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불신이 지배한 겨울
공포와 불신이 지배한 겨울
  • 류지연 기자
  • 승인 2020.02.04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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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 김용주 기자, 그래픽=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일명 신종 코로나는 불과 며칠 사이에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하루하루 급변하는 상황이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가 이제는 좌절하게 된다. 갈수록 커져가는 공포와 불신, 언제쯤 이 사태가 진정될까?

1월 28일, 상해의 홍교(虹桥, hóngqiáo) 공항에서 출발하는 김포행 비행기를 타고 급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길 중국 공항에서의 풍경은 신화에 나오는 엑소더스(exodus)를 현실세계로 가져온 듯했다. 저녁 시간 2대의 한국행 비행기가 있었는데 체크인 구역에는 귀국을 서두르는 한국인들로 빽빽하게 몇 겹의 줄이 늘어서 있었다. 아이 학교의 옆 반 친구 가족, 남편 회사 동료들의 가족 등 아는 얼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중국에서 (믿기지 않게도) 일상이 된 풍경이지만, 모든 이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에 사는 나와 지인들에게 신종 코로나는 강 건너 불구경 정도의 수준이었다. 춘절(春节, chūnjié, 1/24~30) 바로 전주까지도 수많은 이들이 모이는 학교 행사는 일말의 걱정 없 이 진행됐을 뿐 아니라 춘절 직전인 1월 22일에는 2월에 매주 금요일 아이 학교에서 열릴 예정인 학부모 교육까지 참석 신청을 해놓았었다. 1월부터 간간이 나오는 신종 코로나 뉴스를 봤지만 우한이 소주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이고(대략 750km 정도라고 한다) 소주에 환자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없었기에 타오바오에서 물건을 시킬 때 우한 지역에서 오는 물건은 피하는 정도만 생각했던 터다.(소주 지역의 확진 환자는 1월 21일 처음으로 발생했다.)

소주 교민들의 단톡방(카톡 ‘신소주한인정보방’)에서는 1월 20일 처음으로 신종 코로나 관련 이슈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첫날은 누군가가 퍼온 주상해대한민국총영사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 관련 안전공지’ 한 건 뿐이었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없었다. 둘째 날인 1월 21일에는 오늘부터 공항에서 폐렴 관련 체온 조사를 하니 모든 이들은 이륙 4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하라는 공지가 공유되었고, 이날 처음 소주에서 확진 환자가 나왔다. 22일은 조용한 편이었고, 23일에는 소주 2번째 확진환자로 의심되는 중년여성이 나왔으니 어디어디를 가지 말라는 일종의 ‘카더라’ 통신이 퍼졌다. 24일에는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품절된 곳이 많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춘절 기간 나들이 삼아 1월 24일 인근 도시 항주를 향했을 때도 마스크를 잘 쓰고 다중이 이용하는 수영장 정도만 피하면 되겠거니 생각했을 뿐, 호텔 입구에서 체온을 재는 것에서도 큰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그때부터 평소 중국답지 않게 호텔의 직원들뿐 아니라 손님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것에 다소의 경각심이 들었다.

그러던 것이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더니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당초 2박을 계획하고 왔었는데 남편은 갑자기 회사에서 가족들을 귀국시키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혹시 도로가 봉쇄될 수도 있으니 어서 소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도로봉쇄라는 건 남편의 지나친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춘절이 지나고 전국 각지의 고향으로 돌아갔던 이들이 이동하게 되면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리란 생각은 들었지만 아직 확진자 숫자가 심각하게 와 닿지는 않았다.

1월 26일이 되자 소주시는 중대 결단을 내린다. 모든 회사들은 2월 8일까지, 학교들은 2월 17일까지 춘절 휴무를 연장한 것이다. 그리고 남편 회사 동료들은 속속 가족들을 한국으로 보내기로 한다. 다들 춘절이 끝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가야 한다며 바로 다음날 출발하는 비행기부터 예매를 시작했다. 내 경우는 원래 이 사태와 상관없이 1주일 정도 한국에서 병원 진료를 하며 보내려던 참인데, 시국이 이렇게 되다 보니 이제 1주일이 아니라 장기 체류를 생각해야 한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소주대학교 전경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소주대학교의 경우도 26일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숙사를 비우고 2월 23일 이전에는 학교로 돌아올 수 없다는 통지를 보냈다. 이제 상황은 소주시에 국한된 게 아니라 중국 전역의 문제라는 게 분명해졌다.

