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조금이라도 겸손합시다
새해에는 조금이라도 겸손합시다
  • 박석무
  • 승인 2020.01.06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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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김용주 기자
ⓒ위클리서울/김용주 기자

[위클리서울=박석무] 묵은해가 가고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는 정말로 시끄럽고 사나운 싸움만 계속되던 해였습니다. 특히 정치판, 국회는 난장판에 가깝게 온통 싸움으로 지샌 해였습니다. 그만하고 이제는 조금이라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민주주의 국가는 그 기본이 정당정치에 있습니다. 정당끼리 경쟁하여 국민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정당이 집권하고, 다음 선거에서 패하면 이기는 정당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그야말로 경쟁을 통해 라이벌을 이겨야 집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정책이나 올바른 시정(施政)을 통해 국민의 많은 지지를 얻도록 상대당과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합니다. 

때문에 상대당은 싸워서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이겨야 할 라이벌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정치는 라이벌과의 경쟁이 아니라, 적과의 싸움만 계속되며, 죽이냐 살기냐의 험악한 싸움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쟁과 같은 싸움에서 벗어나 선의의 경쟁을 통한 집권을 원한다면 딱 하나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의 잘하는 일에는 승복하면서, 자신들에게 반대파들이 승복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내고 그것을 실천할 의지를 국민들에게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겸손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여 겸손한 자세를 지니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정권을 잃고 되찾으려는 정당 사람들, 정권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잘못한 일에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낮추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이라는 어휘에 해당하는 행위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을 통해 인격의 수양이 이뤄져야만 가능합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하여 남이 자신을 무시하고 인정해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사람이 군자라고 말하여, 알아주지 않아도 의젓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그런 인격, 바로 그것은 겸손함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산은 흑산도에서 귀양 살던 정약전 형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기거하던 주막집 노파의 뛰어난 지혜에 감복하여 “저는 노파의 말을 듣고 흠칫 크게 깨달아 존경 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천지간에 지극히 정밀하고 오묘한 진리가 이렇게 밥 파는 노파에게서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기특하고 기특한 일입니다.”라고 말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에 대한 노파의 훌륭한 지혜에 머리 숙였던 다산의 겸손한 자세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냥 있으면 남이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온갖 극단적인 막말을 늘어놓고, 삭발을 했다가, 단식을 했다가, 몸으로 가로막는 극한투쟁도 불사하는 정치판을 보면, 꼭 저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당하게 반대당의 잘못을 지적하고 성토하면 온갖 언론 매체가 빠짐없이 생생하게 보도해주는데, 왜 그렇게 극단적인 싸움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모든 정치판은 이제 조금 겸손해져야 합니다.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는 일은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산은 말했습니다. “스스로 높다고 여기면 남들이 끌어 내리지만 스스로 낮다고 여기면 남들이 위로 밀어 올려준다(自上者 人下之 自下者 人上之:『주역』겸괘((謙卦)해석)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스스로 부족하고 낮다고 여겨야만 경쟁에서는 이길 수 있습니다. 전쟁이야 남을 죽여야만 이기지만, 경쟁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야 없이 모든 정치판, 새해에는 조금 겸손해져서, 싸움판을 경쟁의 장으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해봅니다. 자기들만 잘났다고 억지를 부리는 일은 결코 겸손한 태도는 아닙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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