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박석무] 꽃 피고 새 우는 봄, 4월이 또 돌아왔습니다. 양력으로는 4월 7일이지만, 음력으로는 2월 22일, 그날은 선생이 15세의 나이로 결혼식을 올린 날이자, 75세로 세상을 떠난 날이며, 결혼 60주년의 회혼례를 맞은 날이었습니다. 그러니 금년의 4월 7일은 선생 서세 18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삼가 추모의 정을 이기지 못하며 명복을 빌어 마지않습니다. 우리 다산연구소는 창립하던 그해부터 해마다 기일을 맞으면 많은 후학들이 모여 선생의 묘소에서 묘제를 올리고 추모하며 학덕을 기리는 행사를 진행해 왔습니다.지난
[위클리서울=박석무] 다산 정약용이 가장 숭배하고 존경하던 학자는 성호 이익이었습니다. 성호의 학문과 실학사상을 이어받아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가 다산이었습니다.다산의 일생을 가장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긴 책은 『사암선생연보』인데, 나이 16세 때에 “성호 이익 선생의 유고를 처음으로 보았다. 이때 일세의 후학들이 이 선생의 학문을 조술(?述)하지 않는 자가 없었는데, 다산공도 이를 준칙으로 삼았다. 항상 자식이나 조카들에게 말하기를 ‘꿈속 같은 내 생각이 성호를 따라 사숙(私淑)하는 가운데 깨달은 것이 많다’고 하였다”라는 기록에서
[위클리서울=박석무] 이태원 참사에 대한 특검법이 거부당해 다시 국회로 되돌아간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나는 오늘 또 『목민심서』를 꺼내 읽어봅니다. 200년 전에 재난을 당한 억울한 사람들에게 국가는 어떤 일을 해야 하고 그 사건의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아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목민심서』 「애민(愛民)」 편에는 사회적 약자로 여섯 종류의 사람들을 열거하고 그 여섯 부류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국가나 사회, 담당 공무원들이 어떻게 하는 일이 옳은 것인가를 제대로 밝혔습니다. 「애민」 편이야말로 200년 전에 다산이 복지사회와 복
[위클리서울=박석무] 형 손암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귀양살이 하고 아우 다산은 강진에서 귀양 살았습니다. 동복의 두 형제는 네 살 터울, 형제지기로서 깊고 넓은 우애의 정으로 고달픈 유배살이를 해냈습니다. 기막히는 액운을 맞아 비통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두 사람의 높은 학문적 수준 때문에 서로를 격려하면서 고달픔을 견디어 다산은 끝내 학문적 대업을 이룩해냈습니다. 학자가 저술하여 단 한사람의 제대로 읽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다행한 일이라고 여겼던 다산, 대학자 친형이 자신의 책을 읽고 극찬에 가까운 평가를 내렸으니 그 얼마나
[위클리서울=박석무] 한 인간이 젊은 시절의 꿈과 희망을 놓아버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온 정성을 바쳐 그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굳은 의지와 큰 용기를 지닌 사람이 아니고는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사암선생연보』라는 다산의 인생을 연대별로 소상하게 기록한 다산의 연보를 읽어보면 다산이야말로 학문연구로 진리를 탐구해내겠다는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을 전혀 놓지 않고 운명하던 그날까지 온갖 노력과 정성을 바쳐 진리탐구에 생을 걸었던 사실을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내 나이 스무 살 때는 우주의
[위클리서울=박석무] 오늘 또 『논어』를 읽습니다. 다산의 『논어고금주』도 함께 읽어봅니다. 공자의 『논어』를 주자는 『논어집주(論語集註)』 20권 10책으로 새롭게 주해(註解)하여 이른바 신유학(新儒學)의 기본틀을 구성하였습니다. 다산은 주자의 『논어집주』 문제점을 지적하여 175칙의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고 많은 부분에서는 주자 학설에 보충의견을 제시하여 40권의 방대한 『논어고급주』를 저술합니다. 강진에서 귀양살던 1813년 겨울이니 52세 때의 일입니다. 다산 경학이 주자학을 딛고 이룩하던 핵심적인 작업의 하나가 바로 그 책의
[위클리서울=박석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이러다가는 나라가 위태롭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고 통치자의 독단만 있지 협치나 토론의 정치는 사라져 갑니다. 통치자의 불통정치에 비판하고 경계하는 언로(言路)라도 열려있어야 하는데 불통은 강화되고 언로까지 막혀 어둠의 그림자만 짙어가고 있습니다. 정책적 대결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으로 상대방을 이겨내는 경쟁의 정치는 사라지고, 진영이 다른 반대당을 적으로 여겨 죽여야만 자신의 당이 살아난다는 가장 나쁜 사고로 정치를 하고 있으니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이 오늘의
