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가을 하늘은 높고 공활하다는 애국가의 가사처럼 요즘 하늘은 정말 예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구름의 생김생김은 한 배에서 나와도 제 각기 다른 자식들의 모습처럼 어쩜 저리도 개성 강한 우아함을 드러내고 있는 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온갖 잡스러운 생각들도 어느새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린다. 며칠 전 업무 차 강변북로를 달릴 때였다. 도로위로 펼쳐진 하늘의 푸르름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도로에서 하늘거리던 코스모스들의 여리여리한 흔들림이 탄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가을이다. 추석 연휴가 지나가고 어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중국 생활의 좋은 점을 여러 이들에게 물어보면 심심찮게 나오던 대답 중의 하나가 바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필요가 없어 편하다”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는 모든 쓰레기를 한 봉투에 담아 집 앞 쓰레기통에 내놓기만 하면 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모을 일도, 재활용을 깨끗이 씻고 일일이 라벨을 뗄 필요도 없다. 쓰레기봉투도 규격이 없어 아무 비닐이나 쓰면 된다. 배달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다 보니 집에서 음식을 시켜먹는 일이 많은데 먹은 이후에 잔반 그대로 뚜껑만 다시 덮어 배달 온 비닐봉지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작년 이맘때, 이름과 달리 맛은 좋지 않은 월병(月饼,yuèbǐng)을 먹다 버린 이후 올해는 월병의 ‘ㅇ’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다. 그러나 인간의 호기심은 끝이 없나 보다. 지인이 문화체험 형식으로 열리는 월병 만들기 행사를 추천하기에 처음에는 ‘내 사전에 월병이란 없다’고 생각했다가 전단을 보는 순간, ‘이렇게 생긴 월병이면 맛있지 않을까?’하고 넘어가 버린 것이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지인이 작년 행사에서 월병을 엄청 맛있게 먹었다는 경험담을 나눈 게 선택을 부추겼다. 행사가 토요일인 데다 가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알바를 몇 개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골프장 캐디였다. 피자집에서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 해봤자 하루 2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던 때라 하루 일당이 4만원이 넘는 돈을 받던 캐디는 어찌 보면 황금알바였다. 암튼 그래서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캐디면접을 보러 갔다.“안경을 꼈네요. 이 일은 안경 끼면 못 합니다.”“아. 그럼 콘택트렌즈 끼고 오면 할 수 있나요?”“네, 안경만 안 끼면 가능합니다.”나는 그 길로 엄마를 안경점에 끌고 가 렌즈를 맞춰 꼈다. 그런 다음 다시 면접을 봐서 드디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9월 8일 오전, 중국이 코로나19 퇴치에 기여한 유공자들을 대규모 포상하는 행사를 통해 사실상 코로나19 종식 선언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중국에서는 과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일까? 중국 내에서 돌아다니는 건 정말 안전한 걸까? 명확한 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거리와 상점을 가득 채운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적어도 ‘중국 내는 안전하다’는 분위기, 중국인들의 믿음이 널리 퍼져있는 건 사실이다.얼마 전 마스크를 쓰고 발마사지를 받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한국인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한국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남편의 고향은 전라도다. 경상도 여자가 전라도 남자와 만나 별 탈 없이 살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식문화였다. 이는 내가 경상도 음식에 입맛 들여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식재료의 범주를 크게 두지 않으셨던 엄마의 영향도 있었을 테고 먹는 일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나의 식생활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시집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식재료들이 많았다. 시집 식구들은 곱창을 전골로 해서 먹었고 닭똥집을 소금에 찍어 먹었다. 