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살을 파고들면 아플까 기쁠까
살이 살을 파고들면 아플까 기쁠까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0.01.10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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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할 뿐 보이는 것 자체는 못 보는 눈을 가졌다.

저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제시한 서구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동양에 대한 인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위와 같다. 식민지 개척이 최고의 취미인 제국주의자들은 눈앞에 있는 것도 자기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못 보고 지나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에게 있어 상생이니 공존 같은 단어는 아주 낯선 외계의 언어일 뿐이다.

세계 경찰을 자임하며 전쟁놀이로 막대한 이익을 취해온 미국이 중동에서 전쟁놀이 도박을 또 시작했다. 도박은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라도 계산이 어긋나면 동맹국이란 구실을 내세워 한국을 끌어들이고자 온갖 위협을 다해댈 것이다. 한국의 당면과제는 남북통일이지 침략전쟁 따위가 아니다.

안 그래도 더러워진 내 입이 전쟁관련 뉴스를 접하고 있노라니 더더욱 더 자꾸 더러워져 간다. 저것들을 그냥 싹 다 지구 밖으로 몰아내 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작다. 너무 작다. 힘도 없다. 작은 데다 힘도 없으니 싹 다 뒤집기는커녕 미친놈 헛소리 한다는 소리나 듣기 십상이다. 미친놈 소리를 듣고 나면 서글프고, 억울하기까지 하다.

이런 때는 집을 나서야 한다. 집에 자빠져 있으면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뭐 그리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다. 집에서 차로 한 십여 분만 달리면 그 해변이 나온다. 바람이 슁슁 달려와서 뺨을 때리고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하는 그곳, 그곳에서 바다를 향해 가슴을 내밀고 숨 한 번 크게 쉬고 나면 귀거래사 중 한 대목이 내 입에서 절로 흘러나온다.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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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땅이 있고 그 위에 내가 있으니 어디인들 이 한 몸 둘 곳이야 없으리.

그곳에 가서 그 노래 한 소절을 부르고 나면 내 작은 몸이 커다래졌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 힘도 생긴 것 같다. 무서운 것이 없어지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북한이든 러시아든 어디라도 마음만 먹으면 자동차를 운전해서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런 정신 상태를 아마 호연지기라고 하는 것일 게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간댕이’가 부어오르는 것이니, 힘 없고 빽 없고 돈도 없으면서 생각은 복잡하게 많은 사람이 그나마 사람답게 살아가는 재주랄까 지혜랄까 하여튼 그 뭔가가 호연지기에 있다고 여겨진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바다를 배경으로 육중하게 제멋대로 서 있는 그곳은 오래 전부터 동호라고 불려왔다. 동호는 冬湖이니, 얼어붙은 호수라고 번역하면 아마 적당할 것이다. 실제로도 눈에 보이는 정경은 바다라기보다 호수에 가깝다. 끝이 안 보이게 커다란 중국의 내륙 호수 동정호보다도 차라리 작아 보인다. 크고작은 섬과 부안의 채석강이 시야를 차단하는 까닭에 드넓은 바다를 떠올리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동호를 동호라고 처음 이름을 지었던 사람도 어쩌면 중국의 동정호를 염두에 두었던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때 했었다. 하지만 첫 글자 한자의 뜻이 너무 달라서 취소했다. 취소하고 나니 오히려 더욱더 동정호와 동호는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혹시, 혹시 고창 동호의 바람이 너무 억세게 차가워서 겨울동자로 살짝 바꾼 것은 아닐까?.

해변 마을이라면 어디나 그렇겠지만, 고창의 동호리 해변 마을은 겨울살이가 고단하다. 해변에서 사오 킬로 정도 떨어진 우리 집 마당에 미풍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 차를 타고 해변으로 가서 보면 머리카락이 뽑힐 것만 같고, 코와 귀가 잘려나갈 것만 같고, 심지어는 바람 때문에 입을 열기조차 어려워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해도 달달 떨리는 입술 사이로 으으, 소리만 나오기 십상이다.

오늘날의 해변 마을은 방파제 공사가 잘 돼 있어서 아주 강한 태풍이 아닌 한 눈물과 한숨을 뿌릴 일이 거의 없지만, 이삼십 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해변 마을 사람들은 눈물 흘리기를 취미처럼 해야만 했다. 바람이 조금만 거세게 불어도 지붕이 날아가고, 파도가 조금만 거세게 몰아쳐 와도 부엌에 쌓아놓은 연탄이 죄다 못 쓰게 돼버리니 어쩔 것인가. 나오느니 한숨이요 눈물뿐이었다.

