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의 시간 위해 사임 결정한 외교 장관
가족과의 시간 위해 사임 결정한 외교 장관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9.09.10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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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위클리서울/이석원 기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을 표기하거나 양보하는 사람들은 여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회다. ⓒ위클리서울/이석원 기자

[위클리서울=이석원 기자] 지난 6일 스웨덴 정가는 물론 시민들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현 정부의 외교 장관인 마고 발스트룀(Margot Wallström. 64)이 느닷없이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스웨덴 최대 일간지인 다겐스 뉘헤테르(DN)는 이날 발스트룀 장관이 전격적으로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잇따라 각 일간지와 방송사는 물론 SNS도 그의 외교 장관직 사임 소식을 전했다.

발스트룀 장관의 사임 발표가 충격을 준 것은, 그가 최근 20년 내 스웨덴에서 가장 의미 있는 외교 장관으로 이름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외교 정책의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특히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 외교에 힘을 썼고, 중국과 외교 마찰이 생기긴 했었어도 악화되던 러시아와의 외교나 국제적으로 성 평등 외교에 힘을 써오며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도 명망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해 1월 사회민주노동당이 주도하는 새로운 연립정부에서도 무난히 외교 장관직을 유지했고, 현 정부에서 스테판 뢰벤 총리의 신임이 특히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발스트룀 장관이 갑자기 아무런 정치적, 외교적 문제도 없는 상황에서 사임을 결정한 이유는 뭘까? 바로 가족이었다.

발스트룀 장관은 D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로 약속했다’며 “이 약속은 이미 5년 전에 지켰어야 했는데 아직까지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약속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스트룀 장관은 “지금 (정부를) 떠나는 것이 적합한 때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스웨덴에서 최고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발스트룀이 이야기한 ‘스웨덴에서의 최고의 가치’란 바로 가족이라는 것.

 

마고 발스트룀 장관의 사임 소식을 전한 일간지 엑스프레센 뉴스 화면.
마고 발스트룀 장관의 사임 소식을 전한 일간지 엑스프레센 뉴스 화면. ⓒ위클리서울/이석원 기자

인터뷰 직후 발스트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쉬우면서도 어려운 결정이었다”며 “모든 것에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에 쉬운 결정일 수도 있지만, 아직은 나를 필요로 하는 정부임을 알기에 결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나는 가족과 손자와 더 많은 시간을 원한다. 이것은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임무 중 하나다”고 덧붙이기도 했따.

1990년대부터 문화부 장관 등을 맡으며 스웨덴 정가에서는 일종의 ‘거물’로 명망이 높던 발스트룀 장관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분쟁 지역의 성폭력 문제에 관한 UN 사무총장 특별 대표직을 맡으면서 국제 외교 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총선 직후 사민당과 환경당의 적록연정에서 외교부 장관을 맡아왔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유력한 정치인이 가족과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돌연 사퇴하거나 승승장구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1996년 당시 두 차례에 걸쳐 8년 간 집권했던 총리 잉바르 칼손이 시임을 선언한다. 집권 사민당에서는 새로운 당수를 뽑아 새 총리를 선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시민들에게 가장 큰 지지를 얻었던 사람은 정무장관 얀 뉘그렌. 그런데 그는 당수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함은 물론 정계 은퇴까지 선언한다. 이유는 딸이었다.

그는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enska Dagbladet)와 인터뷰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아빠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정치를 할 때가 아니라 딸과 함께 있어야 할 때”라며 총리직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는 이후 정계에서 잠시 모습을 감추고 아내를 대신해 딸의 육아에 몰두했다.

재밌는 건 이번에 사임한 발스트룀 장관도 1996년 당시 얀 뉘그렌에 이어 세 번째로 유력한 총리 후보였지만 자신은 아직 총리감이 아니라며 총리 후보직을 사양한 바 있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가족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 사람들에게 가족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위클리서울/이석원 기자

스웨덴 사람들에게 삶에서 가장 큰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10명 중 9명은 망설임 없이 ‘가족’이라고 대답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 가치가 가족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가족은 그 어떤 가치, 즉 권력이나 돈, 개인의 성공과 이상의 실현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제 아무리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도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든다면 스웨덴 사람들은 과감하게 일을 양보한다. 자신이 일생의 이상으로 생각하던 일이 눈앞에 있어도 만약 그것으로 인해 가족이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일이 있다면 과감하게 이상을 포기하고 가족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위해 자발적으로 풀타임 정규직을 포기하고 파트타임 비정규직을 선택하면서 육아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런 가족에 대한 가치의 일환이고, 국회의원이든 장관이든, 심지어는 총리라는 절대 권력조차도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시킬 우려가 있다면 선택하지 않는다.

발스트룀 장관은 DN과 인터뷰에서 “외교 장관을 하는 지난 5년 동안 난 가족에게 돌아가겠다는 생각 하나를 붙들어왔다. 나와 함께 하지 못하는 사이 손주들이 다 자라버리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능력 있고, 인정받는 정치인이며 행정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힘겨웠던 것이다.

물론 스웨덴은 지금 많이 달라지고 있다. 가족에 대한 가치도 아마 이전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비혼 1인 가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요즘 젊은 세대의 가족에 대한 생각은 뉘그렌이나 발스트룀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사람들은 아직도 얘기한다. 세상에서 가족과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비록 지금은 혼자 사는 세상이지만 그들에게는 언제나 가족은 존재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스웨덴을 만들어낸 힘이라고.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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