[위클리서울=박석무] 세상이 참으로 시끄럽고 위태롭습니다.묻지마 살인범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부자·형제·부부 등 천륜의 인간관계에서도 무서운 범죄가 속출하고 있으니 세상일에야 크게 마음을 기울이지 말자고 하면서도,저절로 걱정되고 근심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나는 이런 대목에서 피할 수 없이 다산의 지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조선시대,천륜에 죄를 짓는 범죄자들이 그때라고 없지 않았지만,그래도 지금처럼은 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런 시대에 다산은 아들에게 내려주는 교훈을 통해서 인간이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두 가지를 특별하게
[위클리서울=박석무] 세상이 어찌하여 이렇게 가고 있을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세상이 오늘입니다. 공자의 유학사상을 확대하여 발전시킨 사람은 맹자였습니다. 『맹자(孟子)』라는 책을 통해 공자의 사상과 철학을 이어받아 동양의 원본 유학사상을 창안한 아성(亞聖)이 바로 맹자였습니다. 공자가 성인(聖人)인 이상, 맹자는 성인에 버금가는 성인이라고 해서 아성이라고 호칭하니, 성인과 같은 분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 경전을 읽어보면 맹자처럼 부끄러움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던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동양철학 핵
[위클리서울=박석무] 세상이 참으로 위험한 분위기로 돌아갑니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면서 강하게 몰아세우는 북한에 대한 압박, 한미동맹만이 모든 외교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친미 일변도의 외교정책, 모든 과거사를 묻지 않고 일본 쪽의 주장에 동조하여 일본의 입장만 옹호해주는 대일외교, 이런 모든 것에는 반대로 위험요소만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 감고 있는 것에 위험한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최고 결정권자 한 사람의 뜻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면서 함께 일하는 고위공직자들의 역할은 전혀 보이지 않아 더욱 걱정을 놓을 수가 없습
[위클리서울=박석무] 다산의 유배살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으며, 얼마나 힘들고 고달펐을까요. 유학 경전 중에서도 세상에 어렵다는 『주역』에 대한 연구에 다산이 기울인 정성과 열정, 힘든 노력에 관한 이야기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위대한 진리탐구의 본보기 같아 한 번쯤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배 생활도 견디기 힘들 때 고독과 외로움을 이기고 『주역』 연구에 ‘전심치지(專心致志)’하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듯 상세하게 설명한 내용이 연보(年譜) 47세 조항에 기록되어 있습니다.1808년 무진(戊辰)은 다산의 나이 47세로 그
[위클리서울=박석무] 오는 4월 7일은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지 187주년의 기일(忌日)입니다. 세상은 썩어문드러졌다〔腐爛〕면서, 그대로 두고 있다가는 반드시 나라는 망하고 말 것이라는 탄식을 멈추지 못하고 살으셨던 74년의 평생을 그날 마감하셨습니다. 요즘도 나라는 위태롭기 그지없는 시절입니다. 검찰독재가 기승을 부리고, 북핵 위기는 고조되고, 친일파들의 득세로 일본의 과거 악행은 모두 묻히고 독도까지 자기네 땅이라 우겨대는 이런 엄중한 시기, 이런 상황에서 선생의 기일을 맞고 보니 더욱 선생에 대한 그리움과 사모의 정을 이길 길
[위클리서울=박석무] 『논어』에는 “효와 제라는 것은 인(仁)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 「學而」)”라고 말하여 공자의 중심 사상인 인(仁)이 행위로 나타남이 효제(孝弟)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산도 같은 뜻으로 “효와 제는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孝弟爲行仁之本 : 「示二兒家誡」)”라고 아들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효도란 부모님을 사랑하며 제대로 봉양해드림을 뜻하고 제란 형제간에 우애하는 일을 말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공자나 다산의 말씀은 참으로 답답한 옛날 이야기일 뿐, 현대의 삶과는 무관한 일처럼 느낄 수도
[위클리서울=박석무] 유교의 창시자는 공자였습니다. 공자는 세상 사람 모두가 칭송하는 성인(聖人)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생이지지(生而知之)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때문에 공자같은 성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나는 생이지지한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노력하여 학문과 인격을 구해낸 사람이다.(好古敏而求之者也)”라고 말하여 보통사람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인격을 도야해서 그런 수준에 오른 사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누구라도 공부하고 노력하면 자기와
