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산에 오르지 않은 자, 산에 오르다
아직 산에 오르지 않은 자, 산에 오르다
  • 위클리서울
  • 승인 2020.02.2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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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나 – 세계여행] 네팔 히말라야-2편
산에 오르기 전 날 밤, 나의 고민은 오직 한가지뿐이었다. 무슨 라면을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열여섯 번째 이야기.

 

“얘들아, 나 정상에서 무슨 라면 먹을까?”

“한국인이면 매운 라면이지!”

“그렇지? 오케이! 고민 끝! 잘 다녀올게.”

산에 오르기 전 날 밤, 친구들과 단체 채팅 방에서 나눈 이야기다. 나의 고민은 오직 한가지뿐이었다.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정상에서 무슨 라면을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아무것도 몰랐다. 앞으로 산에서 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그냥 소풍가기 전 날처럼 설렜을 뿐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슈퍼에 가서 산에서 먹을 7박8일치 식량을 사고, 설레는 마음으로 은행에 들러 산에서 사용할 돈을 인출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산에 함께 올라가는 팀원들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함께 히말라야에 오르기로 한 (나를 포함한) 다섯 남녀는 굉장히 복잡한 관계이기도 하면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관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엄청난 공통점을 가지고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히말라야에 오르지 않은 자. 사진은 히말라야에 수백번 오른 가이드 스바스와 함께 첫 발을 내딛기 직전.
우리는 엄청난 공통점을 가지고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히말라야에 오르지 않은 자. 사진은 히말라야에 수백번 오른 가이드 스바스와 함께 첫 발을 내딛기 직전.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포카라에서 지프를 타고 히말라야 트래킹 시작 지점까지 이동을 한다. 여행이 업그레이드되기 3시간 전. 설렌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미희언니와 나는 10년 전, 원주 MBC에서 같은 프로그램 리포터로 활동을 하며 만나게 된 사이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그만 둔 이후로 1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났으며 아주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 내가 세계여행을 간다고 소식을 전하고 한국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을 때,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한 곳이 히말라야라고 말하니 언니는 솔깃했다.(언니의 취미는 등산이다.) 그래서 서로 일정이 맞으면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언니가 정말 포카라에 나타났다. 아니, 심지어 나보다 하루 먼저 도착해서 수빈이를 합류시켜 놓았다.

수빈이는 미희언니가 정보를 얻으려고 들린 한인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친구이다. 내가 도착을 했을 당시, 수빈이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아직 우리와 함께 할지 확정을 짓지 않은 상태였다. 그 기다린 누군가는 수빈이가 네팔 카트만두 게스트 하우스에서 딱 하룻밤을 함께 같은 방을 쓰며 알게 된 태영오빠이다. 너무 간절히 기다리길래 나는 나와 미희언니처럼 오래된 사이인 줄 알았다.

태영오빠는 내일(미희언니와 수빈이를 만난 날 기준) 포카라에 도착한다고 내일 모레 우리와 함께 산을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과 산에 함께 오르기로 약속 한다고? 그것도 남자랑? 이런 흉흉한 세상에? 뭐, 전혀 상관없었다. 포카라에서 인간은 딱 두 종류로 분류된다. 이미 산에 오른 자와 아직 산에 오르지 않은 자. 태영오빠와 나는 아직 산에 오르지 않았기에 그것만으로 우린 얼굴은 모르지만 같은 분류의 사람, 한마디로 동지였다.

마지막으로 창훈이는 내가 합류시킨 동지다. 미희언니가 수빈이를 네팔 포카라에서, 수빈이가 태영오빠를 네팔 카트만두에서 만났다면, 나는 창훈이를 태국 치앙마이에서 만났다. 이번 여행 중 치앙마이에서 한국 여행자들을 모아 다 같이 차를 렌트해 근교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함께 했던 친구이다. 그 여행자들 중에 유일하게 창훈이와 나만 장기여행자였다. 그 당시 거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었는데 서로 히말라야에 갈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시간이 맞으면 만나자고 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다음에 밥 먹자”정도의 진심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딱 맞았다.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는 포카라에 도착했는데 온통 히말라야 준비에 정신이 팔려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 했다. 산에 오른 자가 되면 즐겨야지.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이렇게 우리 다섯 남녀는 엄청난 공통점을 가지고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히말라야에 오르지 않은 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말이다.

태영오빠가 도착하기 전 날 저녁, 그러니까 내가 포카라에 도착한 날 저녁, 그리고 오랜만에 미희언니와 창훈이를 만난 날 저녁이자 수빈이를 알게 된 날 저녁. 넷이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와 계획을 했다.

“인터넷 찾아보면 보통 7박8일, 혹은 8박9일 코스로 많이 가는 거 같죠?”

“푼힐이랑 ABC코스로 많이들 가던데요?”

“서킷 코스도 되게 좋다고 하는 거 같던데요?”

“서킷은 어디죠? 더 오래 걸리는 거죠?”

“산에 올라갈수록 물가가 엄청 비싸진다고 했죠?”

물음표로 끝나는 대화. 그렇다. 그 누구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정보가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비슷한 수준으로 몰랐기에 서로 모른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통한 우리. 모두 한 마음(오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면서 몇 가지 룰도 정했다. 누군가 아프면 하루 기다려주기. 눈치 보지 말고 본인 간식 먹기. 참 한국인스럽다.

 

산에 오르지 않은 자로서 먹은 마지막 식사.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네팔.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서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 다시 모였다. 포터(짐을 들어주는 사람)겸 가이드를 구하기 위해서다. 사실 포터 겸 가이드를 구하는 건 한국인들 밖에 없다고 한다. 다른 나라 여행자들은 짐만 들어주기를 원하거나 안내만 해주기를 원한다고 한다. 어떤 것이 더 괜찮다고 말할 수 없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있으니까 말이다. 포터 겸 가이드 비용은 하루에 한화로 약 1만8000원이고, 9kg의 짐까지 들어준다. 한 명만 고용해서 자신이 맡기는 짐만큼의 비용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그렇게 한다. 하지만 다시 오르게 된다면 혼자 포터 비용을 지불하고 모든 짐을 다 맡기는 선택을 할 것이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 포터 겸 가이드를 구하고, 각자 준비를 시작했다. 산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팀스(트래킹 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주요 목적지에서 확인하는 일종의 신분증)와 퍼밋(국립공원 입장료) 만들기, 고산병 약 구입, 식량 구입, 물티슈와 휴지 구입, 초콜릿과 과자도 넉넉하게 구입, 등산 장비 대여 등등.

그렇게 각자 본인이 생각하기에 나름 뿌듯하고 완벽하게 준비를 마치고 산에 오르지 않아본 자로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엄마, 아빠! 저 내일 히말라야 올라가요! 건강하게 잘 다녀올게요. 올라가면 연락 못할 수도 있는데 걱정하지 말아요. 다시 연락할게요!”

통화를 끝내고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마치 처음 엄마 아빠랑 떨어져서 유치원에 가던 날처럼, 마치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수학여행에 가서 집이 아닌 곳에서 자고 온 날처럼. 그리고 마치 세계 여행을 떠나던 날처럼 말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히말라야는 그런 곳이었다. 멀리 떨어지는 곳으로 가는 느낌이 드는 곳.

이제 하룻밤만 자면 나는 드디어 산에 오른 자가 된다. 여행이 업그레이드되는 느낌. 설렌다. 마구 설렌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설레는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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