피부에 좋다며 껍데기란 것을 구워 먹기도 하고 빨간 양념에 조리된 형태로 먹기도 했다. 그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10년 전.친구 따라 도예공방이란 곳에 처음 가봤다. 갔다가 재미삼아 만져본 흙의 감촉에 그만 반해버렸다. 통장 잔고가 넉넉했던 친구는 고민 없이 그 자리에서 등록을 했다. 나는 사정이 달랐다. 하지만 손에 묻은 찰진 흙을 씻어내지 못하고 자꾸 쪼물딱 거렸다. 이런 내 고민이 눈에 보였는지 공방 쌤이 말했다.“집에 가서 천천히 결정해요.”그리고는 매끈한 가래떡모양 흙 한 덩이를 내 앞에 갖다 주었다. 제일 먼저 흙을 치대 흙 속의 기포를 빼내야한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재밌는 건 세상에 또 없을 거야’라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장장 31시간의 대여정, 중국 드라마 ‘다음역은 행복(下一站是幸福)’의 정주행을 드디어 끝냈다.2020년 1월에 중국에서 첫 방영된 따끈따끈한 신판인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누나의 첫사랑’이라는 B급풍의 제목을 달고 출시됐다고 한다.얼마 전 상해 호텔로 휴가를 보내러 갔다가 TV에서 우연히 이 드라마를 보게 됐다. 분위기가 괜찮아서 집으로 돌아와 TV를 뒤져보니 기쁘게도 한국TV에 한국어 자막이 달린 버전이 있어 중국어 공부도 할 겸 1편부터 시청하게 되었다.그런데 예쁘다고 생각했던 여주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나는 어려서부터 잠이 별로 없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다 눈을 뜨는 순간 몸을 발딱 일으켜 뭔가 재미난 일을 찾아 나서는 쪽이라 어른들은 나에게 ‘참 부지런하다’는 칭찬을 자주 해주었다. 하지만 나보다 세 살 많은 바로 위에 언니는 어려서부터 잠이 많고 게으른 편이라 어른들에게 자주 혼이 났다.유치원부터 시작된 정시 등교.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이 빛나는 열세 개의 개근상을 받아냈다. 그런 나에 비해 언니는 꼴랑 한 장의 개근상을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언니는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중국으로 돌아온 지 어느덧 두 달에 가까워졌다. 입국 필수절차인 2주간의 격리가 끝난 이후 길 것만 같던 아이의 방학도 드디어 8월 13일자로 끝이 났다. 두 돌 때까지 육아휴직을 하며 집에서 아이를 돌보던 시간 이후로 아이와 24시간을 이렇게 온전히 길게 보내본 적이 없었다. 무려 1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참으로 긴 6개월이었다.코로나시대를 보내며 외출을 자제한 게 습관이 된 건지, 아니면 외출 시 코로나가 걸릴지도 모른다는 아이들 특유의 불안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이는 요 몇 달 집순이가 되어버렸다.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나도 한 때는 기성세대로부터 눈총 좀 받은 시절이 있었다. 한 겨울 두터운 외투를 입어도 옷 깃 사이로 스며드는 칼바람에 코끝이 빨갛게 얼어붙고 어깨를 움츠릴지언정 외출복은 미니스커트였다. 입은 둥 안 입은 둥 했을 스타킹에 무릎 위로 한참은 올라가는 미니스커트는 계절불문하고 멋 좀 부린다는 여성들이 즐겨 입는 의상이었다. 거기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와인색으로 염색하고 어느 유명 배우가 유행시킨 사자머리 파마를 즐겨 했다. 엄마는 엄동설한에 희멀건 다리를 다 드러내고 수사자 갈기 같은 내 머리상태
[위클리서울=구혜리 기자] 모든 순간은 끝에서 시작으로 이야기가 되어 이어진다. 한 학기를 마치며 조 모임으로 만나 팀 프로젝트를 진행한 친구들과 방학 때 제주도를 가기로 했다. 모두 코로나 19가 몰고 온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어딘가로 풀 곳이 필요했다. 제주 여행은 일종의 우리들 반 년의 마침표였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향한 김포 공항에서 나는 아주 우연히 1년 전 봉사활동으로 친해진 친구와 같은 비행기를 탔다. 낯선 우연에 새로운 시작을 느꼈다. 제주로 향하는 길 내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짜릿한 신선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요 며칠 전부터 옥수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아침에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옥수수 트럭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더니 백발의 할아버지가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옥수수 껍질을 뜯고 계셨다. 압력밥솥에 김이 쉭쉭 오르고 있었으나 삶은 옥수수는 보이지 않았다.“20분쯤 기다려야 돼.”옥수수를 사러왔다는 내 말에 할아버지가 말했다.“아 네….”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려다 말고 나는 물었다.“생옥수수 사다가 삶아먹어도 돼요?”