[위클리서울=박석무] 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겹고 위태롭고 불안하던 임인년이 지나갔습니다. 계묘년 새해에는 즐겁고 기쁘고 편안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어떻게 해야 그런 해가 될 것인가를 다산의 지혜에서 배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대학(大學)』이라는 경전에 대한 연구서인 다산의 『대학공의(大學公議)』라는 책을 새롭게 읽으면서 나라는 어떻게 다스리고 통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유학이란 요순시대의 성인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
[위클리서울=박석무] 유배지 18년 동안 다산은 지인과 가족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누누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특히 아들과 제자들에게 유독 간절한 편지를 많이 보냈는데,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거듭거듭 반복해서 말해줍니다. 공부하는 일, 먹고 살아가는 일,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일, 어떤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떤 저술을 남겨야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터득한 삶의 지혜를 남김없이 전해주면서 반드시 실천에 옮기도록 주문했습니다.편지마다 가르쳐 준 지혜가 많기도 하지만 가장 많이
[위클리서울=박석무] 다산의 『목민심서』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고전입니다. 방대한 48권(원문)의 저서로 12편에 편마다 6개 항목을 배치하여 체계적이고 논리정연한 72항목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당시의 목민관인 지방의 수령들은 그 권한이 막대하여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작은 나라의 제후와 같은 권한을 지녔다고 다산이 말했습니다. 그런 권한을 바르고 옳게만 사용한다면 훌륭한 치적을 남겨 백성들이 살만한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지만, 그 막중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백성들은 질고에 빠지고
[위클리서울=박석무] 인류의 이상사회라던 요순시대는 특별한 정책을 펴서 이룩된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그처럼 높고 권위가 대단하던 황제가 엄하고 강한 위풍을 짓지 않고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천한 농부들에게도 의견을 묻고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는 일에서 요순정치는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시경』에는 ‘순우추요(詢于芻?)’라는 구절이 나오고, 『논어』에는 그 구절을 인용하여 요순이 요순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노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꼴 베고 나무 베는 백성들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서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정치를 한다면 요순시대가
[위클리서울=박석무] “다산연구소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경세가(經世家)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개혁정신과 인간사랑의 정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철학을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승화시켜 보다 밝고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데 이바지하고자 한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한 인사말을 앞세우고 2004년 6월 연구소가 출범하였습니다. 무려 19년의 세월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4번의 정권이 바뀌고 다섯 번째의 정권이 들어섰으며, 참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시대에서 3만 5천 달러에 이르는 경제강국의 나라로 우뚝 섰으
[위클리서울=박석무] 다산은 귀양살이 18년, 긴긴 유배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편지를 두 아들에게 보냈습니다. 귀양가던 1801년 말부터 해배되어 돌아온 1818년 가을까지 아들들에게 아버지가 먼저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경우, 기(寄)를 사용해 누구에게 부친다라고 쓰기도 하고, 어떤 경우 시(示)라고 써서 보여준다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아들들의 편지에 답장으로 보내는 경우는 ‘답(答) 아무개’라고 표현하여 답장의 편지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편지의 성격이지만 어떤 경우는 가계(家誡)라고 하여, 누구 누구에게 주는 가훈(家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