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나의 선택 속에 만들어진 ‘운명’
수많은 나의 선택 속에 만들어진 ‘운명’
  • 김준아 기자
  • 승인 2019.07.02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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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나 – 세계여행] 너를 만나기 위해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세 번째 이야기.

 

무계획에 언제 떠나도 상관이 없기에 비 오는 날은 쉬고 다음 날 나가면 된다. ‘이래서 사람들이 세계여행을 하는구나.’
무계획에 언제 떠나도 상관이 없기에 비 오는 날은 쉬고 다음 날 나가면 된다. ‘이래서 사람들이 세계여행을 하는구나.’

완벽하고 순조로울 줄 알았던 나의 첫 세계여행. 3일 만에 비자가 없어서 비행기를 놓친 것을 시작으로 아주 엉망이 되었다. 얼마나 엉망인지 비행기를 못 타고 당황해서 잠시 눈물을 훔쳤을 때 이후로는 그저 매일 길 위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홍콩에서 비행기를 놓친 후 걱정하실 부모님께 전화해서 소식을 전했다.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다음 여행지 비행기 표 끊으면 말해줘.” 정말 쿨한(?) 부모님이 되기로 하셨나 보다. 통화를 하고나니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래, 이런 멍청한 실수를 초반에 해서 얼마나 다행이야.’ 스스로 위로하면서도 비행기를 타지 못한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뒤늦게 알아본 결과, 한국에서 호주를 가는 비행기 표는 항공사나 여행사의 자동 비자시스템이 연계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반드시 본인이 확인을 해야 한다. 나의 이전 호주 여행은 운이 좋게도 자동으로 비자가 나왔던 것이다. 비자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3일 만에 국제 미아가 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세계여행을 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배낭 여행자들의 성지라는 방콕 카오산로드. 저렴한 물가, 맛있는 음식, 전세계 사람들, 거기에 예쁜 노을까지. 여행지로서 최고의 조건을 모두 갖춘 곳.
배낭 여행자들의 성지라는 방콕 카오산로드. 저렴한 물가, 맛있는 음식, 전세계 사람들, 거기에 예쁜 노을까지. 여행지로서 최고의 조건을 모두 갖춘 곳.

한국이든, 다른 여행지든 일단 어디로는 갈 비행기 표가 필요했다. 항공권 사이트에 들어가 홍콩에서 ‘어디로 떠날지 모르시겠습니까?’라는 설정을 하고 최저가 순으로 검색했다. 맙소사. 정말 하늘의 계시인 것인가. 가장 저렴한 곳은 인천이었다. 그래도 이럴 때가 아니다. 다시 정신 차리자. 검색 끝에 홍콩에서 가깝고, 비행기 값이 저렴하며, 비행 출발 시간이 빠르고, 무엇보다 중요한 비자가 필요 없는 곳을 찾았다. 태국 방콕이다. 그곳으로 향했다.

이렇게 나의 무계획 여행이 시작되었다. 새벽 6시에 방콕에 도착한 나는 계획은커녕 숙소도 없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인터넷으로 숙소를 잡았고, ‘오늘 뭐 하지?’ 고민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공항 ATM기에서 방콕 바트를 인출해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일단 생필품 쇼핑을 했다. 호주에 가면 동생 물건을 사용하려고 대부분 홍콩에서 사용할 정도의 샘플만 챙겼기 때문이다. 동남아에 처음 가본 나는 저렴한 물가에 놀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동남아 여행을 하는구나. 이래서 태국 방콕 카오산로드가 배낭 여행자들의 성지구나.

 

여행을 하다가 태극기를 보면 괜히 반갑다.
여행을 하다가 태극기를 보면 괜히 반갑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쉬게 됐다. 하지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2년 전, 2박 3일 홍콩 여행에서는 비가 내려서 아무것도 못 하는 게 속상했다. 지금은 무계획에 언제 떠나도 상관이 없기에 비 오는 날은 쉬고 다음 날 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세계여행을 하는구나 싶다.

다음 날. 어김없이 ‘오늘 뭐 하지? 고민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방콕 왕궁을 구경하기로 했다. 왕궁을 구경하던 중 앞으로 깊게 인연이 될 친구를 만나게 됐다. 세계 여행 중에 만난 첫 번째 친구 디이지(Deasy, 인도네시아, 28). 혼자 여행 중인 나에게 혼자 여행 중인 그녀가 사진을 부탁했고, 반대로 내 사진도 찍어 주었다. 그녀가 제안했다. “서로 사진 찍어주면서 같이 다니지 않을래?” 그 후로도 꾸준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녀는 나를 ’언니‘라 부른다. 호주행 비행기를 놓친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한국 대하드라마를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친구 디이지가 찍어 준 사진
한국 대하드라마를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친구 디이지가 찍어 준 사진

그녀와 인연이 된 첫 만남의 이야기를 다시 나누었다.

