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기각, 두 음절의 이 단어가 광복으로 읽힌다. 만세를 불러야겠지만 입이 안 열린다.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교도소를 나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다가 안 보여버린다.

나는 감히 당사자의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374회에 걸친 압수수색을 당한 사람의 가슴에 무슨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는가도 당연히 모른다. 그렇긴 해도 사람과 세상을 보는 내 눈은 많이 달라졌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8월 31일 무기한 단식을 선언하면서 개인방송을 시작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내 안에 내가 미처 몰랐던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심장이 쫄깃해진다는 게 무엇을 말함인지 어렴풋이나마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가슴이 한없이 쪼그라드는 것도 같고 무한히 팽창하는 것도 같은, 정신 못 차리게 벌렁거리는가 하면 내가 혹시 죽었는가 싶을 정도로 차악 가라앉아서 내 자신의 숨소리조차도 천둥처럼 낯설게 들리는, 일찍이 그 어떤 스릴러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강렬한 깨우침을 이재명의 단식라이브는 내게 주었다.

단식 초기에는 현장이 완전 개방돼 있었다. 누구나 들어설 수 있고, 누구나 민주당 대표 이재명을 금방 끌어안을 듯이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런 자리에 와서 굳이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나로서는 영 이해가 안 되었지만 어째든 뭐 그랬다.

이십대로 보이는 어떤 여성은 앳되게 상냥한 목소리로 열렬한 이재명 지지자임을 강조하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데 그 내용이 처음에는 너무 황당해서 철없다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찾아온 동기 자체가 불순했다. 티스푼으로 가끔 떠먹는 소금은 혹시 소금을 가장한 보약 덩어리 아니냐는 질문부터 지금 마시는 물이 사골 국물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확인해보고 싶다면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등 아무래도 지지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보는 사람의 느낌이야 어떻든 당사자는 개구쟁이 딸내미라도 대하듯이 배시시 웃으며 먹어보라는 등 그저 예쁘게만 봐주고자 하는 것 같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이른바 극우로 불리는 개인방송에 그 영상이 조롱의 소재로 떴다는 소문이 돌았고, 일부 신문과 방송이 즉각 그것을 인용하고 있었고, 이재명을 죽여야 한다고 외치는 정치세력들이 또한 그것을 받아서 공격의 소재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신문과 방송은 또 그것을 받아서 보도라는 명분의 새로운 제목을 뽑아내서 뿌리기 시작했다.

야아 참 사람이, 언론이, 정치가 저렇게까지 못난 짓을 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구나 싶어 혀라도 깨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보좌진들은 아마 경계를 강화할 필요를 느꼈던 모양이었다. 경찰이 주로 사용하는 폴리스라인 같은 줄이 단식장을 중심으로 쳐지고, 국회사무처의 방호요원이 배치돼서 밤이 늦은 시간에는 외부인의 출입 자체를 아예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 하루 깊은 밤에 여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날카롭게 잇따라 들렸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어도 강력한 항의 내지 저주의 목소리임이 분명했고, 그런 분노를 표시하기 전에 상당한 시간 동안 들어간다, 못 들어간다, 왜 못 들어간단 말이냐 등등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니 저거 왜, 혹시 길을 막고 있는 거예요?”

의아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재명의 입이 열리고, 옆에 있던 참모가 다가와서 귓속말을 했다. 이재명의 입이 다시 열렸다.

“들여보내라고 하세요. 막을 이유가 뭐 있다고.”

“한 번 열면 계속 열어야 하는 문제라서.”

“그게 뭐 어떻다고. 위험? 개인의 안전?”

물음표를 던져놓고 입을 꾹 다문 채 쓴웃음만 짓고 있는 이재명의 어둠 짙은 표정에서 나는 ‘검찰보다 위험한 건 지금 우리나라에 없어요’하는 메시지를 읽었다.

그 깊은 밤에 찾아온 여인들은 다섯 명이었다. 호미곶이 있는 포항에서 그날 일을 한 시간 앞당겨 끝내고 정신없이 달려온다고 달려왔지만 길이 하도 멀어서 열 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고,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가까이에서 그림자라도 한 번 봐야지만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저마다 훌쩍거리며 띄엄띄엄 그런 말을 겨우 하고 있는데 보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 와중에도 이재명은 농담을 하고 있었다.

“울지 마세요. 울면 나도 울고 싶어지니까.”

그렇지. 지금은 울 때가 아니지.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그날 밤 나는 잠을 못 이루고 수도 없이 그 말을 중얼거렸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다음 날 오후, 전날보다 더욱 기운이 없어 보이는 이재명의 얼굴에 갑작스런 꽃이 피었다. 그리고 좀처럼 들어볼 수 없었던 반말이 튀어나왔다.

“들어와라. 이리 와. 겁나 오랜만이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다가서는 두 남자가 화면에 비쳤다.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고 등만 보였다. 대략 이삼 분 동안, 몇 마디 주고받는 말로 미루어 오랜 친구들인 것 같았다. 친구들이 아쉬워하며 일어설 때 이재명이 주의를 주었다.

“카메라가 많아. 뒷걸음으로 나가. 모자도 좀 더 깊이 눌러쓰고.”

