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오토바이 빌린 후에여행 중에 국제운전면허증을 꺼낼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번도 없었다. 오토바이를 빌렸을 때도, 빌리지 못했을 때도 면허증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4륜 오토바이를 빌릴 수 있었을 때는 호기롭게 챙겨온 국제면허증을 지갑과 함께 소매치기 당한 뒤라 면허증을 꺼낼 수도 없었고, 덕분에 오토바이를 빌리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몇몇 장사꾼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냈다. 국제면허증 없이 오토바이 빌려 주기. 그들은 한국 면허증 사진을 찍어 둔다거나, 경찰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왜 모든 히피들은 비슷하게 말하고 웃나인도의 남부 휴양지, 함피와 고아를 여행할 때에는 히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날씨 좋은 들판과 해변에는 늘 서구권에서 온 젊은이들이 헐벗은 몸으로 어딘가에 걸쳐 누워 있었다. 때로는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누더기 같은 담요나 판초. 다 해진 천가방에 담긴 이름 모를 현악기. 몸에는 타투가 가득하고 눈빛은 아주 약간만 그윽하다. 길게 잘라 대충 묶은 머리에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요가와 삶의 의미를 잇대어 보는 그들. 세상 편하게 날씨를 즐기다가도 대화가 붙으면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아침에 눈을 뜨니 남편은 벌써 없다.어제 출장에서 돌아와 오늘은 사람들을 인솔해 DMZ에 철새를 보러 간다고 했다. 주말도 없이 늘 바쁜 사람이라 아이들이 어렸을 땐 참 많이도 싸웠다.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퇴근 시간 딱딱 맞춰 들어와 애들을 봐주는 것도 아니었다. 에너지 넘치는 아들 두 놈을 키우는 내내 곁에 있을 때 보다 없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무난한 성격의 둘째에 비해 태어날 때부터 예민하고 자주 아팠던 첫째는 열이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될 정도로 엄마 애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코로나의 시작은 버스에서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을까. 그럼 이 지겨운 바이러스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 생소한 이름으로 시작해 우리의 일상을 마스크로 입 막은 코로나는,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이제는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결국 언젠가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일상을 회복하겠지만, 또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되듯 우리는 이 재난을 잊고 또 하루를 살아가겠지만, 적어도 이 2년 넘는 마스크의 시간은 한 개인의 기억 속에서도 역사의 기록에서도 지우기 힘든 얼룩인 동시에 하나의 분기점이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날씨가 미쳤다. 갑자기 추워졌다. 아직 단풍도 들지 않았고 곧 노랗게 물들 덕수궁 돌담길도 가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옷깃을 부여잡게 되는 계절이 급하게도 들이 닥쳤다.사계절 중 가을을 제일 좋아한다. 태어난 계절이라 본능적인 끌림이 있어서인지 스산한 바람결에 도톰함과 가벼움 사이의 옷차림도 좋다.핸드폰에서는 며칠 전부터 생일을 축하한다며 문자가 울려댔다. 자주 가는 병원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해마다 빠지지 않고 생일을 축하해 준다. 그러나 지인들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생일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S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참아내는 기억누구에게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잊어버리고 싶지만 차마 잊히지 않는 기억이나, 잊고 싶지 않아서 꽉 붙들고 있는 기억 같은 것들. 좋든 싫든 간에 한참 동안 남아 마음속에 맴도는 기억들. 때로 인간이 기억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추억들은 누구에게나 삶의 좋은 연료가 된다. 그중 하나는 바로 여행의 기억. 일상에 비하면 여행의 시간은 짧지만 또 그만큼 강렬하게 남아 하루와 내일을 굴리는 작은 힘이 된다. 너무 흔한 이야기인가. 실은 영화관에서 홀로 외롭게 소변을 참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친구와 저녁을 먹고 밤늦게 집에 들어오니 남편이 툴툴 거리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우리 집에는 고양이 세 마리와 진돗개 한 마리가 있는데 한 마디로 개판 5분 전이다. 