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핵 물질의 성분은 무엇일까. 그것의 최종 기착지는 어디인가. 인류를, 아니 생명 자체를 멸절시키고자 하는 악마적인 속성을 핵 물질은 원래부터 갖고 있는 것인가? 등등의 물음표를 놓고 눈을 깜빡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술도 같고 환상도 같은, 귀신에 낚인 것도 같고 도깨비에 홀린 것도 같은 기괴한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체험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 혼자만 그런 비정상적인 체험, 이라기보다 상상 또는 공상에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핵 물질은 아직 신원미상이고, 그래서 낯설고, 그래서 자꾸 관심을 갖게 된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핵 물질은 일단 생명체가 아니다. 세균이 아니고, 바이러스도 아니고, 곰팡이 같은 것조차도 아니다. 핵 물질 자신의 생명을 유지 또는 발전시킬 목적으로 다른 생명을 잡아먹는 게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람을, 생명체를 만나면 무차별적으로 그 생명을 끊어놓는다. 이게 대체 뭐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현상을 접했을 때 사람은 몹시 당황하고, 그리고 그 현상을 일러 불가사의라고 명명한다. 사람만 불가사의한 현상을 접하고 당황하는 것은 아니다. 보름달이 높이 뜨는 날 개들은 달을 보며 밤새 짖어댄다. 너 누구냐고,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겠지만 달은 개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개는 한 달 뒤에 다시 찾아온 보름날에도 역시 밤새 달을 보며 짖어댄다.

개가 아직 달에 관한 체계적인 인식을 갖추지는 못 했다 해도, 일반적인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사람 못지않게 아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테면 비가 심하게 쏟아질 때, 개는 비를 피해서 허둥지둥 달리고, 자기 집 안으로 쏙 들어가서 새끼들을 몇 번 핥아준 다음 벌렁 드러누워서 느긋한 행복에 취해 들어간다. 하지만 비를 처음 접하는 강아지들은 어머나 이게 뭐냐 하고 어미의 품을 날렵하게 벗어나서 쏟아지는 빗속으로 뛰어든다.

강아지들이 빗속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 축제도 그런 축제가 없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쪽으로 뒹굴고 저쪽으로 뒹굴고, 정신이 완전 나가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 젖먹이인 강아지가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양은 한정돼 있다. 마침내 강아지들은 흙탕물 범벅이 된 채로 지쳐서 혀를 빼물고, 거칠게 학학대는 소리를 내며 어미의 품으로 돌아가지만, 온 몸을 덜덜 떨어대며 신음소리를 내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일부는 끝내 자기 페이스를 찾지 못한 채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퀴리 부인으로 널리 알려진, 노벨상을 두 번씩이나 받은 마리 퀴리는 연구실에서 매우 낯선 물질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과학자 특유의 강렬한 호기심으로 그녀는 그 물질을 매우 오랜 시간 관찰했다. 나중에 방사능으로 이름 붙여진 그것, 핵폭탄과 핵발전소의 시발이 되는 그 물질 때문에 그녀는 암에 걸리고, 매우 고통스럽게 사망했다. 그 당시에는 방사능에 관한 지식이 아직 축적되지 않았던 탓에 이게 뭐지? 뭐지? 수많은 물음표만 만들어지다가 세월이 한참 흘러서야 사망 원인을 밝혀낼 수 있었다.

 

고통의 시간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오늘날의 핵 물질은 더 이상 불가사의까지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핵, 하면 아 그것, 할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명쾌하게 이것이다 할 만한 자료는 아직 없다. 관련 업게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희미하나마 어떤 단서가 보이기는 한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후 지속적으로 반복된 얘기 중에 하나가 그것이었다. 노인은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 노인 중에서도 남성 노인은 특히 더 안전하다는 것. 핵 물질에 취약한 계층은 아이들과 여성이라는 것. 여성 중에서도 가임기의 여성이 취약하고, 뱃속에 아이가 있는 여성은 특히 더 위험하다는 것.

