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묻다
최악의 상황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묻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1.01.28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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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영화 ‘연가시’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영화 ‘연가시’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드디어 코로나19 팬데믹을 ‘끝장’낼 백신 예방 접종이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11일 영국은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영국은 이날을 승리의 날이라며 ‘V-데이’라 명명했다. “어두운 터널 끝 한줄기 빛이 비친다”던 영국 맷 행콕 보건부 장관의 말처럼 코로나19 팬데믹은 종식될 것인가.

하지만 팬데믹은 어느 한 나라만 예방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모든 나라가 유기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국가나 개인이 백신과 치료제를 독식해서는 안 된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돈이 없어서 백신을 사기 어려운 국가를 도와 전 세계인들이 전부 예방 접종을 해야 전염병이 종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이 백신이나 치료제가 한정되어 있어 일부에게만 판매된다면 어떻게 될까. 부유한 나라와 부자들이 백신과 약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불사할지도 모른다. 2012년 개봉한 영화 ‘연가시(Deranged)’는 바로 이런 ‘아비규환’의 상황을 현재의 상황으로 치환해 생생한 날것으로 그려낸다.
 

기생충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 시체로 가득한 강

칠흑 같은 어둠이 빠져나간 새벽, 한강변을 뛰던 누군가의 비명이 날카롭다. 수면 위에는 뼈와 살가죽만 남은 시체들이 떠올랐다. 기생충에 조종당해 강에 뛰어든 사람들의 시신이다. 인간의 뇌를 조종하는 기생충의 정체는 바로 ‘연가시’라는 생물이다. 연가시의 학명은 ‘Gordius aquaticus’. 영화 속 연가시는 치사율 100%의 변종 기생충으로, 현실 속 연가시와는 전혀 다른 생물이다.

하지만 연가시는 확실히 특이한 기생생물이다. 연가시는 육식 곤충의 몸에 자신의 알을 낳아 부화시킨다. 연가시의 알은 성충이 될 때까지 곤충의 장기를 갉아먹으며 기생하다가 성충이 되면 숙주를 물로 유인해 죽이고 빠져나온다. 더 끔찍한 것은 연가시가 숙주의 몸에서 나오는 방법이다. 연가시는 숙주의 몸을 가르고 나온다. 영화는 이 기생생물을 모티브로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한다. 연가시가 변종 생물로 변화되어 인간의 몸을 숙주 삼아 죽인다는 설정이다.

영화가 개봉한 때는 초여름이었다. 때마침 7월 무더위를 앞둔 여름이라 대도시를 벗어난 물가에 연가시가 있는 모습을 수월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2012년 개봉 당시 450만 명이라는 꽤 걸출한 관객 수를 동원한 영화답게 생소한 ‘연가시’라는 생물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때문에 진짜 사람에게는 해가 없는지 묻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

현실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변종 생물이 된 연가시에 감염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물에 빠져 죽는다. 하지만 이 특이한 변종 기생 생물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는 상태다. 그야말로 국가 최고의 위기상황이다. 평범한 우리 삶에 이러한 변종 생물이 나타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영화 ‘연가시’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연가시’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연가시’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속 주인공 재혁(김명민 분)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는 회사일에 바빠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별로 없어 보인다. 재혁은 돈을 벌러 다닌다는 이유로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언제나 ‘부재중’이다. 부인은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느라 매일 바쁘지만 재혁은 그런 부인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자신보다 게으르다며 못마땅해 한다. 한편 외부에서는 연가시로 인한 감염이 점점 심해진다. 급기야는 정부에서는 국가재난사태로 선포하고 ‘변종 감염증 주의보’가 발효된다.

