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위클리서울=박종민] 엊그제까지만 해도 들판이 온통 황금빛 벌판이었는데, 아침결엔 서릿발이 하얗게 무성하다. 옷깃을 여미어야만 하는 절기에 돌입했다. 머지않아 두꺼운 패딩이 등장할 태세다.

여름철 내내 불어오던 높새바람도 요즘엔 끊어지고 서북쪽에서 불어 드는 차가운 하늬바람 결에 낙엽이 우수수 지며 어느덧 풀도 나무도 겨우살이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한해의 농사일을 마무리하는 철이라 농민들이 앞뒤 가릴 겨를 없이 한창 바쁘기만 한 시기이다. 풍작이든 흉작이든 거두어들여야 한다.

여느 해 같으면 한창 흐뭇하고 재밌고 행복이 가득 넘쳐날 즈음이지만 올핸 영 그게 아니단다. 수확량이 평년작보다 훨씬 뒤져 땀 뻘뻘 흘리며 온종일 일해도 소출이 없다 보니 힘은 힘대로 들면서 흥이 날질 않는단다. 지쳐 있고 한마디로 우거지 죽상이다.

  농민의 불편한 심기는 수도 작에서뿐만 아니다. 요즘 벼농사는 그래도 경지정리가 잘 돼 있고 수리 시설이 논배미마다 거의 갖춰져 기계화작업도 쉽게 이뤄져 인력과 비용이 많이 절감되기에 어느 정도로 경쟁력이 있는 작목이란다.

농작업이 비교적 단순해 올해 농사 작황이 부진하면 내년 농사를 잘 지으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농민들이다. 벼농사가 부실한 판에 고추 마늘 양파 등등과 채소 과수농가의 사과 배 감 대추 등의 과일들마저 작황이 완전 꽝이란다.

50여 일이 넘는 긴긴 장맛비에 호우와 태풍에 그만 과목이 죄다 꺾어지고 부러지면서 과일이 쏟아져 내 뒹굴며 거뭇거뭇 썩어가니 그걸 보는 가슴 속이 문드러져 내린다는 것이다. 

  한 번쯤 생각해 보자! 만일 농민들이 국민이 먹어야 살아가는 먹거리를 생산해 내지 않는다면?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불가피하게 농민이 생산한 과일이나 곡식을 비롯해 육류를 섭취해야만 된다.

이들을 먹지 않곤 목숨을 부지해 나갈 수가 없는 거다. 제아무리 값비싼 희귀금속이라도 먹을 수가 없고 그 자체가 사람이 살아가는 육신에 전혀 영양분이 없다. 값이 비싸기로 이름난 다이아몬드나 루비 사파이어 진주 등등의 보석도 먹어 삼킬 수가 없다.

육체엔 음식물이 아니기에 직접적인 보탬이 되질 않는다. 황금은 돈의 가치로 평가하고 있는 금본위 체제이니 황금이 곧 돈이며 돈이 곧 식량과 바꿀 수 있기에 황금은 예외로 치자. 그러나

  그런 황금도 내 몸에 먹어 삼켜 영양소를 보충할 길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식량자원이 아닌 금붙이 쇠붙이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답이 딱 나와 있다. 나의 생명 줄기를 살려내는 건 오직 과일이나 곡식이나 육류뿐이란 것을 절박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니 농민의 피와 땀과 정력과 열정이 담겨 있는 농산물이 보배가 아닌가! 이런 고귀한 농산물을 생산해 내는 역정을 몰라 준다면 야속하고 슬픈 것이다.

금붙이 보석류에 비하면 값이 완전 똥값이다.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농산물이 태반이다. 농민의 노고에 감사하며 고맙게 생각해야만 되는 거 아니겠는가! 늦가을로 접어든 요즘이 가장 농민들이 힘겨워하는 시기이며 시절이다.
           
  더욱이 요즈음은 코로나19 사태로 농민들의 마음이 더욱더 옥 조이고 있다. 잘 키원 낸 농산물도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아무리 맛 좋은 농산물이나 유명농업생산품도 씨가 먹혀들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국민의 식량창고를 좌지우지하며 생명줄을 움켜쥐고 있는 자가 농민들이다. 우리의 영육을 지켜내는 게 농민들이다.

국민 모두 힘겹고도 어려운 환경에서 꿋꿋하게 자기의 할 일을 다 해내는 농심을 생각해 보자. 농민들 입지와 처한 상황과 심사를 다만 한 번쯤이라도 헤아려 볼 때라 싶다. 국민을 위한, 농민을 위한 바램이며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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