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도시와 사랑에 빠지다
처음으로 도시와 사랑에 빠지다
  • 김준아 기자
  • 승인 2020.07.02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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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나 – 세계여행] 프라하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스물한 번째 이야기.

 

여행을 하며 가장 신이 났던 순간을 뽑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순간을 말할 거다. 11년 만에 유럽으로 향하던 순간. 그리고 처음으로 한 겨울의 유럽을 가던 순간. 크리스마스 시즌을 유럽에서 보내다니!!! 심지어 체코라는 나라, 프라하라는 도시는 처음이었다.

얼마나 신이 났냐면… 두바이를 떠나기 전 날, 같은 방을 썼던 인도 친구들과의 수다 덕분에 5시간도 못자고 일어났다. 체크아웃을 하고 하루 종일 두바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체코 프라하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한숨 자려고 하는데 옆에 앉은 친절한 체코 친구의 프라하 소개 덕분에 또 잠을 못 잔 채 밤 12시가 넘어 프라하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숙소 예약을 하고나니 새벽 2시. 시내로 가기엔 위험한 시간이기에 오랜만에 공항에서 밤을 샜다. 아침에 공항에서 세수랑 양치질만 하고 숙소에 갔는데 체크인 준비가 안 되었다고 했다. 짐을 맡기고, 그냥 체크인 전까지 끼니나 떼우고 돌아다녀야지 했는데… 얼마나 좋았던지 밤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다가 숙소에 들어갔다. 그제야 무려 43시간을 깨어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신나게 구경하느라 카메라 꺼낼 시간도 없어서 도착 한 날은 찍어놓은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솔직히 몰골이 너무 꼬질꼬질해서 찍을 수가 없었다. 하하. 그래도 신났다. 행복했다는 표현보다 신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날이었다.

영어와 프랑스어로는 Prague(프라그), 독일어로는 Prag(프라크), 한국말로는 Praha(프라하).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로 체코 최대의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도시이다. 중심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일 정도로 역사가 깊은 도시이며, 맥주, 야경, 세계에서 가장 큰 성인 프라하성, 까를교 등이 유명하다. 나의 첫 느낌은 누구라도 다가와 “Hello”라고 말하면 사랑에 빠질 거 같은 곳이었다. 물론 나에게 다가와 안녕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 대신 정말 아름다운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프라하의 낮은 예쁘고, 밤은 아름답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비틀즈 멤버 존 레논과 관련 된 그래피티와 노래 가사, 지역적, 세계적 이슈를 다룬 그림들로 채워진 존 레논 벽.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체코식 족발인 꼴레뇨를 먹으러 레스토랑에 갔는데 먹고 싶은 메뉴가 두개였다. 예전 같았으면 두개 다 시켰겠지만 여행 3개월 차에 접어들고 물가가 점점 비싼 곳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돈을 아껴야했기에 엄청난 고뇌 끝에 대표 메뉴를 시켰다. 그리고 원래 맥주를 마시지 않지만 체코 맥주는 꼭 먹어봐야 한다는 걸 기억하고 코젤을 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주문을 하기도 전에 내가 시키지도 않은 수제 맥주가 내 앞에 놓여있었다. 직원이 주문하기도 전에 무조건 자리에 가져다준다. 싫으면 그 순간 바로 말을 해야 한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렇게 수제 맥주를 바라보며 어떻게 할 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직원이 내 앞자리에 다른 사람을 합석 시켰다.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내가 고민하던 메뉴 두 가지에 꽂혔다. 그 순간 아무 생각 없이 말이 먼저 나왔다.

“저… 혹시 한국 분이세요?” “네. 맞아요!” “혹시 굴라쉬(고기와 야채로 만든 스튜)랑 꼴레뇨(체코의 전통 음식으로 돼지 앞다리 무릎 구위) 중에 고민 하시는 거예요?” “네. 뭐 시키셨어요?” “저는 꼴레뇨 시키긴 했는데… 혹시 굴라쉬 시키시고 같이 나눠 드실래요? 괜찮으시다면요!” “너무 좋죠!!”

그렇게 우리는 사이좋게 다른 메뉴를 시켜서 함께 나눠 먹었다. 우리 테이블 담당 직원한테 음식을 가운데 놔달라고 하니까 정말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밥으로 통하는 한국인인 걸. 아! 내가 주문하지 않았던 수제 맥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잔을 다 마신 맥주가 되었다. 진짜 이런 맥주는 처음이었다. 부드러운 정도가 남달랐다. 주문하지 않았는데 자리에 가져다주는 건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제발 마셔보라는 의미 같기도 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라하는 누구라도 다가와 “Hello”라고 말하면 사랑에 빠질 거 같은 곳이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왼쪽부터 꼴레뇨와 굴라쉬. 그리고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절반이나 마신 수제 흑맥주.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프라하 크리스마스 마켓. 도시 전체가 디즈니랜드 같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우연히 저녁을 함께 먹게 된 언니와 내일 저녁에 다른 레스토랑에서 만나자며 연락처를 교환한 뒤 헤어졌다. 혼자 여행하면서 가장 슬픈 순간이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이다. 바로 두 가지 메뉴가 다 먹고 싶은 순간이다. 여행은 이렇게 별 거 없다.

프라하의 겨울은 오후 4시에 해가 진다. 가만히 앉아 해가 지는걸 보고 싶어서 프라하성 앞에 있는 카페에 갔다. 비가 내려서인지,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인지 꽉 찬 카페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있거나 많은 사람들이 합석 중이었다. 한참을 서서 기다리다가 해가 저물자 떠나는 이들이 생겨서 합석을 하려는데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이 아닌가. “저 죄송한데 혹시 주문하고 올 동안 가방 좀 봐주실 수 있나요?” 역시 외국에서 처음 봤는데도 가방을 맡길 믿을만한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밖에 없다.