아무리 치워도 깨끗해지긴 글렀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나는 허튼 짓에 용쓰며 살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옷도 갈아입기 전에 청소기부터 돌리는 사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집에서 나와 대학 기숙사에서 살았고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도 자기 스스로 빨래와 방 정리를 하면서 살았으니 어찌 보면 청소와 집 정리가 습관이 된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간디 때문이 아니라아메다바드, 라는 낯선 이름의 도시에서 나는 하루 이틀을 보내고 있었다. 인도의 서쪽 겨드랑이에 툭 튀어나온 듯한 반도에 자리 잡고 있는 ‘구자라트’라는 거대한 주. 그곳의 수도 격인 아메다바드는 간디가 태어나 활동하기도 한 인구 500만이 넘는 대도시였지만, 처음 도착했을 때 내가 이 도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힌두어와 다른 말과 문자를 쓴다는 점 정도? 간디에게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길게 머물다가는 도시는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나는 간디의 발자취를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우리의 일상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밥을 먹을까 말까처럼 가벼운 선택도 있지만 가방을 살까 원피스를 살까와 같은 제법 신중한 선택의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어느 것을 선택을 하든지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만족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을 선택해도 나에게 유리할 수 없는 선택도 있다. 선택지가 딱 두 개 뿐일 경우, 그리고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유리할 수 없는 상황 앞에 맞닥뜨리게 되면 딜레마에 빠졌다고들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 딜레마. 살면서 마주치지 않으면 제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아프가니스탄의 무슬림뉴스에서 아프가니스탄 이야기가 한창이다. 20년 동안 주둔해오던 미군이 철군을 결정했고, 탈레반은 끝내 카불 공항을 점령했다. 아프간에서 탈출하려고 비행기에 매달린 사람들은 떨어져 죽었다. 갓난아이가 사람들 틈에서 죽기도 했다. 탈레반은 이전과는 다르게 덜 극단주의적인 정책을 펼치겠다고 예고했지만, 그들은 뉴스에 총을 들고 나타났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살해당했다는 여성의 이야기도 벌써 들린다. 불투명한 아프간의 미래 속에서 여전히 시민들은 나라를 탈출하려 하고 있다. 각국의 우
[위클리서울=이선희]#1우리 교회에 다니는 연지 엄마는 마흔셋, 아니 마흔넷이 되었다. 그이는 처음 만난 5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5년 세월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건만, 처음 보던 날과 지금의 그이는 달라진 모습이 없다. 혀 짧은소리와 조금은 어눌한 말씨로 하루에 열 번을 만나도 반갑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주는 연지 엄마, 아니 혜연 씨는 세 딸의 엄마다.그이의 고향은 서울이건만 강원도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세 딸을 품은 그녀는 꾸밈이 없다. 화장품을 한 번 사봤는지, 미용실은 가봤는지. 고무줄로 질끈 머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요즘 김성호의 ‘회상’이라는 노래가 인기다.사실 이 노래는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90년대 초반부터 많이 불렸던 노래. 음색이 편안하고 가사가 대중적인데다 톤이 높지 않아 따라 부르기 좋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더더욱 애절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온 지 32년이나 된 이 노래가 갑자기 사람들 사이로 파고든 이유는 왜였을까.노래로 치면 언더그라운드 정도의 지방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중소기업 회장님 같은 얼굴로 마이크 앞에 선 은발의 남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모두들 그곳에 머물렀어인도에서 잠깐 동행했던 백은 한국인을 특히 좋아하는 한국인이었다. 같이 다니는 내내 그녀는 자신이 지나쳐온 여행지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했다. “미얀마의 바간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특히 밤에는 정말 아름다워. 벌판에는 수없이 많은 불탑들이 늘어서 있고, 한국인들은 밤마다 불탑에 기어 올라가 은하수를 본다. 악수하는 사람들. 키스하는 사람들. 여행지의 로맨스들.” 백은 미얀마에서 받은 인상 속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특히 여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운전면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남편 험담하는 글이다.).