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받이 소리에 놀란 아내가 남편의 목을 움켜쥔 뒤에
씨받이 소리에 놀란 아내가 남편의 목을 움켜쥔 뒤에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0.06.11 09: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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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트랙터에 가득 올라타서
트랙터에 가득 올라타서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오랜만에 씨받이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이라고 했지만 내가 아는 씨받이는 영화 제목이거나 전설 같은 데서 주워들은 게 고작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믿음은커녕 그런 경우가 더러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도 사실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씨받이 얘기를 들었으니 횡재도 그런 횡재가 없었다.

그날의 화제가 그것이었다. 부부, 혹은 남녀 간의 문제가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다섯 시간 이상 펼쳐졌다. 그런 얘기를 하자고 해서 그런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냥 우연히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일 뿐이었다. 갯벌로 나가는 트랙터가 막 시동을 걸고 출발할 즈음이었다.

“그 여자가 왔어? 오매 시상에나 불쌍도 혀라.”

“아이고 아녀. 하나도 안 불쌍해. 서방도 하나 새로 데꼬 왔는디 어디 뭔 대학교수를 했다던가, 하여튼 인물스럽게 생겼더라고.”

덜컹대는 트랙터 안에서 수군거리는 그 얘기가 내 귀에 잡혔다. 사람 이야기라면 자다가도 깨어날 정도인 내가 대충 흘려듣고 말 까닭이 없었다.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대는 내가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듯이 여기서 저기서 거의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폭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옛날, 하고도 옛날 옛적에 한 젊은 여인이 저수지에 담금을 당해 죽을 뻔한 사건이 있었더란다. 노름에 미친 남편이 노름할 돈을 안 준다고 아내를 저수지까지 끌고 가서 저지른 사건이었다. 남편이야 그저 노름할 돈이 궁하고 눈이 멀어서 해본 공갈 협박이었겠지만, 크게 놀란 아내는 그날 밤으로 집을 나가버렸다. 그 뒤로 이십여 년, 그녀가 돌아왔다. 갯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었다. 물론 갯마을 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경운기도 달린다
경운기도 달린다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아따 근디 아자씨는 뭔 그런 것을 그렇게도 궁금해 한다요?”

이야기가 끝날 만하면 다른 각도에서 다시 묻고, 또 끝날 만하면 또 다른 각도에서 다시 묻고 있는 내가 이상해 보였다기보다는 아마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 웃음을 듬뿍 담고, 오꿈하게 뜬 눈을 잇달아 깜빡이며, 고개마저 갸웃거리며 뽀짝뽀짝 자꾸 다가앉는 할머니급 여인들의 꾸밈없는 표정이 나는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워서 역시 사랑스런 말투를 애써 흉내내본다.

“아 재밌응게 더 듣고 잡어서 그렇제. 재밌없음 뭐, 물어나 볼까?”

“하이고 참말로 내가, 못 살어, 못 살어.”

그 순간 이른바 박장대소라는 것이 터진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손 몇 개가 쑥 달려들어서 내 어깨를, 내 허리를, 내 등짝을 툭툭 치는데 아차 하면 엉덩이라도 토닥거려 줄 것만 같다. 그러니까 나는 그 순간 이를테면 귀염둥이가 돼 있는 셈이다.

사실로도 그렇다. 연치가 오십을 넘어 육십, 칠십에 다가서 있는 할머니급 여인들의 이야기에는 같은 이야기라도 뭔가가 더 있어 보인다. 삶의 경험에서 오는 직관적인 해석과 평가 그리고 예측 같은 것들이 손짓 발짓 등 각종 액션과 적절하게 섞이기 때문일 텐데 어쨌든 나로서는 듣고 또 들어도 물리지가 않고, 그래서 마치 정말로 무슨 귀염둥이 손자라도 되는 양 이야기 듣기를 보채고 또 보챈다.

물때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느라 마음이 그냥 가을날에 뒹구는 낙엽처럼 바삭바삭 건조해져서 무관심이 일상화 돼버린 바지락 작업 현장에서라면 꿈도 꿔볼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었다. 이 새로운 현상은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고민해볼 필요도 없이 자연이 인간에게 내어준 선물이다.

