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예부터 우리 민족의 술 문화는 어른 앞에서 술을 배워 과음하지 않고 예절로 시작해 예절로 끝내는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는 고유의 전통주 양조비법과 문화를 잃어버렸다. 그 속에는 세시 풍류와 계절, 어른 공경의 문화가 스며 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명주(名酒)가 없다. 일본제국 시대 때 일본의 양조법이 그대로 주입되면서 수백 년간 우리 민족을 결속시켜 준 전통 가양주(家釀酒)가 사라졌다.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가양주 역사와 문화는 오래됐다. 고려 이후, 조선 시대에는 조상숭배와 추수 감사제, 명절과 같은 세시풍속을 중요시한 유교사상에 기인한다. 고려 때는 사찰을 중심으로 한 술빚기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민가에서도 술을 빚어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지방별로 가문마다 술 빚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다양한 명주들이 등장, 맛과 향기를 다투었다. 사대부와 부유층, 세도가 가문에서 ‘명가명주(名家銘酒)’란 말이 나온 것도 이때다.

“사대부 등 세도가들은 귀빈 출입이 빈번했고, 술 접대가 예(禮)와 도리(道理)로 인식되던 사회였기 때문에 저마다 미주(美酒)를 빚어 접빈과 제사(祭祀), 차례(茶禮) 등 가용(家用)에 이용해 왔다.”고 전하는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은 가양주 복원에 오롯이 외길을 걸어온 전통주 전문가다.

“전통주는 쌀과 누룩만 알면 양조법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정부가 주류관리를 손쉽게 하려 아예 배합 비율을 법으로 정해 놓으면서 지방마다 집집마다 고유한 양조법은 맥이 끊겼다. 그 결과 민족 전래의 전통명주 대신 외국의 프리미엄 위스키와 고급 와인, 양주가 들어오면서 우리의 맛을 잃었다.”고 성토하는 박록담 소장을 종로구 자하문로 소재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만났다.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최고의 전통주 ‘노하우’를 가진 우리 민족이 싸구려 저가 술에 찌든 채, 고유의 술 문화마저 잃어버린 '싸구려 민족‘이 된 것은 아닐까. 민족적 자존심의 문제다. 박록담 소장으로부터 가양주 역사와 양조비법, 지역별 명가명주, 양반가와 민간 술 제조역사, 세계화 시대 전통주 경쟁력, 반주문화와 풍류 운동 등을 들어 본다.

 

- 한국전통주연구소는 언제 설립했고, 만든 배경이 궁금하다.

▲ 술 전문 교육기관인 한국전통주연구소는 22년 전인 1999년 10월에 설립했다. 수천 년 역사를 갖고 있지만, 점점 잃고 있는 우리 전통주를 복원하고 대중화를 위해 1987년부터 전국의 가양주 발굴 활동과 보존, 기록을 해왔다.

지금은 사라지고 맥이 끊긴 조선시대 가양주(家釀酒)를 재현하는 등 최고의 양주 기술을 축적했다. 전통주를 빚을 때 순수한 우리 쌀과 누룩, 물, 꽃과 약재 등 자연 원료만 사용하며, 지극한 정성과 오랜 시간 동안 발효를 시킨다.

한국전통주연구소는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술향기와 차원이 다른 올곧은 맛을 전수해 온 전통주 교육의 종가임을 자부한다. 곧 한국 전통주 연구의 산실이자 전통주 대중화 운동의 중심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우리 술의 뿌리라 할 ‘가양주(家釀酒)’ 문화를 소개해 달라.

▲ 먼저 문화적으로 농경 세시와 세시풍속, 조상숭배, 통과의례, 접빈 문화가 발달했는데, 이는 지역이나 가문마다 다양한 원료와 비율, 전용 누룩을 이용한 가문 고유의 양주법 발달에 따른 것이다. 가양주는 지역별 주식인 쌀로 빚는다.

원료는 경제적 수준 따라 주원료(쌀) 종류가 달랐고, 기후와 환경, 토양에 따라 물맛도 달랐다. 누룩 제조도 가문마다 원료와 가공, 제조법, 크기, 두께, 띄우는 시기가 다른 자가 누룩을 사용했다. 가문비법으로 주원료(쌀)의 가공 정도, 비율, 양주 횟수 등 계절마다 다른 방법으로 빚었다.

술을 빚는 사람인 주인(酒人)에 따라 기술과 숙련도에 의한 맛과 향이 달랐다. 부재료로 꽃과 약재 등 계절에 따른 부재료의 차용과 가공 등 고유의 다양한 절기주로 풍류를 즐겼다. 가양주 문화의 핵심은 다양성과 개성에 따른 양조와 음주문화로 대변된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내외주가에서 열린 _물에 가둔 불_ 전통주 시음회와 공연행사에 선보인 전통주
2019년 내외주가에서 열린 _물에 가둔 불_ 전통주 시음회와 공연행사에 선보인 전통주 ⓒ위클리서울/ 박록담 제공 

- 가양주, 어떤 뜻인가.

▲ 가양주 문화는 고려 이후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조상숭배와 추수 감사제, 명절과 같은 세시풍속을 중요시하게 된 유교사상(儒敎思想)에 기인한다. 조선 시대 이전, 곧 고려 시대에는 사찰과 승려를 중심으로 한 술빚기가 이루어졌고, 누룩을 비롯 술을 사찰에서 빚어 일반에 공급하는 풍토였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가양주 문화는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비로소 형성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뿌리는 고려 시대 훨씬 이전부터 조상 대대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전래의 술 빚기 방법과 풍습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전래의 방법으로 집에서 빚었기 때문에 우리의 술을 가양주라고 한다.