요즘은 운전면허 미소지자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이 면허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운전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또는 차량을 소지하거나 소지하고 있지 않거나의 문제만 있을 뿐이다. 그만큼 운전면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요건이 되었다. 예전에는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작성할 때에도 운전면허 소지 여부를 기재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생략한다고 한다. 그 정도는 당연히 소지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나는 30년여 년을 대중교통과 두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룸비니는 너무 추워이 글을 읽는 당신은 더위와 추위 중 어느 것이 더 싫으신지. 요즘 같은 무더위 속에서도 나는 확실히 추위가 더 싫다. 여행을 하는 동안 확실해졌다. 실은 더위를 조금 더 버거워했던 내가 마음을 바꾼 곳은 히말라야 산지도 아니고 사막의 밤도 아니고, 부처가 태어났다는 네팔의 룸비니다. 체감하는 온도는 상대적이라고 했던가, 룸비니의 게스트하우스 방은 정말 추웠다. 아마 10도 안팎의 기온이었을 테니 생각해보면 그렇게 버티기 힘든 날씨는 아니었을 텐데 도리 없이 추웠다. 오랜만에 도미토리가 아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나의 첫 도시락 반찬은 무엇이었을까? 뇌세포 주름 어디엔가 깊이 박혀 있을 법한 기억은 좀처럼 뚜렷한 의식의 세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도시락의 생김새는 아직도 생생하다. 겨울철에는 길쭉한 직육면체 모양의 검은색 보온도시락이었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밥그릇과 대각선으로 경계를 이뤄 한 공간에 두 개의 반찬을 담을 수 있는 반찬통 그리고 네모난 보온도시락의 몸체와 둥그런 형태의 밥그릇사이 공간을 메워주는 용도를 겸한 물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납작한 네모 모양의 양은 도시락이었다.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릭샤꾼마크와 내가 막 사르나트에 도착했을 때, 원래 300루블에 값을 치르기로 약속했던 릭샤꾼은 오는 내내 길이 막혔다는 어색한 핑계를 대며 돈을 조금 더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대략적인 릭샤 값 시세를 이미 파악한 이후라 300루블도 충분히 많음 금액임을 알고 있었다. 세계여행을 시작하며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한국인 마크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정관사 하나 놓치지 않고 릭샤꾼에게 영어로 따졌다. 기사님, 우리와 일전에 약속한 게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평균적인 릭샤 교통비를 알고 있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며칠 전, 부동산에 갈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에 갑자기 큰언니 생각이 났다. 우리 큰언니는 어떤 사람이냐면 세상에 혼자 똑똑한 체는 다하면서 알고 보면 그런 허당이 없는 뭐 그런 사람이다. 게다가 이름으로 말 할 것 같으면 학교 혹은 법원 같은 곳에 흔히 걸려있는 글귀, 그거 있잖은가. 그러니까 우리 언니의 이름은 ‘정숙’이다.언니는 어려서부터 자기 이름을 매우 못 마땅해 했다. 평생을 정숙하게 살아야 된다는, 마치 정조대 같은 이름이라고 느껴졌던가 보다. 그래서인지 언니는 여고를 졸업하면서부터 ‘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천변풍경사원으로 향하는 길은 여느 카트만두의 거리들처럼 먼지로 붐볐다. 네팔의 먼지는 회백색에 가까웠다. 공장 연기에서 비롯된 검고 매캐한 먼지가 아니라 흰 가루 섞인 흙먼지 느낌.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지 않은 도로와 거리는 대부분 흰 콘크리트 혹은 흙길이었고 사람과 차가 지날 때마다 가볍게 먼지가 풀썩였다. 삼각형 모양의 네팔 전통 모자를 쓴 사람들이 수더분한 얼굴로 걸었다. 거리 곳곳에는 작은 힌두교나 불교 사원들이 왕왕 있었는데 행인들은 가벼운 의례삼아 종을 몇 번씩 울리고 이마 가운데에 붉은 점을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카르시의 해변폰디체리의 해변에서 나는 카르시케얀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고 늘 같은 머리스타일을 유지했다. 내 옆에 앉은 그의 커다랗고 차분한 몸을 나는 느꼈다. 인도 동부 해안가를 잇대어 이어지는 프랑스풍의 해변에는 사람 키 정도 되는 야자수들이 정돈되어 늘어서 있었다. 1월에도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원색의 옷을 걸치고 모레 사장 위를 걸어 다녔으며,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아이스크림은 하나 같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나는 늘 도대체 카르시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