할아버지는 옥수수껍질을 벗기다 말고 나를 올려다보셨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근 20여 년간 ‘오락실’이라는 곳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고등학생이나 대학 신입생 시절 학교 앞 오락실에서 버블보블 등의 스틱 게임이나 DDR(Dance Dance Revolution, 1998년 일본 코나미사가 개발한 최초의 발로 누르는 댄스 게임), 펌프(정식 명칭은 Pump it up, 1999년 국내 안다미로 사에서 개발한 댄스 게임)같은 리듬 게임 등을 한창 즐기던 때도 있었지만 그 시절을 지나면서부터는 왠지 모르게 ‘오락실=어둡고 화장실이 더러우며 담배 냄새가 나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겨 발걸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느지막이 일어나도 되는 주말 아침이었지만 빗소리에 일찍 잠을 깼다. 남쪽 지방에 머물고 있던 장마 전선이 서울로 상경했는지 요 며칠 동안 제법 비를 뿌리고 있다. 적당히 오면 참 좋겠지만 여름철 장맛비가 내리면 주부들은 “아이고 채소 값 오르겠네”, “혹은 과일값 비싸지겠네” 등의 생활비 걱정이 앞선다. 한 달 쯤 전인가 국가에서 지원하는 재난지원금으로 원 없이 과일을 사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과일을 먹으면서 나눴던 우리 부부의 대화가 다시금 웃음 짓게 만든다.한 달 전 우리 집은 흡사 도서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요즘… 문득 그 남자들 생각이 난다.내가 예전에 쓴 글 중에 대학생 때 가출해서 절에 있었던 얘기를 잠시 했었다. 치아 교정기를 끼고 시금치 먹다가 그게 목에 걸려 스님들 앞에서 코뿔소 난산하는 소리를 냈던…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 무렵 함께 살았던 남자들의 이야기다.대학을 휴학하고 집을 나와 무작정 찾아 간 곳은 설악산의 어느 유명한 절이었다. 세상 소음과 등지고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왔건만 그곳은 유명 관광지여서 우리 동네보다 더 시끄럽고 사람들로 빠글거렸다. 어찌해야할까 고민하다 그 절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2시가 넘어 점심식사를 안 줄 줄 알았는데 방에 좀 있다 보니 도시락을 갖다 준다. 나름 한식 식단을 짠 건지 생각보다 푸짐하다. 그나저나 핵산검사를 또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혈액검사도 한단다. 차례차례 한 방씩 불려나가는데 방음이 잘 되지 않는 방문으로 복도에서 아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린다. 다른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지레 겁은 먹은 딸아이가 혈액검사는 하기 싫다며 울부짖고 복도에 주저앉으려고 한다. 근데 앞에 선 다른 엄마가 아이들은 혈액검사를 안 해도 된다고 한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2020년 6월 22일. 소주를 떠난 지 만 5개월 쯤, 하루가 열흘처럼 길었던 날들을 뒤로 하고 드디어 국경을 넘었다.국경을 넘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5월 중순, 남편의 회사에서 한국에 발이 묶인 가족들을 위한 초청장 발급을 신청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3월 28일 중국의 전면 국경봉쇄 이후 한-중 양국 정부가 기업인 등을 위한 패스트트랙 제도에 합의했다고 들었지만, 실제로 패스트트랙을 통해 입국했다는 소식은 드물었다. 국가 차원에서 정책의 발표가 있더라도 실제 시행은 지방정부별로, 담당자별로 제각각이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문득 이 말이 생각난다. 삶이 고달픈 이유는 악마의 유혹에 빠져들면 안 된다는 조심성 때문이라는 이야기. 그렇기도 하지만, 내 생각엔 악마의 유혹보다 천 배는 더 조심해야 할 게 있으니 그것이 바로 돈이라는 이름의 괴물이다. 돈 자체가 악마이기도 하면서 천 개 이상의 다른 얼굴을 갖고 있으니 조심, 또 조심으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돈을 어떻게 다루면 행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온 사람이 있다. 태어난 것이 억울해서 슬퍼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누구이든 어깨를 토닥이고 쓰다듬어주고 손을 만져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군대 가기 전, 돼지 껍데기 집에서 주말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둘째가 월급을 받았단다.월급 200에 보너스 10해서 210만원.“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봐요.”“그냥 돈으로 줘.”“돈 말고요.”“싫어. 돈이 더 좋아.”결국 돈 말고 감자탕을 얻어먹었다. 밥을 먹다 아들은 같이 일하는 베트남 친구들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을 넘겼을 뿐인데 남의 나라에 와서 다들 너무 고생하는 거 같다고. 그러다 은근히 지 자랑도 늘어놓는다.“베트남에서 온 친구들이 날 좋아해.”“같이 일하는 여자애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