“디이지, 그때 왜 나한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어?”“딱 봐도 한국 사람이잖아!”“한국 사람이라서? 그래서 친해지고 싶었다고? 평소에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거야?”“당연하지! 내년에 꼭 한국 여행 갈 거야. 한국에서 정말 다양한 곳들을 가보고 싶은데, 특히 경복궁.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싶어. 그리고 한국 드라마에서 본 음식들을 정말 먹어보고 싶어. 그게 내 꿈이야.”“한식은 사랑이지. 한국인들도 드라마 보면서 그날의 야식 메뉴가 정해져. 가장 먹어보고 싶은 게 있어?”“삼겹살, 짜장면, 짬뽕, 칼국수, 보쌈, 곱창, 그리고 길거리 음식도 다 먹어보고 싶은데 특히 어묵 꼬치랑 닭꼬치, 마지막으로 집 밥! 드라마 보면 가족이 둘러앉아서 밥 먹을 때 반찬이 엄청 많잖아! 진짜 꼭 먹어보고 싶어.”“이게 다 드라마를 보고 먹고 싶어 진 음식이라고? 도대체 한국 드라마가 너에게 어떤 영향을 준 거니?”“응, 정말 대단하지. 한국 드라마 스토리는 진짜 최고야! 한국 드라마 때문에 한국이 유명해지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 싶게 만든다고 생각해. 나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문화를 배웠고, 한국 음식이 먹어보고 싶어 졌고, 한국에 꼭 가보고 싶어 졌거든. 지금 난 가보지도 않은 한국을 정말 사랑하고 있고,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어. 물론 지금은 몇 개의 단어 정도만 말할 수 있어.”“네가 이렇게 한국을 사랑하게 만든 너의 인생 드라마는 뭔데?”“선덕여왕! 내가 대하드라마를 좋아해.”“선덕여왕? 아니, 도대체 몇 살 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본 거야?”“내가 언니보다 한국 드라마 더 많이 봤을지도 몰라.”“진짜 그럴 거 같아. 드라마에서 배운 한국말 있어?”“안녕하세요. 좋아합니다. 언니,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애교…?”“나도 널 만나서 정말 반가워. 우리 각자 여행 중에 만났잖아. 너에게 여행이란?”“여행은 꿈같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들을 겪게 되지. 물론 그냥 그곳을 방문만 했다고 꿈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 그들의 문화와 언어, 전통 음식을 배우려 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려고 노력해야 여행으로부터 진짜 꿈같은 시간을 갖게 될 거야.”“마치 우리가 방콕에서 서로를 만나 꿈같은 추억을 만든 것처럼 말이네? 나를 만난 태국은 어땠어?”“태국은 인도네시아의 오랜 친구라서 친구 집에 놀러 간 거 같았어. 태국 사람과 인도네시아 사람은 생김새도 비슷하잖아? 그리고 음식도 비슷해서 여행하기 좋아.”“앞으로 가보고 싶은 나라 있어?”“유럽! 나는 정말 유럽에 가보고 싶어. 유럽의 아름다운 건축 양식과 문화를 사랑해.”“한국을 사랑한다며?”“한국은 곧 갈 거잖아. 이건 가보고 싶은 나라라고!”“꼭 한국에 와서 우리 집에서 집 밥 먹고 같이 드라마 보자.”“좋아. 주나 언니 사랑해.”

 

사진 찍는데 디이지가 먼저 손하트를 만들었다. 너를 만나기 위해 호주행 비행기를 놓치고 방콕에 왔구나.
사진 찍는데 디이지가 먼저 손하트를 만들었다. 너를 만나기 위해 호주행 비행기를 놓치고 방콕에 왔구나.

이렇게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인인 걸 알아보고 나에게 사진을 부탁한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방콕에 왔구나. 그 이유 하나면 충분했다. 국제 미아에게 국제 친구가 되어준 고마운 디이지. 그녀 덕분에 여행지에서 친구 사귀는 법을 알게 되었다. 함께 해줘서 고맙다며 그녀가 사준 수박주스 덕분에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200밧(한화 약 2,000원)짜리 수박주스가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너는 알고 있을까?

그 후로 우리는 더 깊은 인연이 됐다. 그날의 짧은 만남이 아쉬워서 두 달 후 오로지 디이지를 만나기 위해 인도네시아 발리로 떠났다. 하지만 디이지 집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였다. 놀랍게도 디이지는 나를 만나기 위해 휴가를 내서 비행기를 타고 발리로 왔다.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다.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분명히 디이지가 발리 사진을 보여주면서 인도네시아에 놀러 오라고 했었다. 중요한 건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는 것이고, 디이지의 한국 여행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세 번째 만남을 갖게 될 거란 것이다.

누군가는 나와 디이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운명은 수많은 나의 선택 속에 만들어진 것이다. 호주 비자를 알아보지 않은 것, 홍콩에서 방콕으로 여행지를 선택한 것, 방콕에서 그날 그 시간에 왕궁을 방문한 것, 그 위치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두리번거린 것까지. 운명은 결국 내가 선택했던 일들의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세계 여행을 선택한 나의 운명이 기대가 된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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