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뚫고 코끝에 휘감기는 그대
마스크 뚫고 코끝에 휘감기는 그대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1.03.22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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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나섰다. 사실 나들이랄 것도 없다. 늘 수업시간에 맞춰 출퇴근하고 간간이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를 들르는 것 외에 딱히 외출이라고 해 본 것이 전무하다 시피 산 게 1년 여였기에 더더욱 나들이 같았는지도 모른다. 아침 뉴스시간에 흘려들었던 날씨를 다시 확인했다.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옷차림이 신경 쓰였다. 봄이 오는 3월이라고는 하지만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온몸을 움츠릴까 걱정도 되었다. 버스가 오는 시간도 확인하고 교통카드도 챙기고 마음이 분주하다. 고작 시장을 가려고 나서는 길인데도 챙길 것도 많고 분주하다. 단단하던 꽃망울이 곧 터질 듯 말 듯 한 설렘이 이런 것일까. 그래, 봄이 오고 있다.

고3이 된 아들이 실내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학교 체육관 바닥 공사를 했는데 체육 선생님은 외부 신발을 신고 활동을 하면 바닥이 상할까봐 염려한 모양이다. 실내 활동용, 굳이 말하자면 체육관에서 전용으로 신을 수 있는 실내화를 준비하라고 했단다. 문제는 아들의 발 크기다. 과장해서 항공모함 급이라 동네 문구점이나 마트에서는 구하기가 어렵다. 실내화는 주 고객층인 초등학생 위주로 진열된 터라 280mm 거대화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창신동 문구시장으로 나서는 길이다.

버스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운전을 하며 보는 풍경과는 확연히 달랐다. 늘 긴장감을 장착한 채 신호등 불빛과 마주치는 차량들, 보행자 위주로만 보던 나의 시야가 부엉이를 능가할 만큼 확장되었다. 가로수도 보이고 봄맞이를 준비하는 길가의 화단도 보이고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눈에 띄었다. 아직은 앙상한 가로수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는 설렘도 느껴진다. 활동을 제한 받고 살았던 지난 세월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차창 밖 풍경은 참 편안해 보였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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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문구시장은 위클리서울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명소이다. 문구나 장난감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문구완구 도매시장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신학기 학용품을 사거나 어린이날 선물 준비를 위해서 종종 애용했다. 학급 친구들에게 단체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서 엄마들과 삼삼오오 짝지어 다녔던 추억들이 길거리마다, 상점들마다 묻어있다. 우산이나 필통을 대량 구매해서 학급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뿌듯해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 시절의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었거나 군대를 갔거나 혹은 고3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시간을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봄은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갔을까.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바뀌는 지도 모르게 흘려보낸 세월은 커가는 아이들의 그림자에 묻히고 깊어지는 내 입가의 주름 속에 갇히고 흐려지는 시야 속으로 숨어버렸다.

시장 거리는 아무리 걸어 다녀도 힘든 줄 모르겠다. 걸려 있는 스티커도 새롭고 신상 로봇 장난감들도 흥미롭고 우락부락 생긴 헐크도 귀엽다. 마스크는 하고 있지만 수줍은 바람이 코끝을 지나고 있음이 느껴진다. 오늘은 몇 번째 봄이 오고 있는 걸까.

280mm 거대 실내화를 사고 동대문 종합상가로 향했다. 걸어 다니는 게 힘도 들고 피곤해지기도 했지만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 좀 더 돌아다니고 싶어졌다. 장바구니 덜렁거리며 한가롭게 구경하고 다니는 이 시간이 얼마만인지 모른다. 게다가 언제 왔는지 모르는 봄바람이 내 옆으로 다가와 코끝을 휘감고 살랑거리다. 그리 싫지만은 않다. 마스크만 없었다면 조심스레 간지럽히는 바람결에 한껏 들숨이라도 쉬어 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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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지하상가의 뜨개실 상가 쪽으로 걸어갔다. 가끔 뜨개실이 필요하면 휴대폰 어플을 이용해 손가락 하나로 까딱까딱 하며 구매했었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점포들에 털실이 종류도 다양하고 형형색색 구비되어 있어 돌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밝은 형광색부터 대용량 실까지 정말 없는 게 없다. 게다가 샘플로 걸어 둔 작품들 또한 너무 멋지고 휘황찬란해 눈을 뗄 수 없다. 창작의 세계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닐까 싶다. 밝은 색은 밝은 색대로 가벼움과 화사함이 묻어나고, 짙은 색은 또 짙은 색대로 우아함이나 무게감이 느껴진다. 무엇하나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없다.

올 여름을 대비해 거실 커튼을 하나 떠 볼까 하는 생각에 신중히 실을 골라 보았다. 휴대폰 어플에서 보는 색감과는 확연히 다르다. 색깔 배색도 해보고 실의 굵기도 가늠해 보는 시간이 그저 즐겁다. 걸어 다니며 조금 힘들기도 했는데 그 피곤함마저 사라진다. 흔들리는 봄바람 앞에서 곧 터트릴 것 같은 꽃망울을 보는 것처럼 흥분되고 괜한 기대감마저 생기는 기분이다. 봄은 어쩌면 여기서 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힘들게 지난한 세월을 견디고 있는 동안 봄은 또 그렇게 어김없이 길거리에, 시장에, 사람들 속에, 그리고 내 마음에 슬그머니 다가서고 있었다.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은 그 시간들을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서든 이겨내려 무던하게도 애쓰며 버텨오지 않았던가. 생업을 멈춰야 했고, 지출을 줄여야 했고, 그 누구도 마음 놓고 만날 수가 없었다. 사실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를 만나지 못한 게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다. 내 가족을 내 의지대로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은 형벌에 가깝다. 멈춰 버린 시간들이 하루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겠지만 이제 좀 잦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은 간절하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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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도로 한 차선을 점령하고 있는 오토바이 한 무리가 눈에 띄었다. 배달 주문을 기다리는 배달 대행업체다. 예전에는 그런 오토바이들이 참 원망스럽고 싫었다.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고 차선 하나를 점령하며 주정차하고 있는 그들이 얄미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안쓰럽다. 저 오토바이들이 한 대도 남김없이 모두 임무 수행을 하기 위해서 자리를 떠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차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주문을 받고 짐을 나르고 그렇게 바쁜 생업의 시간들을 돌려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마스크를 뚫고 코끝에 휘감기는 그대를 온 몸으로 받아들일 그 날은 곧 올 테니 말이다.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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