하지만 변종 연가시의 감염속도는 정부의 대처보다 더 빨랐다. 변종 연가시는 강을 타고 대한민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다. 결국 재혁의 부인과 아이까지 감염된다. 정부는 감염자들을 모아 체육관에 몰아넣는다. 감염자 격리지만 실상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혁의 가족도 격리됐다. 부인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진다. 그나마 격리되어 있어 다행히 물을 찾을 수도, 찾으러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이면 어디든 뛰어들었다. 감염자들은 때가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갈증을 느끼고 물속을 찾는다. 강이든 저수지든 수조든 욕조든 물이 든 공간만 있다면 상관없다. 영화는 횟집 수조에 뛰어들어 죽어있는 여인의 긴 머리카락을 보여주며 이 끔찍한 변종 생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재혁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치료제를 구하러 다닌다. 가족의 죽음을 앞두고 그동안 자신이 부인과 아이에게 품었던 불만은 사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태다. 만약 그의 가족이 이러한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가족을 돌보지 않고 모든 일은 아내에게 맡기고 돈벌이에만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변종 연가시는 처절한 불행이자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게 한 매개체가 된다.

 

영화 ‘연가시’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연가시’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누군가에게는 피눈물, 누군가에게는 돈벼락의 기회

전 재산을 걸고서라도 가족을 살리기 위해 구한 치료제가 무용지물이 되었을 때 흘린 재혁의 피눈물은 어느 기업에게는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연가시에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난 제약회사는 문을 닫고 약을 점유한다.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사람들은 서로 치료제를 구하겠다고 아귀다툼을 한다. 흡사 좀비떼와 다를 바 없다. 비극이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같은 상황이 재현된다면 우리의 모습도 아귀와 같은 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영화와 지금의 현실은 다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을 가졌던 코로나19 백신이 속속 개발되면서 희망의 빛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천정부지로 올라버려 살 수도 없는 연가시 치료제와는 달리 코로나19 백신은 누구나 접종 가능하도록 저렴한 가격에 공급될 예정이다. 이미 지난 12월 영국은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화이자 백신은 19.5달러로 2회 접종해야 한다. 이어 최근 미국 FDA 승인을 받은 모더나 백신도 미국을 시작으로 계속 접종 국가가 확대되고 있다. 모더나 백신 가격은 32~37달러다. 노바벡스 백신은 16달러, 존슨 앤 존슨 개발 백신은 10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저렴한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공동 개발한 백신으로 4달러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이 이처럼 저렴하게 책정된 것은 저개발국가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백신을 공급해 팬데믹을 예방하고자 만든 국제 백신 공동구매 및 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 소속되었기 때문이다. 코백스 퍼실리티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감염병혁신연합(CEPI), 세계보건기구(WHO)를 공동 주관기구로 하는 글로벌 백신 공급기구로 2021년 말까지 전 세계에 백신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바이러스는 어느 한 국가나 개인만 백신을 구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전 세계가 공조해 빠르게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고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법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기업, 국가의 이익을 위해 백신과 치료제를 독점하거나 비싼 값에 팔아서는 안 된다. 영화 속에서는 악덕 기업주가 나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천인공노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이 악덕 기업주는 치료제를 독점했을 뿐 아니라 실제 치료제를 팔기 위해 일부러 변종 연가시를 퍼뜨린 장본인이었다.

영화가 영화여서 다행이다. 암울한 바이러스 팬데믹 환경 속에서 누군가 이러한 전염병을 일부러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더욱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면서 어둡던 터널에 희미하지만 빛이 보인다. 언젠가는 이 재난이 끝이 날 것이라는 희망이 솟는다. 사람들에게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가장 하는 싶은 일이 무엇인가 물으면 빨리 외식도 마음껏 하고, 멀리 해외로 여행도 하고 싶다는 대답이 나온다.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마스크를 벗는 일’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던 일이 이제는 현재 가장 소중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최악의 상황이 닥쳐야 우리는 평소에는 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위해 회사를 다니며 힘들게 돈을 벌었느냐에 대한 대답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변종 생물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조금은 무시하고 귀찮게 생각한 적도 있던 가족이라는 존재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의 존재가 자신의 생명보다, 혹은 그동안 그토록 열심히 일궈온 재산보다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변종 연가시를 통해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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