동죽이라 부르기도 하고, 미영조개라 부르기도 하는 조개가 고창의 곰소만 갯벌에 좍 깔렸다. 이 조개는 종패를 비싸게 사다가 뿌린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니 횡재도 이런 횡재거리가 없다. 예전에도 곰소만 갯벌에 동죽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다. 갯벌 체험을 나온 사람들이 몇 마리씩 캐 가기나 할 정도였을 뿐이었고, 갯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당 벌이도 안 되는 까닭에 팔을 걷어붙이고 캐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동죽 캐기 시작
동죽 캐기 시작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그런데 이제는 갯마을 사람들 거의 모두가 그 일에 나섰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이삼 년 전부터 동죽의 개체수가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많아진다 싶더니 작년부터는 아예 쫙 깔려 버렸다. 뭐냐 이거. 죽었던 갯벌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민챙이라는 이름의 생물까지 갯벌 가득 기어 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갯마을 사람들은 잊고 있었던 ‘자기 땅’을 찾아서 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방치했던 땅인지라 어디서 어디까지가 ‘내 땅’인지 알 수 없어 새삼스레 측량사를 불러다가 측량을 해야만 했다. 돌아보면 지난한 세월이었다.

갯마을 사람들이 양식업 면허를 처음 받을 당시만 해도 갯벌은 아무 데서나 바지락 조개를 잘 키웠다. 집을 나오면 바로 갯벌이고, 그래서 마치 텃밭을 가꾸듯이 양식장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정확한 시기를 특정할 수도 없는 어느 시기인가부터 갯벌은 조개를 키우는 게 아니라 죽이기 시작했다. 없는 돈에 달러 빚까지 내서 종패를 사다가 뿌리면 죽고, 또 죽고 하니 늘어나는 건 빚뿐이었다.

손가락이나 빨다가 죽어야 하는가. 아니다.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갯마을 사람들이 고민 끝에 찾아낸 방법은 양식장을 옮기는 것이었다. 마을 바로 앞에서 먼바다 쪽으로 양식장을 옮기고부터 바지락 조개는 제법 잘 자라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몇 년뿐이었다. 몇 년이 지나자 갯벌은 다시 조개를 죽이기 시작했다. 갯마을 사람들은 좀 더 깊이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양식장으로 먼바다 쪽으로 옮기고, 또 옮기다 보니 거리는 몇 곱절로 멀어졌고, 작업 가능한 시간 또한 길어야 두세 시간 정도로 확 줄어버렸다. 물때가 짧은 날은 두세 시간은커녕 한 시간도 못 하고 씁쓸하게 그냥 나와야만 했다. 그나마도 이제 더 이상은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창의 바지락 양식이 마침내 파장으로 접어드는 것인가?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일이었다. 두려워서 아무도 입 밖으로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이심전심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전개한 것이 쓰레기 안 버리기 등 갯벌 살리기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성과라고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동죽이 뭉텅이로 생겼다.

 

점점 지쳐간다
점점 지쳐간다.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실험으로 바지락 종패를 사다가 뿌려본 결과 대부분 다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동죽은 자연발생적이다. 동죽이 스스로 새끼를 쳐내는데 캐고 또 캐도 나오는 그 번식력과 생명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갯벌을 확 뒤집어놓으면 엄청나게 많은 조개가 죽어나자빠진다. 그리고 한 사흘쯤 지나서 가 보면 어디서 왔는지 상상도 해볼 수 없는 새로운 조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혼자서, 혹은 식구끼리, 또는 이웃간에 나눠먹자고 하는 조개잡이라면 당연하게도 흥겹고 시간이 간다는 의식조차도 없어서 바쁠 이유가 하나도 없겠지만, 잡은 조개를 내다 팔아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산을 갖고서 하는 조개잡이는 손이 바쁘고 마음도 바빠서 재미 같은 것을 누릴 틈이 없다.

아픈 데는 또 어찌 그리도 많은지, 무릎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갈비뼈조차도 욱신거리는데 물은 벌써 저기 어디쯤에 들어오고 있다는 느낌이서 이중으로 바쁘다. 허천나게 바쁘다. 바쁘고 아픈 것을 견뎌내고 이겨내자면 입을 써야 한다. 저 유명한 수다 떨기가 그것이다. 내 혀를 놀리고 남이 놀리는 혀의 소리를 듣다 보면 거기 어딘가에서 마술 같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

사람이 웃는다는 것은 글쎄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웃음의 해석이야 많고도 많겠지만 일단은 힘이 생긴다는 것을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힘이 생기면 몸의 아픔이 사라지고, 아픔이 사라지면 용기가 새롭게 생겨서 예전에는 차마, 부끄럽고 창피하고 민망해서 생각도 하기 싫었던 얘기도 막 터져 나온다. 씨받이 관련 얘기도 그 와중의 어느 시점에서 터져 나온 이야기였다.