나라 전체의 살림살이가 넉넉해지면서 콘크리트와 바위를 맞물리는 방식으로 축조한 현대식 방파제가 파도와 해일을 막아주는 시대가 되기는 했지만,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마술 같은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서 그물로 바람을 잡거나 묶어둘 수는 없고, 그 유명한 4차산업의 이름으로도 바람의 근원을 찾아내서 원천봉쇄해 버리지는 아마도 못할 것이다.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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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은 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해변 마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나무를 심어 왔다. 나무도 가을이면 옷을 싹 벗어버리는 수종이 아니라 겨울에도 이파리가 빽빽한 수종으로만 심었다. 언제부터 나무를 심어 왔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천 년 전부터? 이천 년 전부터? 어쩌면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심어 왔을 수도 있다. 연원이야 어떻든 해마다 봄이 오면 나무를 심었던 할아버지처럼,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해변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겨울이 가고 봄바람이 불어오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나와서 나무를 심는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 모래찜질을 한다고 동호리 모래밭으로 몰려가는 엄마들을 따라갔을 때 해변의 소나무는 엄청나게 컸었다. 키가 어찌나 큰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만 같았고, 덩치는 어른들도 감쪽같이 숨겨줄 수 있을 정도로 뚱뚱해서 숨바꼭질 놀이까지도 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해변의 소나무들은 어떻게나 뚱뚱한지 나 혼자서는 두 팔을 제아무리 짝 벌린다 해도 끌어안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나는 소나무가 왜 그렇게도 많이 해수욕장 옆에 늘어서 있는 것인지 제대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글이글 타는 태양을 가려주는 그늘막 정도로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해변의 소나무들은 여름 한철 소풍객들이 모여앉아 밥 먹고 떠들고 퍼질러 누워서 잠을 청하기에 딱 좋았다. 그래서 때로는 솔방울이 이마 위로 떨어진다고 굳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가지를 팍팍 꺾어내 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오면서 가면서 걸리적거린다고 인정사정없이 가지를 꺾어내 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심심풀이 장난으로 그냥 가지를 꺾어버리기도 했더랬다.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칼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어느 해의 겨울 어느 날 겨울바다를 본다고 동호에 갔다가 문득, 벼락처럼 그것이 방풍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가 왜 거기에 그렇게도 많이 서 있는지를 알고 나니 내 자신이 그렇게도 못나 보일 수 없었다. 바닷가 마을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죄송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납득할 만한 무슨 이유도 없이, 다만 하나 심심풀이로 소나무 가지를 마구 꺾어버렸던 내 어린 시절의 잔망스런 행위가 슬라이드 필름으로 휙휙 지나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거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이제서라도 하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오늘날에도 여름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동호리 백사장을 찾는다. 가난이 일상이던 옛날과 비교하면 그 숫자가 훨씬 많아졌고, 해마다 늘어만 가더니 이삼 년 전부터는 저 유명한 해운대 백사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까지 늘어났다. 어떤 사람은 여름이 아직 익기도 전 오월부터 자동차에 바리바리 온갖 것들을 싣고 와서 여름까지 아예 살아버리기도 한다. 한때는 서해안 해수욕장의 물이 더럽다고 사람들이 기피하기도 했었지만, 더럽다고 생각한 그 물이 사실은 머드팩으로 유명한 펄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외견상 더러워 보일 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신세계를 발견한 기분에 빠졌다고나 할까,