1월 27일이 되자 낮 12시부터 소주 고속도로 32개 톨게이트를 폐쇄한다는 충격적인 기사가 뜬다. 과연 내일 공항에 갈 수 있을 것인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확진자가 막 발생한 소주가 도로를 봉쇄할 정도면 확진자가 두 자리 숫자인 상해는 공항 폐쇄도 가능하겠다 싶어 마음이 술렁인다. 그리고 이 날부터 카톡 단체방에는 온통 시국 관련 이슈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가장 많은 부분은 공항 가는 도로 상황 및 공항 상황 공유였다.

다행히도 소주를 드나드는 모든 톨게이트를 폐쇄한 게 아니라, 일부 갈라지고 합쳐지는 구간들의 톨게이트를 폐쇄해서 공항은 갈 수 있다는 말에 한시름 놓았다. 그렇지만 톨게이트에서 일일이 차를 멈추고 체온검사를 한다고 해서 이 역시 긴장이 됐다.

드디어 귀국일인 1월 28일. 저녁 6시 15분 비행기였지만 톨게이트 체온검사가 오래 걸린다는 정보를 접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도로에는 사람과 차량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옆을 지나는 버스를 보니 텅텅 빈 채 달리고 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도 거의 차량을 보지 못했는데 톨게이트 근처에 가니 그제야 차량들이 꽉 막힌 채 서있다. 30분이 넘게 기다리다가 드디어 창문을 내리고 체온 검사를 받았다. 최근 후베이성에 다녀온 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귀 체온계와 비접촉식 체온계 두 가지를 무작위로 사용하는데 귀 체온계는 소독은 잘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위클리서울/ 김용주 기자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가득해서 오히려 이곳에서 전염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고 기내식도 안 먹었다는 지인들도 있었다. 긴장되는 비행을 끝내고 김포공항에 내렸다. 이곳도 녹록치 않다. 며칠 전부터 콧물이 나기에 건강상태 질문서에 ‘콧물’을 표시했더니 이것저것 여러 가지 항목을 물어보며 방호복을 입은 검사관에게 보내 재확인을 시킨다. 우한이나 후베이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콧물이 관련 증상이라고 생각지도 않은 터라 조금 억울했다. 세 번의 체온검사를 거쳐 1339안내서 한 장과 함께 드디어 공항을 빠져나온다.

귀국은 했지만 당분간 출입이 자유롭지 않을 것 같다. 시시각각 심각해지는 중국 분위기를 느끼고 엑소더스를 경험하고 나니 중국 입국자라는 것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진다. 입국 후 14일 동안은 병원 전산에 중국 입국자라고 뜨기에 관련 증상 이외의 증상이더라도 진료를 거부하는 병원도 있다고 한다. 그런 일을 겪은 이들이 정보방에 속속 나타나니 당분간은 병원 진료도 미뤄야 할 듯하다. 혹시 나중에 확진자로 판명되면 그들이 다녀간 병원은 폐쇄가 되는 상황인지라 병원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중국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며칠이지만 의료의 사각지대에 선다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상당히 억울하다.

한편으로는 큰 위기를 겪으면서 정보방의 교민들이 똘똘 뭉치고 서로를 돕는 상황이 가슴 뭉클하게 와 닿았다. 정보방의 방장은 소주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사장님인데, 평시에도 자원해서 응급상황 SOS로 본인 연락처를 공유하고 가게에서 비상상비약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줬던 분이다. 이번에도 앞장서서 자비로 상비약을 모으고, 필요한 이들 집에는 직접 약을 가져다주는가 하면 수시로 중요한 정보들을 가져와 공유해주면서 사람들을 다독이고 있다. 감화된 다른 이들도 상비약을 기부하고 서로 위로의 말을 나누면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있다.

소주에 비상근무중인 남편을 남겨놓고 온지라 마음이 편치 않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게 가장 암담하다. 한 달 정도 지나 2월 말에는 가겠거니 생각했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2월 내 잠잠해질 문제가 아니라 몇 달, 올 한 해를 다 넘길 수도 있는 문제가 될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서울 시내에도 인파가 줄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늘어난 풍경을 보니 여기라고 딱히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내일은 또 어떤 뉴스가 떠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까. 공포와 불신이 지배하는 올 겨울이 참으로 길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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