스물두 살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해서 마흔한 살까지 딸만 일곱을 낳았다는 할머니급 여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얘기였다. 그녀는 아슬아슬한 나이 마흔여섯에 마지막으로 아들을 하나 얻었는데 그 과정이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고 속상하고 분통이 터져서 입술을 절로 깨물게 된단다. 딸만 일곱을 내리 낳은 것은 여자의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집안 어른들이 틈만 나면 다그치곤 했는데 그게 어째서 여자만의 잘못이겠느냐는 거다.

 

선별
선별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씨받이라는 말이 당당하게 유행하던 시절이었노라고 했다. 자식이 없어서 씨받이 운운하는 거라면야 인지상정으로 그럴 수 있다 해도, 자식이 일곱이나 되는데 오직 하나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씨받이를 들여야 한다는 등의 얘기가 집안 어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어느 하루 우연히 알았더란다.

눈앞이 캄캄하고, 살이 덜덜 떨리고, 희망도 무엇도 다 사라져버린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이를 악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세상과의 하직을 결심했다. 우물 속으로 뛰어들까? 부엌 천장 대들보에 목을 묶을까? 어쨌든 결심을 모질게 다진 그녀는 죽기 전에 악 소리라도 한 번 질러보자는 심사로 남편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남편은 그 즈음 술독에 빠져 있었다. 일도 안 하고 술만 처마시고 다니는 남편의 그 못된 행실도 따지고 보면 딸들 때문이었다. 집안 어른들의 해석에 따르자면 그랬다. 그녀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았다. 딸이 일곱이니 사위도 일곱일 거라는 둥, 일곱 명의 사위가 한 잔씩만 술을 따라줘도 배가 부를 거라는 둥, 마을 사람들이 툭하면 던지는 우스갯소리를 그녀도 충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날 밤 죽기를 결심하고 술 취한 남편의 목을 움켜잡고 흔들어대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엉뚱하기 짝이없었다.

“시방 생각해도 으찌케 내가 그런 말을 했는가 모르겠어. 아 애기 만들어줘. 아들 만들어줘. 그만 좀 쏘다니고 애기 만들어 달랑게. 펑펑 눈물을 쏟아감서 그리 포악을 떨었더니만 이놈의 서방이 뭐란 줄 알어? 아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디 나도 할 말이 없더라고, 아 그러고 나서 애기가 섰는디 말이여. 낳고 보니 귀신 같게도 그것이 아들이었단 말이시.”

그때의 그 아들이 다 자라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더니 애인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금년 가을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양가 어른들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그 위의 딸 둘이 서른 살을 넘어 마흔이 코앞인데도 결혼 같은 것은 안 한다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자꾸 하더니 정말로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내가 먹으려고 얻어온 것
내가 먹으려고 얻어온 것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아들을 낳은 뒤로 그녀는 용기백배, 의기양양, 자신감이 충만해져서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기 시작했다. 큰일 작은일 분별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조상들 묘를 이장하는데도 그녀가 주관한 것은 물론이고 그에 따르는 비용까지도 그녀가 벌어서 충당했다.

그녀의 남편은 차츰차츰, 조금씩조금씩, 큰일에서 손을 떼고 집안에서 잔일만 하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빨래를 하는 등 주부를 자임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남편의 그런 행실이 기특하고 대견하기만 했지만, 역할분담이 그런 식으로 완전히 고착되고 보니 그녀는 이제 어쩌다 이렇게 되고 말았나 싶어서 자가다가 피식, 피식 웃음이 나온단다.

“나는 인제 아플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당게.”

그녀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행들 중 가장 연장자이면서도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는 어깨의 회전근이 고장나서 수술을 했었다. 그 이전에는 무릎 연골이 닳아서 수술을 했고, 그 이전에는 허리에 손을 댔으며, 그밖에도 치과, 안과, 정형외과 등등 안가 본 병원이 없을 정도이니, 몸을 완전히 개비했다고 해도 뭐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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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미 2020-06-11 10:32:35
작가님 글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