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이별은 없다
익숙한 이별은 없다
  • 구혜리 기자
  • 승인 2020.08.0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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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위클리 마음돌봄: 일곱 번째 돌봄, 이별을 배운다

[위클리서울=구혜리 기자] 아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음 이전에 질병과 사고를 완전하게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잘 이겨낼 수는 있다. 도리어 이를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이의 삶은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몸이 아프면 온 신경은 아픈 부위에 집중된다. 하물며 감기나 생채기 하나에도 처방을 받거나 적절한 요법을 취하는데 마음에 난 상처에는 유독 무관심하다. 하지만 마음에도 돌봄이 필요하다. 위클리 마음돌봄은 삶에 관한 단편 에세이 모음이다. 과열 경쟁과 불안 사회를 살아가는 당사자로서 스스로와 사회를 돌아보는 글이다. 글쓴이의 마음의 조각을 엿보는 독자에게도 작은 위로를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위클리서울/ 구혜리 기자

오롯이 혼자 채우는 일상

이번 이별은 유독 아팠다. 이제까지의 연애와는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고, 이전과 다른 태도로 사랑을 대했기 때문에 이별도 그랬나보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관계를 만드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이별을 마주해야 한다. 헤어짐 속에 상처, 후회, 아픔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비로소 자신을 만들고 성숙해진다. 좋은 이별은 없다는데 반대로 나쁜 이별도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이겨내야 할 과제, 성숙을 위한 거름이 될 테니까.

첫 사랑과 헤어질 때처럼 상처가 깊게 들어왔다. 첫 사랑이 이뤄질 수 없는 이유는 서툴러서, 첫 이별이 힘든 이유는 영원할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을 돌아 마침내 꼭 맞는 퍼즐 하나를 찾은 것처럼 이 사람과도 영원을 꿈꾼 적이 있다. 그래서 첫 사랑만큼 아프고, 서로 섞어낸 일상을 뜯어내기 고통스러웠다. 무기력함이 얼마나 갈까 예견하건대 못해도 한 달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아니더라. 고통은 딱 하루, 슬픔은 일주일 정도에 그쳤다.

이별도 연습이 필요하다. 모든 만남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만남보다 끝을 정리하는 게 훨씬 어렵고 수고롭다. 처음 하는 이별도 아닌데 헤어질 때마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필자다. 첫 이별에는 터져 나오는 슬픔을 견디기 어려워 서적을 찾고, 사람을 찾고, 이 고통을 객관화하려고 노력했다. 이 사람은 A라고 이야기 하고, 저 사람은 B라고 얘기할 때 결국 답은 내 안에 있음을, 혼자 이겨내야 함을 알아갔다. 이별이 어려운 이유는 많다. 이 사람 외에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아직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지난 행동이 후회되어서. 하지만 이유가 뭐가 되었든 우린 헤어졌고, 다시 혼자가 된 나를 위해 이 관계를 잘 정리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이별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 홀로 나아가야 하는 시기에 서로를 만나 당신도 참 많이 아팠겠다. 초조한 마음에 당신에게 의존하면서 나는 나를 작게 만들었다. 꿈을 잊고, 나를 잊을 때마다 당신을 불러 안도했다. 그건 당신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는 서투르지만 성숙하게 서로를 사랑했고, 마지막을 웃으며 인사하고 보내줄 법도 배웠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기에 나는 이별도 사랑으로 부르고 싶었다. 미안함, 책임감, 고마움, 배려, 이런 것들은 연인이 아닌 관계에서도 사랑으로 부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다시 홀로 일어서려 한다. 당신이 아닌 삶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내가 꿈꾸던 내 모습을 찾아 나를 더 사랑해주려 한다. 또 그것이 이제부터 내가 당신을 사랑할 새로운 방식이다.

 

ⓒ위클리서울/ 구혜리 기자

관성의 법칙

일을 하다가도 아직 당신과 연락해야 한다는 관성을 느낀다. 자고 일어나 안부 인사를 확인하고, 밥은 먹었냐 일은 괜찮냐 일상을 침투한 서로를 가득 채우던 연락, 잠들기 전엔 꼭 몇 분, 몇 시간씩 전화를 켜놓고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막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우리에게도 이별이 있다는 게 놀라 산산조각 난 일상을 주워 담기 급했다. 상처가 아물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부재가 익숙해질 즈음, 다시 내 일상은 당신에게 돌아가려 관성을 부린다.

아무렇지 않게 연락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받아줄까. 바쁜 일 때문에 연락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새로운 관계에 이미 나를 지웠을 수도 있지,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다보면 서글퍼진다. 우린 꼭 헤어져야 했을까. 사실 당신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당신을 온전히 가졌다고 생각했는지 이별 후에야 의구심을 갖는다. 연인은 수많은 관계 중 하나일 뿐이라 언제든 끝날 수 있음을 그때는 미처 인식하지 못한다.

“좋은 이별이 어디 있어. 밑바닥까지 다 보고 너덜너덜 해지고 그제야 헤어졌구나~ 정신 차리는 거지. 누구 하나 나쁜 새끼 되기 전까진 헤어진 거 아니다~.”

예쁘게 이별을 포장하다보면 결코 이별에 닿을 수 없는 자기 함정에 빠진다. 시간을 씹어내며 상대의 못나고 추악한 모습을 벗겨내야 비로소 우리는 그 나쁜 새끼와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아주 솔직히는, 나는 정말 그를 좋아했다. 그의 몸을 좋아했고, 작고 예쁜 눈매를 좋아했고, 하얀 미소를 좋아했다. 그의 못난 모습, 찌질하고 바보 같은 모습도 좋아했다. 차갑게 식은 목소리와 아프게 찔러 낸 마지막 말조차도.

IT기기를 바꾸는 건 모든 면에서 낯설어진다. 자동 로그인을 해둔 개인정보도, 익숙하던 툴도 모두 사라지고, 처음부터 다시 나에게 맞게 모든 것을 설정해야 한다. 관계를 맺고 끊는 것도 비슷하다. 아무 것도 없던 초기 상태에서 수고로움을 설렘과 달콤함으로 속아 하나씩 일궈내다 보면 나에게 가장 편하고 보기 좋은 상태가 된다. 얼마 안 가 삐걱거리고 잔고장들이 생기면 ‘끝낼 때가 되었구나’ 라더라. 이래서 새 기기를 구하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려다 보면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온다. 귀찮고, 수고롭고. 그래서 자꾸 옛날 것을 찾다보면 결국 일을 망친다. 하지만 돌아봐도 좋다. 내가 뭘 좋아했는지, 어떤 것에 익숙했는지, 그 때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는 어떤 바람직한 자세를 취하는 게 좋을지. 우리가 걸어온 흔적들에 답이 있기 때문에, 자꾸 돌아보며 답을 구해야만 한다.

혹시나 연락이 오지 않을까. 이 시기가 지나면, 이 여행이 끝나면 가볍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준비한 선물이 모니터 너머에 예쁘게 있다. 주지 못한 것들, 주지 못한 마음, 나누지 못한 대화들, 풀지 못한 오해들,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어 홀로 남겨진 모든 것들은 쓰고 아쉽다. 하지만 끝난 관계는 끝났기에, 홀로 남겨진 것들을 특별하게 만든다. 새로운 관계를 위해 배움을 주고 성장을 준 사람, 많은 것을 선물해준 소중한 그를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들 곁에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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