친구들이 나가고 난 뒤에 그는 카메라를 보면서 한 마디 했다. 열다섯 살 공장을 다닐 때 사귄 친구들이라고 했다. 함께 얻어맞으면서 공장을 다녔기 때문에 각별한 사이가 됐고, 그래서 마치 친형제와 느낌이 지금도 있는 친구들이라고 했다. 이어서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결심이 섰다는 듯 부언설명 한 마디를 붙였다. 이십여 년 전 시민단체 활동을 함께 했던 동지가 얼마 전 검찰의 느닷없는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많이 미안했다는 얘기였다.

얘기는 짧았지만 그 짧은 얘기 속에 어마어마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재명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과 한 번이라도 무슨 일을 같이 했던 사람은 누구라도 예외 없이 수사 대상으로 올라서 탈탈 털리고 있다는 거,

그렇게 치밀하고 집요하게 마치 저인망 어선의 그물처럼 씨를 말리고자 했는데도 아직 검찰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던가 보았다. 하긴 열다섯 살 소년들의 우정관계가 공식기록에 등재될 이유는 없었을 테니 제아무리 촘촘한 검찰의 그물도 어떻게 해볼 수는 없었겠지.

그렇다면 혹시, 그날 그 시간의 단식라이브를 검찰이 만약에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면 지금쯤 여의도 일대에 설치된 모든 카메라를 수거해서 분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면서 나는 소름이 돋기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어대고 말았다.

아니다. 오래 전에 이미 신상파악을 했을 것이다. 밥 먹고 하는 일이 그것이고,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그것인 검찰이 소년 시절의 우정이라 해서 그냥 넘어갔을 리 없다. 다만 그 친구들과 이재명의 하는 일이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서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라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그날 밤 이재명이 소년 시절의 우정을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주의를 준 것은 쓸데없는 유언비어 소재로 확대 재생산되는 일을 가능한 한 줄이고자 하는 판단이었을 거라고 해석하는 게 아마 합리적일 것이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다음 날 오후 유명 정치인이 단독으로 단식현장을 찾아왔다. 유명 정치인들의 방문이야 뭐 날마다 있는 일이었지만, 그는 특히 더 유명해서 관심을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멀리서 뒷모습만 봐도 이름 석 자가 그냥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혼자서 왔다.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혼자서 온 이유를 나중에 어렴풋이나마 유추할 수 있긴 했지만, 어쨌든 혼자서 불쑥 마치 땅에서 솟아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나타난 그는 보무가 매우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고, 거침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두 다리를 쭉 뻗으면서 앉았는데 흡사 그룹 회장이 상무나 전무의 방을 불시에 들이닥친 것만 같았다.

의자가 없어서 바닥에 앉아 있기가 불편했던지 그는 쭉 뻗었던 다리를 다시 거둬들이고, 두 손을 뒤로 돌려 자신의 상체를 받치는 자세의 비스듬한 형태로 앉았다. 그 바람에 그의 모든 것이 드러났다.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얼굴이 돋보이고, 툭 튀어나온 배가 또한 안 보고 싶어도 절로 보이고, 뭔가를 비웃는 듯이 조롱하는 듯이 웃음기를 슬쩍슬쩍 흘리는 그 평화로운 모습은 가히 오래 기억해둘 만한 장면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건방지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다른 아무 생각도 해보지를 못했는데 아차,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놓친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밤이 늦어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시간이었다. 평소에는 열 시가 넘으면 방송을 끄던 대표가 그날은 열한 시가 넘도록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한참이나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그의 입이 어느 순간 열렸다.

“허헛 참, 비례공천을?”

귀를 바싹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낮은 음성이었지만 비통했다. 자기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탄식이란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그런 탄성을 질렀다는 사실 자체도 아마 의식을 못 했을 것이었다.

아아 그랬던가 보구나. 그렇게도 거침없이 당당하게, 아니 어쩌면 거침없이 당당한 모습을 애써 보여주고자 하는 자세로 찾아온 이유가 거래를 제안하기 위함이었던가 보구나.

이것은 물론 그 어떤 근거도 증거도 없다. 그날 밤 당 대표 이재명의 입에서 부끄러워 말도 못 하겠다는 듯이 낮은 음성으로 튀어나온 비통한 음성이 나로 하여금 그런 막연한 추론을 하게 했을 뿐이었다.

막연한 추론이긴 했지만, 그 뒤로 들려온 각종 이야기와 전개된 상황을 보면 막연한 추론만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청구에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상당수가 동의했고, 심지어 어떤 국회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쩌면 얼떨결에 튀어나온 발언인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거래 제안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을 하고 있기도 했다.

정치란 이렇게도 음습하고 비열하고 냉혹한 종목임을 만천하에 민낯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고나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재명은 왜 중진으로 분류되는 그 유명 정치인의 거래 제안을 거절하고 구속될 수도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일까.

하긴 이재명이 그런 음습한 거래제안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 했을 것이다. 정치의 목적을 다수의 미래에 두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 개인의 명예와 욕망충족에 있는가 정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니까.

샛길이나 지름길을 거절하고 대로를 걷고자 하는 정면승부의 남자 이재명,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이다. 하긴 그래서 그렇게도 많은 못난이들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어떻게 해서든 악마로 만들고자 헛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겠지.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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