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의 속사정
양파의 속사정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0.06.16 09:5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뭘 해서 먹을까 의 고민은 끝이 없다. 프로그램 개강은 속절없이 미루어지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고 나는 온라인 수업을 준비한다. 그러는 와중에 뭘 해서 먹을지의 고민은 하루에 두 번 이상은 한다. 오늘과 내일은 뭘 해서 먹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쪽에 보관중인 양파를 하나 집어 들었다. 마침 냉장고에는 갖가지 재료를 넣고 끓여 놓은 육수가 있고 사다놓은 지 며칠은 된 것 같은 애호박이 눈에 띄었다. 애호박을 채 썰고 양파와 홍당무를 곁들여 볶으려고 한다. 약간의 매콤함을 위해서 청양고추를 다지고 색감을 위해 홍고추를 다져서 요것들로 센 불에 후다닥 볶아 내어 잔치국수 고명으로 올릴 참이다.

세탁실 옆 한 쪽에는 나만의 실온 보관용 야채 저장고가 있다. 몸체는 금이 가서 버리고 뚜껑만 남은 커다란 뚝배기 뚜껑에 신문지를 깔고 양파며 감자 등을 담은 뒤 신문지로 덮어두면 얼마동안은 두고 먹을 수 있다. 뭐 지금도 살림이 서툴기는 하지만 새댁 때부터 가장 어려운 것은 야채보관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양파란 놈은 나를 곤경에 빠트릴 때가 참 많았다.

처음에는 무조건 다 씻었다. 양파도 사오면 일단 껍질을 다 벗기고 깨끗이 씻어 냉장고에 두었더니 시들해지고 물러지고 이상야릇했다. 채소는 씻어서 보관하면 빨리 물러진다는 얘기를 듣고부터 양파 하나하나 신문지에 꽁꽁 싸매서 냉장고에 두었다. 나름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뿌리에서 보슬보슬한 털이 생겨 있었더랬다. 양파는 나랑 궁합이 안 맞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후로는 두 개 정도 손질이 잘 돼서 낱개 포장된 양파를 한동안 사먹었지만 가격이 비싸기도 했고 양파 다듬는 것조차 싫어하는 불량한 주부로 낙인이 찍힐까봐 그것도 얼마 가지는 못했다.

가장 최근에 시도한 방법으로 뿌리 부분을 살짝 다듬고 겉껍질만 벗겨 낸 다음 실온에 그냥 두었더니 제법 며칠을 견디는 것이다. 가끔은 껍질 위로 거뭇거뭇한 점들이 올라오기는 했지만 여태껏 해 온 보관법 중 가장 오래도록 두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깨끗한 것이 좋은 줄 알고 씻기고 다듬고 신문지로 싸고 별의별 방법을 다 시도해 보았지만 자연의 상태에서 그늘을 만들어 주고 통풍만 잘 되게 해 주면 거뜬히 견디는 것을 그동안 몰랐던 나의 어리석음에 허탈한 적도 많았다. 오늘은 그 중 한 놈을 골랐다. 통풍이 잘 되고 있었는지 껍질도 밝은 황갈색을 띄고 뿌리부분에 하얀 털도 없이 뽀송뽀송 하였다. 눌러 보아도 물러진 느낌도 없고 괜찮은 상태로 보관이 잘 된 듯하다.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오랜만에 집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딸아이와 함께 잔치국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옆에서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특별히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 사실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다. 간단한 그릇이나 양념 정도를 건네어 주는 정도이다. 그저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어만 주어도 큰 힘이 된다. 딸아이는 몇 일전부터 인터넷을 이용한 MBTI(성격유형분석검사)에 관심을 보였는데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적성검사나 심리검사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였다. 나는 집어 든 양파의 껍질을 벗겨내고 뿌리 부분을 칼로 다듬었다. 그리고 양파의 이파리가 달렸었을 윗부분도 조금 잘라 내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양파를 흐르는 수돗물에 깨끗이 씻었다. 어쩜 이렇게 보관이 잘 되었는지 흠집이 하나도 없다. 딸아이는 도마와 칼을 건네어 주면서 인터넷 심리 검사의 결과를 신이 나서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도마 위에 씻은 양파를 올리고 반으로 싹둑 잘랐다.

“엄마, 근데 있잖아, 내가 우울 점수가 글쎄 1점이래!”

반으로 잘려진 양파는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보관상태가 좋았던 겉보기와는 달리 양파의 속은 겹을 따라서 거무스름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곰팡이의 초기 상태 같았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어도 속은 그 어떤 이유로 인하여 곪아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딸아이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딸아이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난생 처음 내 뱃속에서 태어난 첫 아이였다. 엄마의 사랑이 풍족하지 못하다고 느꼈던 내 유년시절의 보상심리처럼 나는 딸아이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참 많은 잣대를 들이 밀었다. 피곤해서 이른 저녁 잠든 아이를 다시 깨워서 꼭 샤워를 시켰다. 밥은 어떤 경우라도 남기지 못하게 했다. 문제집을 풀지 않고 시험을 봐서 점수가 좋지 못한 거라며 혼을 낸 적도 무척 많은 것 같다. 시험 기간이 끝나고 친구들과 번화가로 놀러가겠다는 것도 못하게 했다. 이 험한 세상에 여학생들끼리 몰려다니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내가 정해 놓은 기준의 틀 안에 아이를 맞추려고 했던 것이 큰 착오임을 깨달았다. 청소년 심리를 공부하고부터다. ‘사’와 ‘자’를 각각 따로는 읽어도 ‘사자’라고 조합된 단어를 읽어 내지 못하는 것은 유아기에 흔히 나타나는 인지적 오류인 것을 알 리가 없었던 이 무식한 애미의 행태는 차마 이실직고하기에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런데도 딸아이는 우울지수가 1점이란다. 정말 딸아이는 괜찮을 걸까?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양파의 속 겹 사이사이에 피어나던 검은 곰팡이처럼 딸아이도 겉으로만 괜찮은 척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요즘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창녕 어린이 학대사건 기사에 관심이 많다.

창녕 어린이는 학대 가정에서 탈출해 병원 치료를 잘 받아 건강을 회복하고 식사도 잘하며 쾌활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보는 이 어린이의 쾌활한 모습은 오랜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 두려움을 회피하는 일종의 방어기재로 해석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곪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나는 딸아이를 학대하지는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따뜻한 엄마가 되어 주지 못했다는 생각 또한 떨칠 수가 없다. 나는 양파의 속사정을 알 리가 없다. 겉보기에 멀쩡했지만 속은 곪아가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엄마, 나는 아무 걱정이 없나봐. 내가 원래 쿨 하잖아.”

나는 여전히 딸아이를 사랑한다. 다만 예전처럼 이래라 저래라 나의 기준을 들이대지는 않는다. 딸아이의 결정을 믿고 존중해 준다. 양파의 통풍과 그늘을 지켜주는 것처럼 딸아이가 건강한 성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뿐이다. 그러나 가끔 물어는 보고 싶다.

“딸아, 너 정말 괜찮은 거지?”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GURU 2020-06-17 08:22:05
잘 해준 것보다 부족한 면들이 늘 가슴에 걸리는게 부모의 마음인가봅니다. 밝게 잘 자라준 따님의 모습에서 지난 시간 늘 노력해온 엄마의 애정이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