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 리스트에 ‘나’를 더했다
좋아하는 것 리스트에 ‘나’를 더했다
  • 구혜리 기자
  • 승인 2020.10.14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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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위클리 마음돌봄: 열한 번째 돌봄, 우리 이야기

[위클리서울=구혜리 기자]  아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음 이전에 질병과 사고를 완전하게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잘 이겨낼 수는 있다. 도리어 이를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이의 삶은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몸이 아프면 온 신경은 아픈 부위에 집중된다. 하물며 감기나 생채기 하나에도 처방을 받거나 적절한 요법을 취하는데 마음에 난 상처에는 유독 무관심하다. 하지만 마음에도 돌봄이 필요하다. 위클리 마음돌봄은 삶에 관한 단편 에세이 모음이다. 과열 경쟁과 불안 사회를 살아가는 당사자로서 스스로와 사회를 돌아보는 글이다. 글쓴이의 마음의 조각을 엿보는 독자에게도 작은 위로를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그냥, 우리들의 이야기

요즘 즐겨보는 웹툰은 N사 ‘아홉수 우리들’이라는 작품이다. 주간의 끈질긴 기다림이 지겨워 드라마도 연재물도 멀리하지만 막상 업로드를 보면 썸네일 속 ‘우리’처럼 파- 하고 미소가 번지는 작품이다. 일단 그림체가 귀엽다. 90년대 밀레니얼 세대의 향수를 일으키는 틴 매거진 일러스트 같은 그림체가 익숙하고 편안함을 준다. 아홉수 우리들에는 아홉수를 맞은 세 명의 ‘우리’들과 옛 연인, 가족, 새로운 인연, 직장 동료들이 얽히고설켜 등장한다. ‘우리’들은 청소년기를 함께 보내온 소꿉친구다. 성향도 취향도 모두 정반대지만 우리라는 이름으로 1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베스트 프렌드다. 가벼운 그림체 속에 세 ‘우리’가 주는 메시지는 딱 지금의 우리들, 밀레니얼 세대 여자들의 삶, 고민과 애환을 무겁게 담고 있다. 미소를 머금고 읽다보면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다.

스물아홉 김우리는 공시생이다. 교수 아버지, 초등학교 교감인 어머니, 의사 오빠가 있는 엘리트 집안에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말썽부리는 일 없이 착한 딸, 착한 동생으로 29년 살아온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공황장애 증상을 느낀다. 이를 눈치 챈 오빠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지만 우리는 상담을 중도 포기한다. 담당의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노트를 선물한다. 한참이 지난 어느 일상 속에서 우리는 노트를 꺼내 왼편에 좋아하는 것과 오른편에 싫어하는 것을 적어 내려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맛있는 거. 매운 떡볶이. 돈가스도 좋고. 간장치킨! 치킨은 다. -빵-케이크. 소시지빵. 샌드위치. 카페가기. 아비라.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플랫화이트. 아포카토. 밀크티. 얼그레이쉬폰. 편의점 알바. 도시락 싸기.

내가 싫어하는 것들. 독서실. 시험. 압박. 열등감. 불안감.

이내 우리는 싫어하는 것들 속에서 스물 아홉 자신의 삶을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느라 정작 자신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하고 삶을 싫어하는 것들로 채우고 있던 스스로에 대해 미안함의 눈물을 터뜨린다.

 

우리들의 구원자는, 우리들 자신이다

지난 해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충격적인 통계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설문 내용은 우울과 스트레스가 있을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해 누구를 찾아가는지에 대한 것이었고, 응답 결과 1위를 차지한 선택지는 가족도 친구도 전문 상담사도 아닌 ‘점집’이었다.

해석은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다. 비약적으로 과학이 발달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 역시 여전히 과거의 일부를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이며,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비합리성, 민간 토속 신앙, 주술적인 수단에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하거나. 우리 사회가 마음의 질환에 대해 의료기관, 전문가 집단을 이용하는 것에 굉장히 폐쇄적이고 소극적이라는 것과. 한편으로는 친밀한 관계에서 속내를 꺼낼 수 없는 사회의 경직성을 읽을 수도 있다. 인간이 쏘아올린 비행선이 태양계 너머 우주를 접하는 오늘날 이 땅 위 거리마다 점집이 늘어선 모습은 아이러니 하다. 어쩌면 문제를 일으킬 만한 뒷말도, 진료기록도 남지 않는 단편적인 관계에서 상담과 조언을 위한 주술적 권위를 합성한 쉬운 자리가 아닐까.

그러나 주술적 치료는 근본적인 해답을 줄 수 없다. 마음에 난 상처에 가장 필요한 상담사는 바로 자신이다. 이 상담사가 택하는 치료술은 ‘듣기’인데,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야만 이를 터득하고 처방전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인지해야 비로소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경험’이 필요한데, 이것이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삶과 사람에 부딪혀 살아가는 이유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주지 않으면 그 어떤 경험으로부터도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할 때 강해진다

나는 라이언 고슬링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중학생 때 처음 본 영화 ‘노트북’을 보고 남성 주연 인물인 노아를 좋아했다. 대학에 들어와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을 맡은 ‘라라랜드’에서 그의 모습이 크게 매력적이지 못했고, 두 인물 특성의 차이에서 주관적 연애관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 이 외에도 레이첼 맥 아담스, 엘리자베스 데비키, 크리스틴 스튜어트, 음, 한국에서는 JYP 소속이 좋다.

요즘에는 마음이 복잡해지면 소설을 찾는다. 연세대학교 최건영 교수님 영향이 큰데, 그 분의 강의에 따라 폴란드 문학 <인형>을 읽고 있다. 소설 속에서 ‘혼란 그 자체네’ 라고 생각하며 인물의 복잡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시간이 재밌다. 작품을 통해 19세기 폴란드를 살아가다가 작가 프루스를 비롯한 다른 폴란드 작가들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도 읽고 싶어져 ‘하고 싶은 일 리스트’에 적었다.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아 글에 담고, 땀 흘리며 몸을 움직이는 것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반면에 무료함과 지루함, 불편한 채로 멈추어 있는 것, 청결하지 못한 상태를 싫어한다.

이 모든 것들은 소중한 나 자신을 위해서 보내온 시간들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여전히 나는 사람들을 통해 그들과의 관계와 경험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해가고 있다. 필요할 때 리스트를 꺼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시간의 조각을 채워주면 지친 마음, 상처들을 아물게 할 수도 있다. 리스트를 정리해갈 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복잡한 것들 사이에 모든 방해물을 지워낸 나 자신이었다. 좋아하는 것 리스트에 하나를 더했다.

가장 사랑하는 것,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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