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휴가 보내기
코로나 속 휴가 보내기
  • 류지연 기자
  • 승인 2020.08.2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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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중국으로 돌아온 지 어느덧 두 달에 가까워졌다. 입국 필수절차인 2주간의 격리가 끝난 이후 길 것만 같던 아이의 방학도 드디어 8월 13일자로 끝이 났다. 두 돌 때까지 육아휴직을 하며 집에서 아이를 돌보던 시간 이후로 아이와 24시간을 이렇게 온전히 길게 보내본 적이 없었다. 무려 1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참으로 긴 6개월이었다.

코로나시대를 보내며 외출을 자제한 게 습관이 된 건지, 아니면 외출 시 코로나가 걸릴지도 모른다는 아이들 특유의 불안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이는 요 몇 달 집순이가 되어버렸다. 도무지 어딜 나가자고 해도 나가질 않는다. 집에서 그저 치대면서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노는 게 일상이 되었다.

7월에는 소주에도 내내 비가 내렸기에 집에만 있어도 그러려니 싶었다. 8월이 되면서는 장마가 그치고 무덥긴 하지만 중국에서 흔치 않은 ‘미세먼지 없는 날’이 계속되어 산책이라도 갔으면 싶은데 격하게 거부한다. 오죽하면 학교도 안 가고 집에만 있고 싶단다.

 

미세먼지 없는 소주의 풍경 –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동방지문(东方之门,dōngfāngzhīmén)의 선명도로 그날의 먼지 상태를 추측할 수 있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그래도 어디든 끌고 나가야지 싶어 인근 상해의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 휴가를 다녀오긴 했다. 놀랍게도 아이는 4일 내내 호텔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수영장만 하루 두 번 다녀올 뿐, 점심과 저녁도 모두 호텔방에서 메이투안 와이마이(美团外卖, mĕituánwàimài – 중국의 음식/약 등 배달앱)로 시켜먹는 기염을 토했다. 호텔 안에만 있을 거면 굳이 두 시간 넘게 힘들게 차를 타고 다른 도시를 올 필요가 없었는데, 외출을 완강하게 거부하니 어쩔 수가 없다.

작은 소득이라면 오며가며 상해의 한인타운인 홍췐루(虹泉路, hóngquánlù)의 맛집을 처음으로 방문해본 거랄까. 홍췐루는 어떤 곳인가. 소주 한인들 말로는 중국에서 한국 음식이 제일 맛있는 한인타운이란다. 한국에서 먹던 맛과 같단다. 남편에 따르면 엄청 맛있는 순대국이 있어 회사 동료 중에는 퇴근길에 들러서 사오는 사람도 있단다. (참고로 소주 도심에서 홍췐루까지 거리는 대략 80킬로미터이다.)

이전에 상해 사는 친구 H를 따라 홍췐루를 한번 가본 적은 있다. 그 때 갔던 떡볶이집은 그냥 평범한 동네 분식집 맛이기에 홍췐루의 명성을 몸소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H에게 소개받은 갈비탕집(포정-庖丁, páodīng: 庖는 부엌, 丁은 일꾼이란 뜻으로 합쳐서 ‘요리사/주방장’이라는 뜻이다)은 제법 맛있었다. 일단 놀란 건 가격이다. 소주에서는 갈비탕이 한 그릇에 60~70위안(한화 약 1만~1만2000원)씩 하는데 여기는 기본 갈비탕이 45원(한화 약 7700원)이다. 과연 이런 게 대도시 규모의 경제인가 싶다. 거듭 말하지만 소주도 인구 1000만이 넘는, 중국의 신(新)일선도시에 당당하게 뽑힌 대도시이다. 그렇지만 상해에 비하면 마치 바위 옆의 자갈처럼 작고 겸손하게 느껴진달까. 갈비탕 한 그릇에서 일선도시와 신일선도시의 차이를 보는 순간이었다.

*신(新)일선도시란?

선(线)은 경계선, 기준을 나타낸다. 중국 최고의 경제 전문 매체로 손꼽히는 제1재경·신일선도시연구소가 170개 브랜드의 경제활동, 19개 인터넷회사의 이용자 활동 및 데이터 기구의 도시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중국 338개 도시에 순위를 매긴 결과물이다. 상업자원 집약도, 도시 중심성, 도시인 활약도, 생활양식 다양성, 미래 가소성 등 5대 지표로 점수를 매긴다. 쉽게 말하면 도시별 체급 구분, 도시의 계급사회화이다.
2020년 5월 기준으로 일선 도시(4), 신일선도시(15), 이선도시(30), 삼선도시(70), 사선도시(90), 오선도시(129)가 있다. 일선도시는 전통적으로 북경/상해/광주/심천이다. (2018년엔 상해가 북경을 제치고 1등을 하기도 했다.) 2020년 15개 신일선도시에는 청두(成都), 충칭(重慶), 항저우(杭州), 우한(武漢), 시안(西安), 톈진(天津), 쑤저우(蘇州), 난징(南京), 정저우(鄭州), 창사(長沙), 둥관(東莞), 선양(瀋陽), 칭다오(靑島), 허페이(合肥), 포산(佛山)이 선정되었다.