따뜻한 음료를 들고 창밖의 아름다운 프라하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자꾸 내 가방을 맡아 준 그녀에게 눈길이 갔다. 여행 하면서 엽서를 쓰는 취미가 생긴 나는 엽서를 쓰는 그녀를 보니 자꾸 말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용기를 내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세상에. 연극배우인 내가 만난 그녀는 희곡을 쓰는 사람인 것이 아닌가. 사실 여행하며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서 직업을 물어보지 않는다. 여행 중인 사람은 그냥 여행가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직업을 물어 본 건 운명이었던 거 같다. 그렇게 같은 직종의 사람을 만나 너무 반가운 나머지 “어제 우연히 만난 언니랑 저녁 먹기로 했는데 같이 드실래요?"라고 물었다. 물론 그 전에 어제 만난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 오늘 우연히 만난 언니가 있는데 같이 저녁 먹어도 될까요?” 예전에는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낯선 사람과 밥을 먹느니 혼자가 편했다. 여행을 하다 보니 이렇게 내가 바뀌어있었다. 그렇게 각기 다른 혼자 여행을 하던 셋이 모였다. 밥을 먹기 위해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여행 관련 카페 게시글에 ‘식당 동행’을 구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저녁을 먹다가 희곡을 쓰는 언니가 배우 신애라님이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너를 입양한 게 세상을 변화 시키지는 않겠지만 너는 변화 시킬 거야.” 우리가 왜 이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을 인용해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문장을 만들었다. “여행이 삶을 변화 시키지는 않겠죠. 하지만 나를 변화 시키죠.” 우린 지금 프라하로 입양 당한 것 같았다. 프라하에서 처음 만난 세 여인의 주제는 사랑 그리고 여행이었다. 인생은 사랑과 여행으로 이루어져 있나보다.

 

“밀루이 쩨(Miluji tě 사랑해).” 처음으로 도시와 사랑에 빠진 나.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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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하면서 엽서를 쓰는 취미가 생긴 나는 엽서를 쓰는 그녀를 보니 자꾸 말을 걸고 싶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체코에서는 1일 1굴뚝빵(뜨르들로) 해야한다. 뜨르들로(Trdlo)는 체코어로 '빵에 감아 빙글빙글 돌리며 구워내는나무막대기'로 빵을 만들어내는 도구의 이름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 할 때 온전히 사랑 때문인 게 가장 아름다운거래요.”

“순례길을 걸을 때 그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아… 다리가 너무 아프다. 다음 숙소에 방이 있을까? 조금 더 가면점심 먹을 곳이 나와야 하는데’ 등. 하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건 생존이고, 고민은 해봤자 답이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다. 나는 연기가 너무 좋지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희곡을 쓰는 언니가 말했다. “글 쓰는 게 너무 좋은데 그게 전부가 아니어서 더 좋아요. 그냥 내 인생에 하나의 점이었으면 좋겠고, 그 점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깊은 사람은 못 될 거 같고, 대신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언니가 말했다. “넓은 사람만이 깊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다. 정말 여운이 깊은 밤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 프라하에 온 목적이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프라하에 있다는 공통점만으로 인생을 공유할 수 있었다. 아직도 신기하다. 여행이 나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누군가에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 낯선 이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여행 덕분이 아니라 그 때마다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이다.

 

"여행이 삶을 변화 시키지는 않겠죠. 하지만 나를 변화 시키죠." 용기를 만들어 준 스타벅스에서 보이는 프라하.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프라하는 중심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일 정도로 역사가 깊은 도시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유럽의 크리스마스를 처음 만난 다는 프라하에 있는 내내 들떠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이곳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크리스마스 마켓 앞에 있는 카페를 지나는데 와이파이가 잡혔다. 걸음을 멈췄다. 영상통화를 시작했다. 무려 한 시간 반 동안 영하의 날씨에 길에 서서 전화를 걸었다.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게 예쁜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나니까 너무 따뜻해졌다. 3개월 만에 얼굴을 보니 울려고 하는 친구, 진짜 운 친구, 아이랑 놀고 있던 친구, 아들이 아프다고 약을 타고 있던 친구, 서울 시내를 보여준 친구, 본인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친구까지.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멀리 나와 있는데도 항상 응원해주고, SNS에 소식을 며칠만 못 올려도 무슨 일 있냐고 연락해주고, 궁금해 하고, 보고 싶어해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외로운 날이면 연락할 곳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렇다고 그 날이 외로웠던 건 아니다. 유럽에서의 첫 크리스마스를 맞아 프라하에 있는 내내 한껏 들 떠 있었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프라하에서 한달 살기를 하고 싶었다. 우표 가격이 네팔보다 6배나 올라 당황했지만 유럽권 나라치곤 물가가 저렴했고, 어디를 걸어도 마치 거대한 놀이공원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도시 전체가 디즈니랜드 같았다. 낮은 예쁘고, 밤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유럽에 온 진짜 목적지가 있기에 프라하를 떠나야 했다. 따뜻한 날 다시 오기로 다짐을 해서 많이 아쉽지는 않았지만, 겨울의 프라하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울적했다. 따뜻한 기억만 만들어 준 프라하 “밀루이 쩨(Miluji tě 사랑해).” 처음으로 도시와 사랑에 빠진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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