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위클리서울=박종민] 서울의 명문대학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수 한 분이 퇴임을 하고 난 뒤 한적한 시골 마을에 귀촌해 왔다. 편안한 노후와 후학양성을 위해서 택한 길이란다.

그는 어릴 적 자라나면서 보고 겪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여러 차례에 걸쳐 주변을 둘러보고 살펴보면서 후대에게 뭔가 한 가지라도 가르침이 될 만한 사안을 찾아봤다. 아차, 이거다 싶게 떠오른 게 잊어져가는 것들이었다. 가는 곳마다 그 옛적 모습이나 정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마을에서 성행하던 자자란 심심풀이 놀이문화는 물론이요 조상 대대로 전래해 내려오던 미풍양속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간 것이다. 아쉽고 안타까움 속에 결심한 것이 잊어져가는 옛 모습과 풍물들을 기억 밖으로 끄집어내 되살려내는 것이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했다. 옛것에서 새로움을 발현해내는 것이다. 시골 골골과 향토 곳곳에서 흔적과 자취도 없이 사라져가면서 잊어져가는 것들을 기록해내는 것이다. 지금은 볼 수가 없는 동네 마을마다의 미풍양속이다. 전설과 동화 구전설화 속에 있었던 풍물들이다.

추억으로 남아 아른거리던 이런 걸 기억 밖으로 꺼내어 현대에 까발리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 한국의 진정한 무형자산이 아니던가. 조상 대대로 끈끈하게 맥을 이어 내려오던 한민족만이 가진 애환의 모습이며 형상 형체가 아닌가.

원로학자인 그는 식견이 넓다. 판단판별력이 예리하고 눈이 밝다. 명성이 자자한 문인으로 촌철살인의 글을 쓴다. 그런 능력과 솜씨로 고증을 찾아 나서서 탐문하고 탐색하면서 유추하고 판별하여 글로 기록하여 남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간 왜 이런 부문에 소홀(疎忽)했을까? 무관심하고 무분별하며 무지했을까? 민족이 살아나온 흔적이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인데 어쩌다가 제대로 보존해내지 못하고 지워졌고 잊어져가게 된 걸까?

민족 고유의 풍습과 풍속 속에서 해마다 다가오는 절기에 맞게 우리들만이 즐기며 누려왔던 아름답고 멋진 유무형의 유산들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그걸 찾아 증빙하여 우리 민속의 유산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실로 24절기 절후 따라 안위를 위하며 즐겨 누려오던 문화적 행사와 풍습들이 많다. 민족의 고유문화이다. 이를 재발견해내지 않으면 영구히 사장되고 소멸돼버리고 말 것이다. 시급히 찾아 보존해나가야 한다.

  잠깐 살펴보자. 한해의 마지막 절기에 대한을 끝으로 다시 시작되는 첫 번째가 입춘이다. 우리 선조들은 입춘 날에 대문이나 주방(정지)이나 변소 출입 문짝들에 입춘 방(榜)을 써 붙였다. 이를 시작으로 해서 설명절의 윷놀이 제기차기 연날리기 대보름날 쥐불놀이로 이어졌다.

삼동겨울을 보내고 새로 새해의 농사일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달이 2월이다. 그런 의미를 담아 2월 초하루 콩 볶아 먹기가 성행했고 3월 삼짇날 제비 모셔오기 3, 4월엔 초파일 부처님과 관련된 행사가 있다.

5월에는 단옷날 그네뛰기 창포물 머리 감기 8월 한가위 강강술래 등등 동지 팥죽 쒀먹기 섣달그믐에 이르기까지 행사와 세시 풍속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던 것이 아니던가. 이 얼마나 값진 문화유산인가! 일깨우며 지켜내야만 한다.

  신문물문화 속에서 자라난 신세대 젊은이들에겐 생소한 문화일 것이다. 신문물은 구 문물에서 파생돼 나온다. 옛 문화와 문물이 존재했기에 새로운 문화와 문물이 탄생하고 생성되는 것이다.

문화유산도 살아나온 생생한 인문의 역사이다. 잊어져가는 우리의 풍속들을 찾아 이를 발굴하고 계승해나가는 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문화의 가치를 높여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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