 

사진 2) 일선도시의 장대함을 느낄 수 있는 전경 – 상주인구 1530만명인 광주(广州)의 도심 전경(출처: 바이두백과)
일선도시의 장대함을 느낄 수 있는 전경 – 상주인구 1530만명인 광주(广州)의 도심 전경 ⓒ위클리서울/ (출처: 바이두백과)

짧은 휴가를 다녀오긴 했지만 집에 있기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격리기간부터 한 달 넘게 윗집에서 들려오는 공사소리였다. 처음 천장을 온통 깨부수는 것 같은 드릴 소리가 연이어 날 때는 한국처럼 며칠 마룻바닥이나 화장실 공사를 할 때만 소리가 나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도 도무지 소리가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하루는 아침 8시부터 온 집안이 떠나가라 드릴 소리가 울린다. 참다못해 부동산 사장님께 도움을 청했다. 부동산 사장님 왈, 중국에서는 인테리어 공사가 6개월, 1년씩 걸린다는 것이다.

신축 아파트 공사도 아니고 헌 집 인테리어 공사가 6개월? 반년 넘게 공사 소리를 듣고 산다는 건 삶의 피폐 그 자체다. 정말 그렇다면 이 집에서는 못 살 것 같다고 했더니 윗집에 확인하고 오신단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앞으로 두 달 뒤면 끝난다고 한다.

6개월, 1년씩이나 걸려서 얼마나 화려하고 예쁘게 인테리어를 할까 싶은데, 적은 경험이나마 여기저기 다녀본 바에 의하면 인테리어 수준이나 기술이 우수하지도 않다. 창문에 실리콘 처리가 제대로 안 되어 비가 샌다거나, 화장실 배관이 일자라서 야릿한 하수구 냄새가 올라오는 건 흔한 경우다. 아랫집에 물이 샌다고 화장실 바닥의 물청소를 금지하거나 배관이 막힌다고 변기에 휴지를 넣지 말라고 임차인에게 못 박는 집도 부지기수.

 

사진 3) 이해하기 힘든 중국의 설계: 주방 수납장 안에 들어있는 가스배관/밸브와 가스검침기 – 덕분에 가스밸브는 365일 24시간 열어놓고 쓰며 수납장에 물건을 제대로 들일 수가 없다.
이해하기 힘든 중국의 설계: 주방 수납장 안에 들어있는 가스배관/밸브와 가스검침기 – 덕분에 가스밸브는 365일 24시간 열어놓고 쓰며 수납장에 물건을 제대로 들일 수가 없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주말에도 울리는 공사 소리를 피해 하루는 단체여행을 떠났다. 지인을 통해 ‘쑤저우 패밀리’라는 프로그램을 추천받았는데, 국제학교 교사의 부인인 가이드가 체험이나 당일 여행, 1박 여행 등 소주 인근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한 주에 한 번꼴로 운영하고 있었다. 영어/중국어로 안내를 해주고 관광버스를 빌려서 다 같이 이동하는 방식이라 그런지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거나 소주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유익해 보였다.

우리 가족이 신청한 프로그램은 금계마을(锦溪镇, jĭnxīzhèn)이라는, 천변에 자리잡은 옛날 마을을 둘러보고 인근의 전통주 양조장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여행 당일 일찌감치 일어나 관광버스를 타는 약속장소로 향했다. 한눈에도 활달해 보이는 가이드는 ‘suzhou family’라고 써진 깃발까지 들고 있었다. 깃발을 졸졸 따라가는 단체여행이라니,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수학여행을 가는 느낌이다.

 

사진 4) 금계마을 초입의 호수 풍경 – 수면을 빽빽이 덮은 연꽃 위로 비죽 솟아오른 다리가 기념엽서 속 풍경처럼 곱다.
금계마을 초입의 호수 풍경 – 수면을 빽빽이 덮은 연꽃 위로 비죽 솟아오른 다리가 기념엽서 속 풍경처럼 곱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금계마을의 풍광은 정말 아름다웠다. 복병이라면 체감온도가 45도인 무더운 날씨.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들끓는데 마스크를 쓴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지라 마스크를 쓰기 힘든 날씨이긴 하지만 요즘 중국 분위기는 비단 더워서 안 쓰는 게 아니라 코로나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곳에 입장할 때 어른들은 체온 검사를 하긴 했지만 건강코드 검사라든가, 마스크 미착용자 제재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관광지에 사람이 빽빽하게 스쳐지나갈 만큼 모인다는 것 자체가 세계적인 거리두기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르다.

오전의 불볕더위를 지나 오후 일정은 실내에서 이루어져 그나마 다행이다. ‘만삼주장(万三酒庄, wànsānjiǔzhuāng)이라는 이름의 장원은 과거 ‘만삼’이라는 이름의 주인이 처음 술을 만들기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 장원 인근의 쌀과 물로 빚은 기본 황주부터 과일, 꽃 등 다양한 재료를 첨가한 황주까지 직접 시음하고, 향을 맡거나 술이 빚어지는 소리를 들어볼 수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술병에 그림 그리기 체험이 마련되어 있어, 잠시 어른들끼리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사진 5) 만삼주장의 입구, 엽전과 주판 모양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재미있다. 만삼주장에서 빚어내는 황주처럼 고운 황금빛을 띄고 있다. (출처: 바이두)
사진 5) 만삼주장의 입구, 엽전과 주판 모양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재미있다. 만삼주장에서 빚어내는 황주처럼 고운 황금빛을 띄고 있다. ⓒ위클리서울/ (출처: 바이두)

오랜만에 남이 시키는 대로 돌아다니며 새로운 곳을 체험하니 저절로 알찬 하루를 보낸 느낌이라 뿌듯했다. 다음에도 쑤저우패밀리를 통해 소주의 새로운 공간과 경험들을 찾아보리라.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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