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엔 이미 장벽을 넘은 영화가 있다
영화제엔 이미 장벽을 넘은 영화가 있다
  • 김혜영 기자
  • 승인 2020.09.09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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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탐방기] 부산국제영화제 4편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며 영화계 전반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작은 독립 극장을 살리는 운동부터 온라인 영화제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를 도우며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움직임도 보인다. 필자 또한 작년에 다녀온 영화제 탐방기를 집중적으로 연재하며 영화와 영화제에 관한 관심을 이어나가려 한다. 지난 1편과 2편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했고, 3편과 이번 4편에서는 영화제에서 볼 수 있었던 영화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부산국제영화제 탐방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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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관광지도 맛집도 가지 않는 여행, 영화제 탐방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열흘간 이루어졌다. 매년 10월 첫 주 즈음에 열려 학생들에게는 중간고사 기간과 겹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휴학을 하거나 학점을 신경 쓰지 않는 여유로운 자만이 방문할 수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부산에서 멀리 거주하는 학생들에게는 꿈의 영화제로 불리곤 한다. 필자 역시 영화 동아리 부원들과 2박 3일의 짧은 기간 동안 적은 인원으로 다녀왔다. 서울과 부산의 거리를 생각하면 아쉬운 일정이지만 우리는 빠듯함 없이 여유로울 수 있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보통의 여행과 달리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 일 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꼭 가봐야 하는 관광지나 맛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 그 어느 여행보다 마음이 가벼웠다. 게다가 우리는 각자 취향에 맞는 영화를 보느라 뿔뿔이 흩어져 다녔고, 저녁이 되면 바다 앞의 숙소로 모여 밥을 먹고 좋았던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꿈만 같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제를 뒤로 한 채 서울로 올라가는 마지막 날이었다. 전날 음주를 곁들인 거나한 파티를 한 터라 모두가 늦잠을 잘 줄 알았는데, 이른 아침부터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간다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마침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싶어 아쉬웠던 차, 분위기에 휩쓸려 예매 버튼부터 눌렀다.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친구들의 안목을 믿은 것이다. 보통 영화제 기간에는 티켓팅이 무척 치열해지는데. 다음날 오전이 되면 이른 시간에 영화를 보러 갈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이 당일에 취소한 표가 조금씩 풀린다. 그래서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갔지만 취소표를 예매한 바람에 자리는 제각각이 되어버렸다. 따로 떨어져 앉아 영화를 감상하지만 같이 이동하고 밥을 먹으며 내내 영화 이야기를 하는 우리들. 혼자서도, 함께도 행복한 우리들의 모습이 움직이는 영화를 가만히 지켜보는 관객의 애정과도 닮아보였다.

 

영화 마리암
영화 '마리암' 스틸컷
영화 '마리암' 스틸컷
영화 '마리암' 스틸컷

 

영화 '마리암' 스틸컷
영화 '마리암' 스틸컷

카자흐스탄 영화 ‘마리암’

그 날 그렇게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마리암’(2019)이었다. 카자흐스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아냈는데, 마을의 풍경부터 언어까지 죄다 생소한 것이 많은 영화였다. 줄거리는커녕 제목도 알지 못한 채 영화를 보니 오히려 편견 없이 모든 것을 새로 받아들이며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마리암은 카자흐스탄의 외진 마을에서 살아가다 남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을 겪게 된다. 매서운 눈보라 속에 남편이 살아있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고, 어린 네 아이와 함께 혹독한 추위의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정부수당은 실종 신고 후 3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 상황. 결국 동창의 도움을 받아 남편을 사망신고하게 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갑자기 남편이 돌아오게 된다. 마리암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정적인 연출과 온통 새하얗기만 한 배경으로 인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천착한 인물의 처지가 더욱 기구하게 보였다.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는 누군가의 인생을 온전히 담아낸 영화에 먹먹한 감탄만 연달아 튀어나왔다. 그런데 상영이 끝난 뒤 이루어진 GV(관객과의 대화)에서 마리암을 연기한 인물이 실제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연기한 비전문배우이며, 아이들까지 실제 자녀임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에 출연한 남편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급하게 연기를 한 스태프였다. 현실에서는 남편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고, 수당금 또한 받지 못했다는 사실까지 전해 들으며 다큐멘터리보다 더욱 생생한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의 삶을 매개로 영화를 만들 때는 관객이 연출을 눈치 챌 수 없도록 사실적인 방향으로만 접근할 법 한데, 각색을 바탕으로 철저히 극영화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사실성을 잃지 않았다.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 진실성이 담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방법인 연출에서 단순한 선택보다는 보다 깊은 고민이 선행되어야 함을 배울 수 있었다.

 

영화 기생충
영화 기생충

자막의 장벽, 언어의 장벽을 넘어

연출부터 내용까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한 영화였지만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영화의 정보조차 제대로 뜨지 않았다. 오타로 인식되어 ‘마리안’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검색 결과를 대신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나 역시 영화제가 아니었다면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을 테고 구태여 찾아볼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국가인 카자흐스탄의 영화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최근 영화 ‘기생충’(2019)의 연이은 수상으로 비영어권 국가의 영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막을 보는 것을 꺼리는 영어권 관객들에게 자막의 벽을 넘어보라는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가 뜨거운 환호를 받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며 고개만 끄덕이던 우리도 비영어권 국가의 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외국어 영화와 영화제의 장벽은 다수의 관객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세상에는 훌륭한 영화가 너무나 많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제가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요즘,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다양한 영화에 도전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물론 올해 10월에 개최될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한다. 필자는 작년 영화제의 기억을 발판 삼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에서 청년기획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부산에서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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