여름뿐만이 아니다. 겨울에도 물이 들어오면 망둥어다 뭐다 바다낚시를 한다고 미리 와서 텐트를 치고 라면 같은 것을 끓여먹으며 물때를 기다리기도 한다. 방파제를 높다랗게 쌓아 놓으니 경사면이 없어지고, 그래서 각종 물고기를 품고 있는 바닷물이 코앞에서 출렁거린다. 짠물이 찰박거리는 모래밭으로 멀리 나가느라 신발이 젖고 추워서 덜덜 떠는 수고가 필요 없이 그냥 텐트 안에 앉아서도 낚시를 즐길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해수욕을 목적으로 온 사람이건 낚시를 목적으로 온 사람이건,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보는 눈도 달라서 텐트를 쳤던 자리에 치는 사람도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자기만의 자리를 개척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개척자들의 특징은 목적의식이 매우 투철하다는 점을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아직 없었던 시절 아메리카 개척자들이 그러했듯이, 아프리카 대륙에 진입한 유럽인들이 그러했듯이, 자기 자신 외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가차 없이 쳐내 버리거나 이용 대상으로 파악할 뿐 그 존재가 왜 거기에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어린 시절에 아무 생각 없이 소나무를 꺾어버렸듯이, 개척자들은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다니면서 보행을 방해하는 소나무 가지가 있으면 이게 왜 여기 있나, 생각 같은 것은 해볼 필요도 없이 그냥 꺾어버린다. 텐트를 치면서 걸리적거리는 소나무가 있으면 그 또한 꺾어버리고, 텐트를 다 친 뒤에는 텐트 안에 앉아서 바다를 보고 싶은데 시야를 가리는 소나무가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며 하나씩 둘씩 차근차근 제거해 나간다. 어떤 사람은 아예 톱을 들고 다니면서 쓱싹쓱싹 느긋하게 잘라내기도 한다.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해변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악귀도 그런 악귀들이 없고, 제국주의자도 그런 무식한 제국주의자들이 없다. 틈만 나면 나무를 꺾지 말고 사랑해 달라 외치기도 하고. 아예 글로 써서 여기저기에 붙여놓기도 해보지만 제국주의자 악귀들은 마이동풍에 우이독경이라 이제는 포기해 버렸다. 먹고살기도 바쁜 판에 악귀들과 씨름을 하느라 속을 끓이느니 마음이라도 편하게 그냥 잊고 있다가 새봄이 오면 새로운 나무를 심는다. 심고, 또 심고, 또 심다 보면 그 중에 몇 그루는 살아남아서 바람을 막아 주리라는 믿음이 해변 마을 사람들에게는 전통처럼 내려오는 것이다.

어느 하루 불쑥 바닷가에 심어진 소나무의 입장에서 보자면 삶의 조건이 나빠도 너무 형편없게 열악하다. 툭하면 발길에 걷어차이고, 꺾여나가고, 거센 바람에 시달리니 불행도 그런 불행이 없다. 그렇다고 동물들처럼 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서 훌쩍 떠날 수도 없으니 어쩔 것인가.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자살이라도 했겠지만, 나무들은 사람이 아니다. 신세한탄 같은 것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라 나쁜 환경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서 모두가 함께 부둥켜안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전략을 나무들은 채택했다.

그리하여 나무들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면 맞서는 게 아니라 바람의 결을 따라 함께 흔들려준다. 때로는 통째로 그냥 꺾어질 듯이, 뿌리가 드러날 듯이, 죽을 듯이 흔들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엉키고, 엉킨 채로 간신히 살아나서 봄이 오면 살을 찌우고, 겨울이 오면 또 흔들리고, 몇 년을 그렇게 하고 있노라면 샴쌍둥이처럼 어느 순간 딱 붙어서 하나가 되기도 한다. 소나무 몇 그루가 한 그루로 되어 있는 그 양상은 흡사 내 살을 떼어서 상대에게 준 것도 같고, 상대의 살을 내가 파먹어 들어간 것도 같다. 그 상태 그대로 세월이 또 흐르고 또 흐르다 보면,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기괴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하여튼 무슨 굉장한 예술작품이 주인도 없이 거기에 서 있는 것만 같으니, 여기서 또 한 번 제국주의 사상이 등장한다.

이거 얼마짜리나 될까. 십 억? 백 억? 천 억?

제국주의자들은 그 엄청난 나무들을 뽑아다가 자기 집 마당에 심어놓고 싶어 한다. 그래서 초대형 트레일러를 동원하면 어떨까 헬기를 동원하면 어떨까 설왕설래를 해보기도 하지만, 덩치가 커도 너무 커서 엄두를 못 내고 아쉬워만 하다가 돌아선다.

제국주의자들의 관심이야 그렇다 치고, 내 관심은 내 자신이 생각해도 좀 생뚱스럽다. 거센 바람 속에서 가지와 가지가 부딪히고 서로의 살과 살이 찢어지면서 파고들고 섞여질 때, 그때 나무들은 아팠을까 기뻤을까. 이것이 나는 궁금하기만 하다. 아픔이었을까 기쁨이었을까. 아픔과 기쁨 사이의 어느 지점이라고 한다면 그 지점의 느낌은 또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롯이 그냥 고통이었을 것 같지는 않고, 오롯이 그냥 기쁨이었을 것 같지도 않아 보이긴 하지만, 사람인 내가 나무의 정서를 안다고 건방을 떨 수는 없으니 그저 계속 궁금하기만 할 따름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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