따라서 가양주는 주거지를 중심으로 한 기후와 토양에서 생산되는 원료를 최근 거리에서 가장 신선한 원료를 자체 조달하여 가문법의 기술과 술빚는 이의 솜씨와 정성이 접목된 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제철원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계절성을 반영한 세시주(歲時酒)이자 고유한 음주문화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 전통주를 정의한다면.

▲ 무형문화재관리법과 주세법에 근거하여 한국인이 주식으로 삼고, 한국 땅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주재료로 하면서 물 이외의 인위적인 조작이나 첨가물 없이 누룩을 발효제로 익힌 술을 말한다.

또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아 온 고유한 방법과 전통성을 간직하면서도, 한국 땅에서 나는 자연산물을 주재료로 한 것이어야 한다. 다만, 대량생산을 통한 경제성과 술을 빚는 공정의 단축, 기계화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주원료 변화 이외에 특히 술에 들어가는 첨가물 사용이 허용되고 있는 현대식 양조 방법에 의해 제조된 주류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분분하다. 따라서 가양주의 의미에서 전통주의 정의를 찾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br>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대표적인 옛 전통주 종류와 빚는 법을 알려달라.

▲ 크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청주류(淸酒類)와 가향(佳香)·약주류(藥酒類), 탁주류(濁酒類), 소주류(燒酒類)다. 전통주는 쌀과 물을 주재료로 해서 누룩으로 발효시킨 순곡주(純穀酒)다.

청주류는 ‘탁주에 비해 맑은 술’이라는 뜻인데, 알코올도수가 13~19% 정도로 단맛의 감(甘)과 신맛 산(酸), 떫은 삽(澁), 쓴맛 고(苦), 매운 신(辛)의 오미(五味)와 감칠맛이 잘 어우러져 좋은 향취와 맛을 느낄 수 있다.

가향·약주류는 꽃이나 잎, 과실껍질, 열매 등의 향기가 좋은 가향재나 약성을 가진 초근목피(草根木皮)와 한방 생약재를 부재료로 쓴다. 주로 아름다운 향기와 약효를 얻기 위해 만든다. 탁주류는 전통주 특유의 향미(香味)와 감칠맛, 청량감이 뛰어나다.

각종 아미노산과 유기산과 비타민 등이 발효과정에서 에스테르(Ester, 알코올과 산(酸)에서 물을 제거한 화합물)와 알데히드(Aldehyde, 유기화합물), 퓨젤 오일(Fusel Oil, 곡물 발효 부산물로 알코올류 유독 혼합유) 등을 생성해 특이한 향미(香味)를 낸다.

마지막으로 소주류는 쌀과 누룩, 물을 주원료로 발효시킨 양조주(釀造酒)다. 양조주는 저장성이 낮기 때문에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증류한 술로, 알코올 20% 이상의 주정이다. 증류식 소주 또는 재래식 소주라고 하는데 순수하고 청량감이 뛰어나다.

 

- ‘명가명주(名家銘酒)’도 많지 않았나.

▲ 우리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집에서 술을 빚어 마시는 가양주(家釀酒) 풍습을 가꾸어왔다. 지방에 따라, 가문에 따라 또 빚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갖가지 방법과 기술을 발휘한 명주들이 등장하여 맛과 향기를 다투었다.

‘명가명주(名家銘酒)’란 말이 있듯이 사대부와 부유층, 세도가들의 집에는 제사를 비롯해 손님들의 출입이 빈번했다. 또 내외의 손님 접대에 있어, 술 접대가 예(禮)와 도리(道理)로 인식되면서 저마다의 미주(美酒)를 빚어 손님 접대와 제사(祭祀), 차례(茶禮), 접대 등의 가용(家用)에 이용해 왔다.

따라서 술빚는 일이 잦아서 기술이 발달하게 되었고, 좋은 쌀을 사용할 수 있어 맛이 좋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명가에서 명주가 생산된다는 뜻으로 명가명주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전남 해남 출생, 전통주 연구가, 시인 
  조선대학교 졸업
  고려대 자연자원대학원 식품공학과 식품가공학 전공.
  ‘한국의 전통주와 떡 축제’ 추진위원 겸 심사위원
  경기도 ‘경기 명주’ 심사위원
  농림부 주최 ‘BEST 5’ 선정 전통주 부문 심사위원
  전통주 표준화 심의위원 
  G20 정상회의 자문위원  
  경기도 문화재위원 역임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인정심의위원
  서울 고멧 전통주 자문위원
  2015 전통 양주 기술보급과 가양주 활성화 공로 대통령 표창
  한식예술장인(양주장) 선정
  국내 최초 전통주 교육기관 ‘전통주교육원’ 설립 
  현재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우리술교육훈련기관 협의회장
  현 (사)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198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가작 당선
  1984년 《월간문학》 신인 작품상 시조 부문 당선
  1985년 《현대시조》 2회 추천으로 등단.

저서 :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 전통주 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 한국의 傳統 民俗酒, 名家名酒, 우리 술 빚는 법, 우리 술 103가지, 문배주, 면천두견주, 해외 보급 영문판 술(SUL), 주찬방주해-백두현 공저, 한식 아는 즐거움(주류부문)-정혜경 공저, 우리의 부엌살림-윤숙자 공저 등 

시집 :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그대 속의 확실한 나,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박록담의 詩酒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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