이 말을 종합하면 핵 물질은 그 자체에 어떤 의식이나 분별력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름의 확실한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최소한 거침과 부드러움을, 여성과 남성을, 노인과 젊은이 그리고 어린아이를 구별해낼 정도의 감식안은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것은 무엇일까. 무슨 악귀의 영향으로 생겨났기에 그렇게도 잔인하게 처절한 방식으로 생명을 살상하는 것일까. 핵 관련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그 악귀는 섭씨 삼천 도에 육박하는 엄청난 열기 속에서 튕겨져 나온 일종의 돌연변이 현상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그 종류와 성질이 제각각이어서 정확한 데이터조차 낼 수가 없다.

발전소나 폭탄이나 핵으로 구성된 시설이 폭발하면 소위 핵종이라는 것이 뜨거운 열을 에너지로 해서 태어나는데 그 종류가 무려 4,000여 종이라고 한다. 사천여 가지의 핵종이 어떤 것은 일이 초 내에 자연 소멸되고, 어떤 것은 삼사 분 내에 소멸되며, 또 어떤 것은 한 시간 혹은 열 시간 내에 소멸되는 방식으로 대략 구십 퍼센트가 한 달 내에 사라지고 십 퍼센트만 남는다고 한다.

십 퍼센트, 그러니까 남아 있는 사백여 종류의 핵 물질 또한 어떤 것은 일 년, 어떤 것은 십 년 하는 식으로 대부분 백 년 내에 자연 소멸되고 대략 64종이 남는데 이것들의 자연 소멸 기간은 최소 이백 년에서 최장 십만 년이란다.

십만 년. 아득하다. 인류의 역사가 몇 년인데 십 만년씩이나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문제는 이 악귀가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녹지도 않으며, 색깔이 없고 냄새도 없고 맛도 없어서 내 손에 붙어 있는데도 내가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소름이 돋는 것은 핵 물질이라는 이 악귀가 생명체를 만나면 착 달라붙는다는 점이다. 평상시의 핵 물질은 그냥 거기에 있을 뿐이다. 흙 속에 묻혀 있거나 바위에 붙어 있거나 혹은 물을 따라 흘러갈 뿐이다. 환경이 변해서 바람이 심하게 불면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고, 다시 바위나 흙에 떨어지면 또 다른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지만,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명체를 만나면 착 달라붙어서 다시는 바람에 날리지 않고 모종의 활동을 개시하는데 그 활동조차도 자의적인 게 아니라 매우 수동적이다.

 

행복한 시간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이를테면 풀잎에 붙어 있다가 토끼나 고라니가 그 풀잎을 먹으면 토끼나 고라니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토끼나 고라니를 다른 포식자가 잡아먹으면 다시 그 포식자의 뱃속으로 자리가 옮겨지고, 마침내는 사람의 신체 내부로까지 옮겨간다. 이 과정에서 소변이나 대변 등의 기초대사에 휩쓸려 방출되기도 하지만, 생명체의 어딘가에 착 달라붙은 것들은 방출되지 않고 신체 내부의 각종 장기와 혈액, 갑상선 등등으로 흡수되어 간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핵 물질의 신체 내부 진입을 허용하고 만 사람은 이제부터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한다. 그 사람이 고령이라면 고통은 약하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 노인 중에서도 남자 노인은 특히 더 안전하다. 취약계층은 어린아이와 여성이고, 여성 중에서도 젊은 여성이 더 위험하고, 뱃속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성이라면 특히 더 위험하다. 이게 대체 뭐냐?

