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우리 집에는 개 두 마리, 고양이 네 마리가 함께 살고있다.

진돗개와 리트리버, 그리고 페르시안과 길고양이, 종류도 다양하다. 사람보다 개 고양이가 더 많은 셈이다. 애들이 많다 보니 탈이 나거나 피부병이 생겨 한 번씩은 병원 신세를 지곤 하는데 이번에 리트리버 종인 코난이가 큰 사고를 쳤다.

저녁밥을 먹고 거실에서 공을 던지며 기분 좋게 놀던 코난이가 갑자기 우웩 우웩~~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저녁에 삶아 먹인 닭에 혹시 뼈다귀라도 섞여 있었나 싶어 등을 두드려주었지만 코난이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터질 듯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했다.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했지만 밤 10시가 넘어 문을 연 곳이 있을 리 없었다. 상태를 보니 내일 아침까지 기다렸다간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24시간 동물병원을 검색해 코난이를 데려갔다.

이것저것 검사를 받아본 결과 코난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위가 꼬여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원에는 이 시간에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어 서울 큰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거였다. 어쩔 수 없이 그 새벽에 신촌까지 정신없이 올라왔다. 코난이의 상태를 살펴본 의사는 ‘위염전’이라는 생소한 병명을 들려주었다. 주로 큰 개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뛰거나 넘어지며 위장이 휘딱 돌아가 장이 꼬인 상태라고, 개복 수술을 해서 꼬인 위장을 풀어주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다고 했다.

애가 죽는다는데 어쩌겠나, 무조건 수술을 받아야지. 그런데 문제는 수술 전에 수술비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는 거였다. 요즘은 병원비 때문에 애들을 맡겨놓고 찾아가지 않는 보호자들이 있어 미리 정산을 한다고, 그래서 돈을 내야만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새벽에 자그마치 300만원이나 되는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남편과 나는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다).

어찌어찌 돈을 구해 수납을 하고나서야 코난이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비장을 잘라내고 돌아간 위를 바로잡아 고정시키는 대수술을 받은 터라 적어도 일주일은 입원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코난이가 잘 회복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또 얼마나 많은 병원비가 나올지 몰라 겁이 났다. 큰 병원에 입원을 시켰더니 병원비가 1000만원이 훌쩍 넘게 나왔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니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아이를 살릴 수 없고 죽는 건 마음 아파 못 보겠고.. 결국, 길거리에다 아이를 버리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유기견 보호소에 들어온 애들은 피부병이 심하거나 병든 아이들이 많은 이유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책임지지 못 할 거면 처음부터 데려오지 않는 게 맞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에는 다양한 반려동물이 함께 살았다.

햄스터, 물고기, 거북이, 토끼, 각종 곤충, 그리고 개, 고양이......

그래서인지 큰아들은 걸핏하면 길고양이나 유기견들을 집으로 끌어들이곤 했다.

안락사를 시킨다는 말에 유기견 보호소에 있는 강아지를 데려오기도 했고 길에 쓰러져있는 아사 직전의 고양이를 껴안고 온 적도 있었다. 어떤 날은 한쪽 눈이 찌부러진 송아지만 한 말라뮤트를 데리고 들어와 기함을 한 적도 있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키운다는 건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돈의 문제이기도 했다. 심장사상충을 비롯해 각종 예방 접종비, 장염이나 피부병이 생기면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고 고양이 모래와 사료, 배변 패드까지,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따지고 보면 내 탓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가르치고 책임을 지게 해야 했는데 대책 없이 떠맡아 키우다 보니 개 고양이 수만 늘어났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에 입양 보낸 아이들도 있었다. 코난이도 큰아들이 데려왔으니 병원비도 자기보고 해결하라고 맡기는 게 맞지만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놈에게 그런 큰돈이 있을 리 없잖은가. 결국은 단호하게 가르치지 못한 내 책임이 크다. 이제 와 후회해 본들 뭐하겠냐만......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병원 면회시간에 맞춰 코난이를 보러 갔다.

링거를 꽂고 축 처져 있던 코난이가 날 보더니 힘차게 꼬리를 흔들었다. 마치 이런 눈빛으로.

‘저를 포기하지 않고 살려줘서 고마워요.’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병원비 때문에 머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준 코난이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입원한 지 5일 만에 퇴원할 수 있게 됐다.

처음 아팠던 날부터 퇴원하는 날까지 들어간 돈만 500만원이 훌쩍 넘었다. 이 돈이면 몇 달째 털털거리며 속 썩이는 고물 세탁기를 새로 바꿀 수 있고 10년째 입고 다니는 남편의 낡은 겨울 외투도 새 걸로 사 줄 수 있다. 이것저것 들어갈 돈이 태산인데 병원비로 500만원을 써버리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남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때론 열 마디 말보다 한숨 속에 더 많은 심사가 담겨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그래도 살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한숨 쉬지 말고.”

“누가 뭐래......”

“얘 이름 바꾸자, 코난 500으로!”

그날 새벽, 서울 큰 병원에 데려가야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남편이 반대했더라면 나는 끝까지 고집을 피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집으로 데려와 다음 날, 동네 병원에 데려갔을지도. 그래서 남편이 고마웠다. 대책 없이, 돈도 없이, 겁도 없이, 그래도 우리는 코난이를 살렸다. 당분간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되겠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 사는 게 참 만만치 않다. 활짝 갠 날보다 흐리고 바람 부는 날이 더 많다. 그럴 때마다 흔들리고 불안하지만 결국은 또 버텨낼 우리를 믿는다.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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