼굴로 캐릭터들 간의 차이를 설명해주었다. 아무리 들어도 다 똑같아 보인다고, 둥그런 원을 그려놓고 동물 귀를 달고 눈에 점 두 개 찍으면 같은 거 아니냐는 나의 말에 동료는 관심 좀 가지라며 성화였다. 어린 시절, 아이돌 멤버들을 전혀 구별하지 못했던 삼촌의 마음을 조금 더 알 것 같았다.

 

ⓒ위클리서울/ 픽사베이

유행하는캐릭터 중 하나는 ‘틴틴팅클’이라는 이름도 귀여운 만화의 캐릭터들이었다. 동그랗게 그려진 작은 고양이들이 작고 귀엽게 웃는 캐릭터들이었다. 동료의 특훈 덕분에 캐릭터구별하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되어서, 동료의 가방에 매달린 인형을 보고 이거 틴틴팅클 캐릭터네, 라고 하며 알은체는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냥저냥 귀여운 캐릭터들의 귀여운 이야기를 그린 만화에 별 내용이 있으리라고 그때까지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아기자기할 법한 만화의 스토리가 궁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귀여움을 더 즐기려는 요량으로 부러 늘려 놓은 이야기들이겠거니 여기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내게 동료는 틴틴팅클 만화는 뭔가 다르다고, 서사가 있고 사연이 있고 감동이 있다며 꼭 읽어보라고 했다. 애호가의 호들갑이겠거니 하며 다른 책 읽을 거 많다고 대꾸하기를 며칠, 동료는 결국 자기 집에서 가져온 만화책을 점심시간에 내 책상에 올려 놓았다. 이 정도 정성이라면 아무래도 조금 보기는 해야지 하고 한 페이지를 펼치기 직전까지 나는 내가 이 책을 여러 곳에 추천하고 다닐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귀여운 캐릭터들의 마냥 귀여운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이름도 무슨 스파클링, 팝시클, 이런 가벼운 단어들만 떠오르게 하는 틴틴팅클이라는 만화는… 정말이지 좋았다. 어떤 경험을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 문학이 가지는 강한 힘 중 하나라면 이 만화의 힘은… 그야말로 문학적이었다.

 

언제나 틴틴팅클! 표지 ⓒ위클리서울/ 아르테팝
'언제나 틴틴팅클!' 표지 ⓒ위클리서울/ 아르테팝

인스타그램에 연재되는 중 계속 단행본으로도 출판되고 있는 ‘틴틴팅클’은 기본적으로 고양이들의 이야기다. 틴틴과 팅클이라는 고양이가 주인공이라, 제목이 틴틴팅클이다. 그밖에도 수많은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각각의 에피소드에 담겨 있다. 그러나 우선 이 만화가 좋았던 이유는 단지 고양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만화는, 90년대 생의 유년기를 단지 고양이 캐릭터로 표현했을 뿐이었다. 대충 귀여운 고양이들이 등장하도록 아무 스토리를 짜깁기 해놓았을 거라는 나의 무식한 편견은 빗나갔다. 90년대 생이 유년의 겪은 슬픔과 기쁨을 귀엽고도 리얼하게 담겨 있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교실에서 보낸 친구들과의 다툼과 화해, 언니와 같이 닌텐도를 하고 싶은 어린 동생과 부담감을 안고 동생을 케어하는 언니의 모습, 컴퓨터를 누가 더 오래 할 거냐로 다투는 자매, 친구들은 모르는 각각의 가정환경에서 살아가는 천진하고도 슬픈 아이들의 표정, 친구들이 같이 어울려주지 않아 수학여행 가는 버스에서 선생님 옆자리에 앉아야 하는 아이의 마음, 폭력적인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따뜻했던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하는 것, 앞으로 가지각색의 성격으로 자라날 자기 자신의 ‘캐릭터’가 분분한 교실, 친구에게 위로받고 친구에게 배워가는, 그 시절이든 아니든 성인이 된 우리들 모두가 겪었을 각자의 유년 시절.

처음 회사 점심시간에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만화를 연달아 읽었다. 어서 퇴근하고 집에 가서 제대로 읽어야지, 오랜만에 아끼는 과자를 까먹을 기대감에 신난 아이처럼 집에 가서 만화를 전부 읽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만화를 읽고 울었다. 그래서 어쩌란 거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책을 보고 운 것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은 이후로 적어도 8년 만이었다…. 멈출 수 없이 페이지를 넘기며 다 읽고 나서야, 도대체 이 만화가 지금 내게 왜 이렇게 좋았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화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잊고 있는 줄도 몰랐던 생생한 나의 유년기를 다시 한번 체험했다. 만화 속 이야기를 내가 그대로 똑같이 겪은 게 아님에도, 만화가 그려내고 있는 유년의 분위기에 나는 완전히 감화되어서 내가 겪은 유년기의 사소한 기억들을 생생하게 다시 떠올렸다. 내가 겪은 초등학교 교실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그때 친구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소한 이야기들 하나하나를 떠올렸다. 검도관에서 친구와 다투고 이후로 영영 그 친구를 다시 보지 못하게 되었던 일들이나, 육교 정가운데에서 악수를 하고 친구와 헤어졌던 일들이나, 컴퓨터 게임을 독차지하려고 사촌들과 다투고 울고 웃었던 일들은, 내가 까마득하게 잊은 줄 알았지만 사실은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은 나의 유년기 한가운데에 있었다. 서른 즈음에 다시 꺼내본 내 유년기는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의 유년기 추억들을 속속들이 느끼는 동안, 유년의 영향력도 새삼 실감했다. 몇몇 친구들이 이 나이까지 어린 시절의 상처와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을 솔직히 나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위로하기도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나저나 이미 다 지난 일이지 않나 하는 남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읽은, 내가 겪지 않은 캐릭터들의 아픈 가정사와 그 틈바구니에서 애쓰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치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같이 겪는 기분이었다. 아이니까, 어린 아이니까 그 모든 일들을 힘없이 지켜보고 견딜 수밖에 없었겠구나, 나의 친구들은. 이미 다 지난 일이니까 아파하고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억은 지금의 우리들을 만들어냈으며, 우리 마음 속에 유년기는 한가운데에 있다.

만화의 이야기들이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으로 표현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좋았겠지만, 어쩌면 지금만큼 좋지는 않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들은 오히려 섬세한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섬세해지지 않도록, 지나치게 섬세해져서 부스러지지 않도록 돕고 있다고 느껴졌다. 둥그런 고양이 캐릭터로 표현된 수많은 유년의 이야기들은 그렇기에 특정한 개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만화가 고양이 이야기가 아니라 좋았으며 결국 고양이로 표현되어서 좋았다. 앞으로도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이 만화를 추천할 것 같다. 점심시간에 책을 내밀었던 동료처럼, 조용히 이 책을 사람들 앞에 내밀 것이다. 그리곤 책을 다 읽은 그 사람에게 다가가 물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잊고 있던 유년이 있나요?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