나의 이런 고통스런 의문에 반짝, 답을 던져준 일군의 의사들이 홀연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가 알게 된 이후 혈맹의 관계가 된 사람들이었다. 이 사연이 참 눈물겹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발전소 인근 지역은 의사가 거의 없는 불모지가 돼버렸다고 한다. 사고가 터지자마자 그동안 잘먹고 잘살던 의사들이 죄다 병원 문을 걸어 잠그고 도망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을 접한 뜻있는 의사들이 일본 전역에서 한 명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각자 얼마씩의 돈을 내서 임시 병원을 꾸리고,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주변 환경 조사에 나섰다. 이때 발견한 것이 버섯이었다. 버섯에 달라붙은 핵 물질이 종류도 많고 그 양 또한 엄청나게 많아서 놀랐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접하는 순간 내 입에서, 아하 소리가 튀어나왔다. 버섯이란 무엇인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서 성장 속도가 빠른 종을 찾기로 하자면 버섯을 첫 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버섯은 작은 하나의 점으로 시작돼서 분 단위 아니 초 단위로 성장하고, 다음날이면 벌써 열 배 이상으로 커져 있는 생명체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버섯은 세포 증식 등 생명활동이 매우 왕성하고, 그에 필요한 에너지의 총량 또한 다른 생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성장과 생명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외부해서 취한다. 스스로 내부에서 자기 몸이 필요로 하는 식량을 만들어내는 생명체는 없다. 심지어는 공기나 습기조차도 생명체는 스스로 만들어 내지를 못한다. 살고자 한다면 내 몸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먹거나 흡입해야만 한다.

가임기의 여성은 동갑내기 남성에 비해 소비하는 에너지의 총량이 많다. 생리 등의 이유로 죽어가는 세포가 많고, 새로 만들어지는 세포 또한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신한 여성이라면 당연히 그 곱절이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처분
방사성폐기물 처리처분 ⓒ위클리서울/ 도쿄전력 홈페이지캡쳐

모든 생명은 신체 내부에 자기 몸의 각 부위를 관리하는 지휘부를 두고 있고, 이 지휘부를 총괄하는 총사령부를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것을 dna라고 부른다. 2중 나선형으로 돼 있는 dna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으로 연결돼 있고, 이 모든 선들은 각자 맡은 바 임무가 따로 있다. 기초대사를 관리하는 갑상선과 이어진 선이 있는가 하면 시신경을 관리하는 것이 있고, 내부 장기나 혈액의 상태를 점검해서 대처하는 선이 있는가 하면 자기 몸이 흡수해서는 안 될 것을 먹었을 경우 그것을 도로 토해내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핵 물질은 냄새도 색깔도 맛도 없어서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핵 물질은 능동적으로 뭔가를 하는 물질이 아니다. 핵 물질 자신의 생명 보존을 위해 뭔가 다른 것을 먹는 게 아니라 다만 거기에 있을 뿐이다. 나 여기 있다고 티를 내지도 않는다. 세월이 흘러 자연 소멸되는 그날까지, 거기에 그냥 있을 뿐이다. 이게 진짜 문제다.

DNA를 구성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들이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자면 각 기관과의 소통을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 그런데 핵 물질이란 녀석이 중간에 떡 버티고 앉아 네트워크를 교란한다. dna 입장에서 보자면 핵 물질은 매우 낯설고, 경험이 없는 까닭에 대처할 방법 또한 찾아내지 못 한다.

혈액을 담당하는 DNA 앞에 핵 물질이 버티고 있다면 그 사람은 혈액암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고, 간을 담당하는 DNA 앞에 핵 물질이 버티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간암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고, 임신한 여성의 체내에 핵 물질이 들어가 있다면 그녀는 기형아를 출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본인의 온전한 생명을 보장하기도 어렵다.

기가 막힌 것은 핵 물질이 능동적으로 생명체를 공격한 게 아니고, 사람 자신이 주의 의무를 게을리 해서 핵 물질을 체내로 끌어들인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살고자 한다면 먹어야 하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그냥 먹었을 뿐인 음식 어딘가에 핵 물질이 붙어 있었던 것이고, 숨을 쉬는 어느 순간 공기를 따라 체내로 유입된 것일 뿐이라는 거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물질을 인간이 과학의 이름으로 만들어냈다. 과학은 항상 꿈이라든가 미래를 앞세우지만 진정으로 알아야 할 미래에 대해서는 완전 무지하다고나 할까.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고통도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과학이 있다. 이제는 따져 물어야 한다. 과학, 너는 뭐냐? 설마 인류의 완전한 멸절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건 아니겠지?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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